Национальная по форме,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по содержанию · 1925–1980년대

형식은 민족적, 내용은 사회주의적

National in Form, Socialist in Content

소련 문화 정책의 공식 정식으로, 각 민족은 자기 언어와 예술 형식을 유지하되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은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사회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스탈린이 1925년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연설에서 “내용은 프롤레타리아적이고 형식은 민족적인” 문화라는 표현으로 제시했고, 제16차 당대회(1930)에서 소련 민족 문화 정책의 표준 정식으로 굳었다. 민족어 출판과 민족 극장, 민족 무용단을 국가가 지원하는 근거이자, 동시에 그 안에 담길 내용을 당이 심사하는 근거로 함께 작동했다.

상세

이 정식은 무엇을 해결하려 했나

소련은 두 가지를 동시에 약속한 국가였다. 하나는 억압받던 민족들의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계급 없는 하나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이 둘은 그냥 두면 충돌한다. 민족 문화를 키우면 민족주의가 자라고, 하나의 문화로 밀어붙이면 러시아화가 된다.

이 정식은 그 충돌을 형식과 내용의 구별로 봉합한다. 우즈베크어로 쓴 소설과 러시아어로 쓴 소설은 형식이 다를 뿐, 노동과 계획과 당을 말한다는 점에서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어 신문을 늘리는 일과 그 신문의 논조를 통일하는 일이 하나의 정책 안에서 모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했나

전성기에는 이 원칙이 대규모 투자로 나타났다. 문자가 없던 언어에 문자가 만들어지고, 민족어 교과서와 사전이 편찬되고, 각 공화국에 국립 극장과 오페라단, 민속 무용단이 세워졌다. 코레니자치야가 사람과 기구를 다뤘다면 이 정식은 그 기구가 생산할 문화의 성격을 규정했다.

동시에 이 정식은 검열의 문법이기도 했다. 민족 서사시나 전통 종교 문화처럼 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번역되지 않는 것들은 ‘봉건 잔재’로 분류되었고, 민족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혐의를 받았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형식이고 어디부터가 금지되는 내용인지는 시기마다 달라졌으므로, 같은 작품이 10년 사이에 표창과 금지를 오가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무엇이 남았나

1930년대 후반 이후 러시아 중심 서사가 강해지고 소비에트 애국주의맏형 러시아 인민론이 전면에 나오면서, ‘민족적 형식’의 폭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그러나 정식 자체는 폐기되지 않고 소련 말기까지 문화 정책의 공식 언어로 남았다.

연구자들의 평가는 갈린다. 이 정식을 민족 문화를 무대 의상 수준으로 축소한 장치로 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 테리 마틴처럼 소련을 ‘적극적 우대 제국’으로 규정하는 연구는 이 원칙 아래 실제로 만들어진 민족어 교육 체계와 문화 기구가 각 민족의 근대적 정체성을 처음으로 제도화했다고 본다. 두 평가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형식만 남기려던 제도가 결과적으로 그 형식을 담을 인력과 기관을 함께 남겼기 때문이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происхождение формулы, речь Сталина 18 мая 1925 г. в КУТВ, закрепление на XVI съезде ВКП(б) (1930).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И. В. Сталин. Политический отчёт ЦК XVI съезду ВКП(б) (1930): развёрнутая формулировка о культуре, национальной по форме и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й по содержанию.
  3. Terry Martin, The Affirmative Action Empire: Nations and Nationalism in the Soviet Union, 1923-1939 (Cornell UP, 2001) — институциональный анализ политики поддержки национальных культур и её пределов.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