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ргбюро ЦК (Организационное бюро ЦК РКП(б)—ВКП(б)) · 1919–1952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

Orgburo of the CPSU Central Committee

1919년부터 1952년까지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있던 기관으로, 당의 조직 업무와 간부 선발·배치를 맡았다. 1952년 제19차 당대회에서 폐지되었고, 그 기능은 확대된 서기국으로 넘어갔다.

상세

첫 조직국은 1919년 1월 16일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블라디미르스키·크레스틴스키·스베르들로프 3명으로 뽑혔다. 같은 해 3월 제8차 당대회는 당 규약을 고쳐 중앙위원회가 정치국·조직국·서기국을 두게 했다. 대회 결의에 따르면 조직국은 중앙위원 5명으로 이루어져 각자 한 분야를 맡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모여 당의 조직 업무 전체를 지휘하며, 2주마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보고해야 했다. 3월 25일 전원회의가 정위원 5명과 후보위원 1명으로 새 조직국을 뽑았고, 이 규정은 1919년 12월 제8차 전러시아 당협의회가 채택한 규약에 들어갔다. 공화국·주 이하 당 위원회에는 조직국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었다.

정치국이 전략 방침과 국정 감시를 맡았다면, 조직국은 지방 당 위원회의 활동을 감독하고 당원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했다. 처음에는 정치국·서기국과 대등한 비중을 두도록 설계되었으나, 서기들이 같은 문제를 상근으로 다룬 반면 조직국원들은 다른 직책을 겸했기 때문에 곧 서기국에 밀렸다. 스탈린·몰로토프·카가노비치처럼 조직국과 정치국에 함께 속한 인물도 있었지만, 조직국원 대부분은 정치국원이나 서기보다 비중이 낮았다. 스탈린 시기 조직국의 활동은 서기국과 사실상 하나로 합쳐졌다. 1930년대 말에는 후보위원을 더 뽑지 않았고, 스탈린도 회의에 거의 나오지 않아 안드레이 안드레예프 같은 고참이 회의를 이끌며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를 처리했다.

1940년대에는 알렉산드르 셰르바코프와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번갈아 회의를 이끌며 조직국의 역할을 다시 키우려 했다. 1945~1946년에는 게오르기 말렌코프가 회의를 주재했고, 1946년 8월부터 즈다노프가 주재를 맡으면서 서기국의 제2인자가 되었다. 즈다노프 아래서 조직국은 이념 문제에 적극 개입해 1946년 잡지 『즈베즈다』와 『레닌그라드』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 즈다노프가 죽은 뒤에는 말렌코프와 즈다노프가 키운 알렉세이 쿠즈네초프가 조직국의 주도권을 다투었고, 쿠즈네초프는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조직국은 1952년 10월 제19차 당대회에서 폐지되었다.

직책 계보 · 명부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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