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겔프주의
Neo-Guelphism
빈첸초 조베르티가 1842년 『이탈리아인의 도덕적·시민적 우위』에서 내놓은, 교황이 이끄는 이탈리아 국가 연합을 꿈꾼 19세기 가톨릭 자유주의 운동. 1846년 비오 9세가 선출되자 큰 기대를 모았으나, 1848년 교황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거부하면서 무너졌다.
상세
근대 정당이 없던 시대라 신겔프주의자는 가톨릭과 통일 지향을 지닌 지식인·귀족·언론인·사업가의 모임에 가까웠고, 강한 민족주의보다 교황이 이끄는 국가 연합을 선호했다. 피에몬테에서는 체사레 발보(1848년 3~7월)와 조베르티 자신(1848년 12월~1849년 2월)이 총리를 지냈고, 교황 정부의 펠레그리노 로시도 지지자였다.
비오 9세가 1848년 4월 29일 훈시로 전쟁에서 물러나고 11월 가에타로 피신하자,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은 낙담했고 반교권 좌파는 교황권이 본질적으로 반동이라는 증거로 여겼다. 제1차 독립전쟁의 패배로 신겔프주의는 너무 온건하고 「교황 편」이라는 평을 들으며 쇠퇴했고, 사보이아 왕가 아래 통일을 꾀하는 의회 우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