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
Menshevizing Idealism
스탈린이 1930년에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낙인. 데보린 학파를 가리켜 이론과 실천의 분리, 헤겔 변증법과 마르크스 변증법의 동일시, 그리고 레닌의 철학적 공헌 과소평가라는 죄목으로 규탄했다. 1931년 1월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마르크스주의 기치 아래』 잡지에 대한 결정으로 데보린은 철학연구소장과 편집장에서 해임되었고, 미틴-유딘 연합이 소비에트 철학의 새 지도부로 등장했다. 이 낙인은 철학 논쟁을 가장한 정치적 숙청 작업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소비에트 철학을 스탈린주의 교리로 전면 재편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상세
데보린 학파
1920년대 소련 철학은 두 조류의 논쟁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한편에는 기계론자들이 있어 철학을 자연과학의 일반화로 환원하려 했고, 다른 한편에는 데보린을 중심으로 한 변증법론자들이 있어 헤겔 변증법의 유물론적 전유를 강조했다. 1929년까지 이 논쟁에서 데보린 학파가 우위를 차지해 철학 연구소와 주요 학술지를 장악했다.
데보린 학파의 특징은 헤겔 논리학의 체계적 연구를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 작업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 접근은 철학을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이론 영역으로 다루었고, 당면한 정치적 과제와의 직접적 연결을 요구하지 않았다.
1930년의 전환
1930년 새로운 세대의 철학자들이 데보린 학파를 공격했다. 미틴과 유딘이 주도한 이 비판은 세 가지 혐의를 제시했다. 이론과 실천의 분리, 헤겔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동일시, 그리고 레닌의 철학적 기여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스탈린이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면서 이 비판은 공식 노선이 되었다.
명칭 자체가 논쟁 구조를 압축한다. 관념론이라는 규정은 헤겔 연구에 대한 혐의이고, 멘셰비키화한다는 규정은 이론을 실천에서 분리하는 태도에 대한 정치적 혐의였다. 두 혐의가 결합되면서 철학적 입장의 차이가 정치적 편향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결의와 결과
1931년 1월 중앙위원회 결의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지에 관하여」가 데보린을 철학 연구소 소장직과 편집인직에서 해임하고 미틴과 유딘의 지도를 확립했다. 데보린 자신은 자기비판 후 학술원 회원 자격을 유지했으나 영향력을 잃었고, 학파의 여러 성원은 1930년대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소련 철학의 성격을 바꾸었다. 이후 철학의 과제는 당 노선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재정의되었고, 1938년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표준 교과서로 확립되면서 논쟁의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헤겔 연구는 수십 년간 위축되었으며, 1950년대 후반 이후에야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데보린 논쟁은 철학 논쟁의 형식을 취한 정치적 제거의 사례로 다루어진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ull definition, Stalin's coinage in 1930 conversation with Institute of Red Professorship party bureau, the 25 January 1931 CC VKP(b) resolution, and the political nature of the campaign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definition, Stalin's authorship, and core charges (identifying Marxist dialectics with Hegel's, divorcing theory from practice, underestimating Len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