Марксизм и философия языка · 1929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소련 언어학자 발렌틴 볼로시노프가 1929년 레닌그라드에서 낸 책으로, 이듬해 재판이 나왔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기호로 존재하며 낱말은 “이데올로기 현상의 전형”이라는 데서 출발해, 언어의 실체를 추상적 규칙 체계나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언어 교류에서 찾았다. 한 언어를 여러 계급이 함께 쓰기 때문에 “기호가 계급투쟁의 무대가 된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며, 1970년대부터 미하일 바흐친이 실제 저자라는 주장이 나와 저자 논쟁이 이어진다.

상세

마르크스주의에 왜 언어철학이 필요했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경제적 토대와 그 위의 상부구조로 나누어 설명한다. 법, 도덕, 종교, 과학, 예술 같은 상부구조, 곧 이데올로기는 토대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그런데 토대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옮겨 가는지’, 이데올로기는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는 막연하게 남아 있었다. 볼로시노프는 이 빈자리를 언어로 채우려 했다. 책은 “언어철학의 문제들이 지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특별히 절실하고 중요해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과학론, 문학론, 종교학, 도덕학 같은 이데올로기 연구의 바탕이 언어철학의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Проблемы философии языка приобретают для марксизма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исключительную актуальность и важность

볼로시노프의 출발점은 이데올로기를 기호로 보는 것이다. 물체나 생산 도구나 소비재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든 기호가 될 수 있다. 소련 국장의 낫과 망치는 더 이상 연장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지니고,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교 성찬식에서 종교적 상징이 된다. 볼로시노프는 이렇게 정리했다. “이데올로기적인 모든 것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기 바깥의 무언가를 나타내고 대신한다. 곧 기호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영역은 기호의 영역과 겹친다.”

Все идеологическое обладает значением : оно представляет, замещает нечто вне его находящееся, т.е. является знаком.

의식은 어디에 있나?

이 주장의 날은 의식에 대한 생각에 있다. 관념론 철학과 심리학주의 문화론은 이데올로기를 의식 안에 두었다. 기호는 겉껍데기일 뿐이고 진짜는 머릿속의 이해라는 것이다. 볼로시노프는 이해 자체도 내적 언어라는 기호의 재료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반박했다. 기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기호를 이미 아는 다른 기호들에 이어 붙이는 일이고, 기호에서 기호로 이어지는 이 사슬은 어디에서도 비물질적인 내면으로 끊기지 않는다. 기호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생기므로, “의식은 이데올로기적인, 곧 기호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때에만, 따라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만 의식이 된다.”

Сознание становится сознанием, только наполняясь идеологическим, resp. знаковым содержанием, следовательно, только в процессе социально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그 가운데서도 낱말은 특별하다. “낱말은 이데올로기 현상의 전형이다.” 낱말은 기호로서의 기능밖에 없고, 그래서 사회적 교류의 가장 순수하고 섬세한 매체다. 볼로시노프는 배고픔을 예로 들었다. 밖으로 말하지 않는 막연한 배고픔의 자각조차 내적 언어와 억양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배고픔을 애원하듯, 짜증스럽게, 분노하며 자각할 수 있고, 그 억양은 그 사람이 놓인 사회적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의식은 머릿속에 홀로 있지 않고 처음부터 사회적이다.

소쉬르와 훔볼트를 어떻게 비판했나?

책의 제2부는 당시 언어철학을 두 흐름으로 나누어 비판한다. 하나는 빌헬름 폰 훔볼트에서 독일의 카를 포슬러 학파로 이어진 ‘개인주의적 주관주의’로, 언어를 개인의 창조적 표현 행위로 본다. 다른 하나는 ‘추상적 객관주의’로, 그 가장 선명한 표현이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샤를 바이의 제네바 학파다. 소쉬르는 언어(랑그)를 개인의 말(파롤)과 떼어 내어 동시적으로 고정된 규범 체계로 연구하자고 했다.

볼로시노프는 두 흐름 모두 말을 한 사람의 독백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언어의 진짜 실체는 추상적 형식 체계도, 고립된 독백도, 말하는 사람의 생리적 행위도 아니라 “발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언어적 상호작용이라는 사회적 사건”이다. “모든 이해는 대화적이다.”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낱말에 응답하는 낱말을 찾으며 이해한다. 모든 발화는 무엇보다 “평가적 지향”이어서, 같은 낱말도 억양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가 『작가 일기』에 적은 일화, 술 취한 노동자 여섯이 단 하나의 상스러운 낱말만으로 억양을 바꿔 가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를 보였다.

Всякое понимание диалогично.

