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된 시인들의 밤
Night of the Murdered Poets
1952년 8월 12일 모스크바 루뱐카 감옥에서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JAC) 소속 소비에트 유대인 지식인 13명이 처형된 사건이다. 1948년부터 체포되어 3년간 고문과 감금 끝에 간첩죄·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 중에는 이디시어 시인 페레츠 마르키시, 다비트 호프슈테인, 이치크 페페르, 레이프 크비트코와 소설가 다비트 베르겔손 등 5명의 저명한 이디시 작가가 포함되었다. 이 처형은 전후 소련 국가 반유대주의의 정점이자 '뿌리 없는 코스모폴리탄' 캠페인이 폭력적 절정에 이른 시점이었으며, 수개월 후 의사 사건으로 이어졌다.
상세
배경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JAC)는 1942년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 전쟁 수행을 위해 세계 유대인 여론을 동원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위원장은 배우 솔로몬 미호엘스였다. 종전 후 JAC는 홀로코스트 기록 작업과 소련 내 유대인 문화 재건에 주력했으며, 크림 반도에 유대인 자치구 건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스탈린의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미호엘스는 1948년 1월 국가보안부(MGB) 요원에 의해 민스크에서 암살되었다.
사건 경과
1948년 11월 20일 JAC는 강제 해산되었고,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까지 위원회 간부·이디시 작가·의사·학자 등 15명이 체포되었다. 피고인들은 3년간 루뱐카 감옥에서 반복된 구타와 고문으로 대부분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 유일하게 보리스 시멜리오비치만이 끝내 자백을 거부했으며, 그는 2천 회 이상의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재판은 1952년 5월 8일 시작되어 7월 18일 종결되었다. 검사도 변호인도 없이 세 명의 군사판사만 배석한 재판이었고, 판사 알렉산드르 체프초프는 증거의 모순을 들어 수사 재개를 두 차례나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피해자
13명이 루뱐카 지하에서 총살되었고, 리나 시테른(생화학자, 최초의 여성 소비에트 과학원 회원)은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유일하게 생존했으며, 솔로몬 브레그만은 재판 중 혼수상태에 빠져 1953년 1월 옥사했다. 1955년 11월 22일 군사재판부는 모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기념
이 처형은 1960년대부터 서방의 소비에트 유대인 운동에서 기념일로 지켜졌으며, 1977년 예루살렘에서 JAC 희생자 추모비가 제막되었다. 라디오 리버티는 1970년대부터 정기적으로 처형 기념 방송을 통해 처형된 시인들의 작품 낭독과 증언을 소개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full account of the 12 August 1952 execution of 13 JAC defendants, the victims list including five Yiddish writers, the three-year torture/interrogation, the trial structure with no prosecutors or defence, Cheptsov's appeals, and the 1955 rehabilitation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tailed history of the JAC case from the Committee's wartime origins through Mikhoels's assassination, the arrests of 1948-49, the trial, and the execution, with context on the anti-cosmopolitan campaign and the broader antisemitic purges
- archivum.org Blinken OSA Archivum (academic archive): scholarly article by Anastasia Felcher on the 70th anniversary, confirming the execution of 13 JAC members, the link to the Doctors' Plot, Radio Liberty's commemorative broadcasts, and the Western memorialisation from the 1960s on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