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지 농민
Small-holding peasants (Parzellenbauern)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쓴 개념으로,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1세 시대에 봉건 부담에서 풀려나 작은 땅(분할지)을 제 것으로 갖게 된 프랑스 소농을 가리킨다. 마르크스는 이들이 서로 고립되어 스스로를 대표하지 못하는 「자루 속 감자」 같은 계급이며, 그래서 루이 보나파르트를 자기 대표로 뽑았다고 분석했다.
상세
「분할지」(Parzelle)는 잘게 나뉜 작은 농지를 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대혁명과 나폴레옹은 봉건 농민을 자기 땅을 가진 분할지 농민으로 바꾸었다. 이 작은 소유는 막 무너진 토지 귀족에 맞선 방벽이었고, 그 뿌리가 프랑스 땅에 깊이 박히면서 봉건제는 양분을 잃었다. 1804년 나폴레옹 법전도 상속 재산을 모든 자식에게 똑같이 나누도록 정해, 땅은 대를 이어 더 잘게 나뉘었다.
마르크스는 분할지 농민의 처지를 이렇게 그렸다. 가족마다 거의 자급자족하며 사회와의 교류보다 자연과의 교환으로 살아가니, 서로 이어질 일이 없다. 「이렇게 프랑스 국민의 큰 덩어리는 같은 단위의 크기를 그저 더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자루 속 감자들이 감자 한 자루를 이루는 것과 같다.」 이들은 다른 계급과 생활 방식과 이해가 갈린다는 점에서 계급을 이루지만, 서로 아무런 공동체도 전국적 결속도 정치 조직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계급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대표하지 못하고, 대표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대표자는 위에서 비와 햇빛을 내려 주는 주인, 무제한의 행정 권력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1848년 12월 10일 대통령 선거와 1851년 12월 2일 쿠데타를 떠받친 것이 이 계급이었다. 「보나파르트는 한 계급을 대표한다. 그것도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수가 많은 계급, 분할지 농민을 대표한다.」 다만 보나파르트 왕조가 대표하는 것은 도시와 손잡고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적 농민이 아니라, 제 분할지를 굳히고 제국의 유령에게 구원받기를 바라는 보수적 농민이었다. 1848년 임시정부가 직접세를 크게 올린 이른바 45상팀 세금도 농촌 소유자들을 공화국에서 돌아서게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분할지의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고 보았다. 19세기를 지나며 도시의 고리대금업자가 봉건 영주를, 저당 빚이 봉건 부담을, 부르주아 자본이 귀족의 토지 소유를 대신했다. 분할지는 이제 자본가가 땅에서 이윤과 이자와 지대를 거두어 가는 구실일 뿐이고, 농민의 이해는 나폴레옹 때와 달리 자본과 맞선다. 그래서 농민은 부르주아 질서를 뒤엎으려는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타고난 동맹자이자 지도자」를 찾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