‘기호가 계급투쟁의 무대가 된다’는 무슨 뜻인가?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대목은 제1부 2장, 토대와 상부구조를 다루는 부분에 있다. 기호에 비친 존재는 그대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굴절된다. 무엇이 굴절시키는가? 같은 기호를 쓰는 집단 안에서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가 교차하는 것, 곧 계급투쟁이다. 계급과 기호 공동체는 일치하지 않는다. 여러 계급이 하나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기호마다 서로 다른 방향의 억양이 교차하고, “기호는 계급투쟁의 무대가 된다.”

Знак становится ареною классовой борьбы.

볼로시노프는 이 ‘사회적 다중억양성’ 덕분에 기호가 살아 움직이며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투쟁에서 떨어져 나간 기호는 시들어 알레고리가 되고 문헌학의 대상이 된다. 동시에 바로 이 성질 때문에 기호는 존재를 굴절하고 왜곡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 기호에 계급을 넘어선 영원한 성격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평가의 투쟁을 끄거나 안으로 몰아넣어 기호를 단일 억양으로 만들려 한다.” 살아 있는 욕설은 칭찬이 될 수 있고 살아 있는 진리는 많은 이에게 가장 큰 거짓으로 들린다. 기호의 이 내적 변증법은 사회적 위기와 혁명적 변동의 시기에야 끝까지 드러난다. 이 생각은 언어를 둘러싼 투쟁을 헤게모니의 문제로 본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과 자주 나란히 놓인다.

책의 제3부는 남의 말을 옮기는 형식, 곧 직접화법, 간접화법, 그리고 작가의 말과 인물의 말이 섞이는 자유간접화법을 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 문학에서 분석한다. 발화들 사이의 사회적·시간적 관계가 언어 구조 자체에 새겨져 있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누가 썼나? 바흐친 저자설 논쟁

발렌틴 볼로시노프(1895~1936)는 혁명 전부터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가까운 친구였고, 네벨과 비텝스크, 레닌그라드에서 바흐친, 문학연구자 파벨 메드베데프 등과 사상을 나누는 이른바 ‘바흐친 서클’에 속했다. 1970년대 초부터 볼로시노프 이름으로 나온 『프로이트주의』(1927)와 이 책, 메드베데프 이름의 『문학 연구의 형식적 방법』이 실은 바흐친의 저작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1984년 카테리나 클라크와 마이클 홀퀴스트의 바흐친 전기가 이를 영어로 처음 체계화했다. 바흐친은 1928년 12월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쿠스타나이로 유배되었으므로, 출판할 수 없던 그가 친구의 이름을 빌렸다는 설명이었다.

These claims originated in the early 1970s and received their earliest full articulation in English in Clark and Holquist's 1984 biography of Bakhtin.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볼로시노프는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연구소에서 언어학자로 일했으며, 그가 썼다는 증거를 내세우는 연구들이 나왔다. 일부 연구자는 이 책들을 바흐친에게 돌린 것이 서구 비평이 책의 대화주의만 받아들이고 볼로시노프가 분명히 밝힌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유물론의 입장은 치워 버리게 해 주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는 바흐친 서클 안에서 생각이 활발히 오갔고, 볼로시노프 이름의 저작에는 바흐친과 볼로시노프가 함께 참여했으며 최종 집필은 볼로시노프가 했다고 본다. 논쟁은 러시아와 서구에서 계속된다.

이 책은 어떤 운명을 겪었나?

책은 1930년대 초 니콜라이 마르의 언어학을 따르던 마르주의자들에게 혹독하게 비판받았고, 볼로시노프는 더 이상 글을 내지 못했다. 그는 1936년 레닌그라드 근교 데츠코예셀로의 요양소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그가 체포되었다는 서술과 탄압받지 않았고 책도 도서관에서 치워지지 않았다는 서술이 자료마다 엇갈린다. 어쨌든 책은 소련에서 오래 잊혔다.

재발견은 서구에서 왔다. 1970년대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이 책에 주목했고, 1973년 영어 번역이 나왔다. 야콥슨은 화법 분석을 「전환사와 동사 범주」에서 이어받았고, 책은 프라하학파의 기능언어학과 언어인류학, 문화연구와 담론 분석에 영향을 주었다. 이데올로기를 머릿속 허위의식이 아니라 물질적 기호의 사회적 실천으로 본 점에서, 이 책은 뒷날 후기구조주의의 여러 관심사를 앞질렀다고 평가받는다. 소련에서는 1990년대에 다시 출판되었는데, 몇 차례는 바흐친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언어에 무관심했다는 통념에 맞서는 초기의 체계적 시도였고, 언어를 계급 관계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지금도 미디어와 정치 언어를 분석하는 이들에게 출발점이 된다. 같은 시대 레프 비고츠키가 내적 언어와 의식의 사회적 기원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소련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의식과 언어를 사회적으로 설명하려 한 넓은 흐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관련 인물

출처

  1. crecleco.serio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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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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