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민연합
National Popular Rally
1941년 2월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O)에서 제명된 신사회주의자 마르셀 데아가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세운 파시즘·대독 협력 정당. 프랑스인민당과 함께 비시 정권기의 주요 협력 정당이었고, 반유대주의·인종주의 정책을 주장하며 나치 독일을 찬양했다. 1944년 8월 데아가 독일로 달아나면서 활동이 끝났다.
상세
데아는 1940년 여름 비시 정권이 들어서자 곧바로 단일 국가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1940년 12월 13일 프랑스 경찰에 잠시 체포된 뒤 1941년 2월 당을 세웠고, 당원은 주로 신사회주의 경향의 옛 SFIO 당원 등 프랑스 좌파 출신이었다. 독일 당국은 곧 외젠 들롱클의 극우 조직 사회혁명운동(MSR)과 합치게 했으나, MSR은 당 안에서 사실상 자율을 유지하며 보안대를 맡았다. 1941년 8월 27일 폴 콜레트가 피에르 라발과 데아를 저격한 뒤 데아는 MSR이 자신을 없애려 했다고 비난했고, MSR은 1941년 10월 당에서 쫓겨났다.
당의 이념은 분명히 파시즘이었지만, 보통선거·공교육·반교권주의를 지키고 시청의 마리안 상을 보존하자고 한 점에서 프랑스인민당과 달랐다. 이 때문에 악시옹 프랑세즈 출신의 비시 반동 세력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당은 라발을 지지했고, 데아는 파리 주재 독일 대사 오토 아베츠와 가까웠다. 1942년 11월에는 프랑스인민당을 뺀 주요 협력 단체를 모아 국민혁명전선을 만들어 단일 협력 정당을 이루려 했으나 실패했다.
당원은 많을 때 3만 명이었다고 하나, 역사가 로버트 수시는 2,638명에 불과했고 그중 산업 노동자는 12.8%였다고 본다. 기관지는 《르 나시오날 포퓔레르》였고 데아의 일간지 《뢰브르》도 당을 지원했다. 1944년 3월 데아가 비시 정부의 노동·국민연대 장관이 된 뒤로는 당 조직보다 장관 업무에 힘을 쏟았고, 1944년 8월 17일 거의 혼자 독일로 피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