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진보당 (핀란드)
National Progressive Party (Finland)
핀란드 내전 뒤인 1918년 12월 8일 공화제를 지지한 청년핀란드당 다수파와 핀란드당 소수파가 세운 핀란드의 자유주의 정당. 사회자유주의 강령을 내걸었고, 의석은 적었으나 거의 내내 연립정부에 참여해 여러 차례 총리를 냈다. 1951년 봄 당원 다수가 핀란드 인민당으로 옮기면서 활동을 멈추었다.
상세
국민진보당은 1918년 12월 8일 공화제를 지지한 청년핀란드당의 다수파와 핀란드당의 소수파가 합쳐 세웠다. 핀란드어 출처는 청년핀란드당과 함께 인민당의 다수파도 합류했다고 적는다. 다음 날 두 당의 군주제 지지자들은 국민연합당을 세웠다. 1918년 12월 채택된 강령은 토지개혁, 국가의 일자리 사업과 실업 대책, 주택 건설 참여, 의무 질병보험과 연금, 노동조건과 최저임금 보장 입법, 이를 위한 누진 소득세·재산세를 담은 사회자유주의 강령이었다.
의석은 1919–1927년 10~26석, 1927–1951년 5~11석이었지만, 당은 존속 기간 거의 내내 연립정부에 참여했고 큰 정당들 사이의 타협안으로 자주 총리직을 맡았다. 카를로 카스트렌, 유호 벤놀라, 오스카리 만테레, T. M. 키비매키, 아이모 카얀데르, 리스토 뤼티, 유카 랑겔이 이 당 출신 총리였다.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는 1919–1925년 첫 대통령을 지냈고, 리스토 뤼티는 1940년 대통령에 선출되어 1944년까지 재임했다.
1920년대 당은 농민동맹, 스웨덴인민당과 함께 중도 정부를 구성해, 사회민주당의 지지 아래 1918년 내전 참가자 사면과 사회 여건 개선을 꾀하는 이른바 국민 통합 정책을 펼쳤다. 1930년대에는 라푸아 운동 같은 급진 우파의 압력보다 안정된 합법 노선이 낫다고 보아 국민연합당·농민동맹의 범부르주아 노선에 참여했다. 대외정책에서는 서방, 특히 영국에 기댔다.
계속전쟁 뒤 당은 새 지도자가 부족했고 당 조직도 거의 없었다. 핀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당은 1951년 봄 활동을 멈추었는데, 2월 초 세워진 핀란드 인민당으로 대부분의 활동가가 옮겨 갔기 때문이다. 사카리 투오미오야 등 소수파는 1951년 5월 자유주의자 연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