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族资产阶级 · 1940–1956

민족부르주아지

national bourgeoisie

상위 항목 신민주주의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에서 외국 제국주의 자본에 결탁한 매판부르주아지와 구별되는 민족 자본의 부르주아지. 마르크스주의 용어법에서 매판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계급으로 규정되는 반면, 민족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와 대립하며 특정 조건에서 혁명 세력의 동맹이 될 수 있는 계급으로 여겨졌다. 마오쩌둥신민주주의 4계급 연합(노동자·농민·소부르주아지·민족부르주아지)의 한 축을 이루었고, 1953년 이후 사회주의 이행의 대상으로 재규정되었다.

상세

‘민족부르주아지’는 고전적 서구 부르주아지와 구별되는 범주로, 마르크스주의 용어법에서 매판부르주아지와 대립항을 이룬다. 매판부르주아지가 외국 제국주의 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계급으로 규정되는 반면, 민족부르주아지는 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자기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계급으로 여겨져 특정 조건에서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단기적 동맹이 될 수 있었다.

중국 신민주주의론에서 이 계급은 제국주의·봉건주의에 반대하는 4계급 연합(프롤레타리아, 농민, 소부르주아지, 민족부르주아지)의 구성 요소였고, 매판부르주아지는 이 연합에서 명시적으로 배제되었다. 이 4계급 연합은 중국 국기의 별로 상징되는데, 큰 별은 당의 지도력을, 주위의 네 개 작은 별은 4계급 블록(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 농민, 지식인, 민족자본가)을 나타낸다.

마오쩌둥은 1940년 「신민주주의론」에서 중국 민족부르주아지의 이중적 성격을 정식화했다.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부르주아지로서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기에 특정 시기에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에 반대하는 혁명적 성격을 지니며 노동자·소부르주아지와 동맹할 수 있으나, 경제적·정치적으로 극히 취약하여 타협 성향을 가지며 제국주의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고 지대 수탈을 통해 농촌과 결부되어 있어 반제·반봉건 과업을 철저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혁명에 대한 참여 가능성’과 ‘혁명의 적과의 타협 성향’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마오쩌둥은 이 계급이 1911년 혁명과 북벌 시기에 제국주의 및 관료·군벌 정부에 반대하는 혁명적 성격을 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1927년과 그 이후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대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자 및 봉건세력과 결탁해 반혁명에 가담했다고 서술했다. 레닌주의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는 민족부르주아지와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신민주주의는 제국주의·봉건주의 타도를 목표로 하면서도 제한적인 민족 자본주의 발전을 허용했는데, 이는 볼셰비키 혁명이 민족부르주아지를 표적으로 삼은 것과 대조된다. 1952~53년 마오쩌둥의 노선 전환과 함께 민족부르주아지는 신민주주의의 동맹에서 사회주의 이행의 주요 모순의 대상으로 재규정되었다. 1949년 건국 후 지주계급과 관료부르주아지가 패배하자, 스탈린과의 협의를 거쳐 마오는 주요 모순이 노동계급과 민족부르주아지 사이로 이동했다고 공식 선언하고 민족부르주아지를 더 이상 중간계급으로 보지 않았다. 1952년 6월 마오쩌둥은 노동계급과 민족부르주아지 사이의 모순이 국가의 주요 내부 모순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1952년 1월 시작된 ‘오반(五反)’ 운동은 사적 산업·상업 부문을 대상으로 민족부르주아지를 규율하려는 것이었고,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감독을 동원하면서 법을 준수하는 자본가와 연합하고 ‘불법’ 요소를 고립·처벌하는 방침을 취했다. 1953년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하는 새 총노선을 채택하여 10~15년 내에 공업화와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수하고자 했고, 1954~1956년에는 ‘평화적 매입’ 정책과 국가자본주의 형식을 통해 자본주의 산업·상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신민주주의 담론은 1953년 마오가 중국이 사회주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견해를 강조하면서 쇠퇴했고, 1956년 자본주의 산업·상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사실상 완료되면서 민족부르주아지는 이행의 대상이 되었다. 제8차 당대회(1956)는 사회주의적 개조 완료 후 국가의 주요 모순이 더 이상 노동계급과 부르주아지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이론가들은 신생 독립국의 해방운동을 분석하기 위해 민족민주주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 과정에서 민족부르주아지를 고전적 서구 부르주아지와 구별되는 범주로 사용했다. 소련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제3세계 민족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적 소유자가 아니며 주로 무역·서비스·금융업에 종사한다고 보았고, 외국 자본과 식민국가의 차별 정책으로 인해 민족해방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1960년 모스크바 국제공산당·노동당 회의에서 ‘민족민주주의’가 공식 노선이 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commonprogram.science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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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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