Đảng Nhân dân Cách mạng Việt Nam · 1962–1976

남베트남 인민혁명당

People's Revolutionary Party of South Vietnam

남베트남 인민혁명당(PRP)은 1962년 1월 1일 창설돼 남베트남에서 노동 운동·소작 쟁의·반미 무력 투쟁을 지도하고 민족해방전선(NLF)을 이끈 지하 혁명 정당이다. 공개적으로는 독자 정당이었으나 실체상 베트남노동당의 남부 당부로도 규정되며, 제4차 당대회에서 노동당과 합당해 베트남공산당이 됐다는 서술과 1975년 4월 30일 해산됐다는 서술이 상충한다.

상세

창설과 조직

남베트남 인민혁명당은 1962년 1월 1일 떠이닌 전투지구에서 남부 중앙사무국(Trung ương Cục miền Nam)이 베트남노동당 중앙의 방침에 기초해 세운 정치 조직이다. 창설은 1962년 1월 18일 하노이 라디오 방송으로 공표됐다. 천명된 목표는 제국주의·봉건주의·식민주의와 싸우는 것이었고, 같은 방송은 이 당이 남베트남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공개적으로는 명시적 공산당이 아니었다.

당은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았고 그 중앙위원회는 흔히 남베트남 중앙사무국(COSVN)으로 불렸다. 중앙위원회에는 베트남인민군과의 관계를 조정하는 군사위원, 민족해방전선 통제, 일반 행정이라는 세 가지 주요 책임이 있었다. 조직의 최소 단위는 세포였고, 1~7개의 세포가 거리·촌락 단위 조직인 치보를 구성했다.

배경과 강령

창당의 배경에는 응오딘지엠 정권의 토지 개혁과 농촌 탄압에 맞선 소작 쟁의·농민회와 공산주의자 조직의 연합이 있었다. 창당 시 당원 수는 10만 명 이상이었고, 1962년 1월 강령은 응오딘지엠 정권 전복과 민족민주연합정부 수립, 민주적 자유 확대·정치범 사면·전략촌 폐지, 미국과 그 수족의 경제 독점 철폐, 지대 인하와 토지개혁 준비, 미군사고문단 철폐와 외국 군사기지 폐쇄, 남녀 및 민족 간 평등과 소수민족 자치권 인정, 평화적 외교 정책, 북남 관계 정상화와 평화적 통일을 제시했다.

민족해방전선의 지도 세력

이 당은 민족해방전선의 주도 세력이었고, 국가·지역 각급에서 당 위원회가 전선의 활동을 지도했다. 루이즈 브라운은 민족해방전선이 1962년 1월 인민혁명당으로 창설된 남부의 당에 의해 통제됐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인민혁명당은 남부 정당이고 당원도 남부 출신이었지만 북베트남의 노동당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제임스 로스록은 1961년 12월 7일자 당 통첩을 인용해 인민혁명당이 독립적 존재로 나타나지만 실로 노동당이 북에서 남으로 통일되어 호찌민이 이끄는 중앙집행위원회의 지도를 받는다고 적었다. 노획된 베트콩 문서도 인민혁명당을 노동당의 남베트남 기구로 규정한다.

독자 명의와 남부 당부라는 실체

명칭 변경은 남부 당부의 요구에서 나왔다. 남부 당부는 고유 명칭을 가져야 하며, 옛 명칭을 공개적으로 유지하면 내외의 적이 북베트남의 남부 개입·전복으로 왜곡하기 쉬워 국제법적 투쟁에서 북베트남이 곤란해진다고 제기했다. 1961년 1월 27일 중앙사무국 지시는 이것이 단지 개칭일 뿐이며, 대외 명의는 북부와 달라도 내부적으로는 전후를 막론하고 남부 당부가 베트남노동당의 일부로서 호찌민이 이끄는 중앙집행위원회의 지도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베트남어 위키백과도 실체상 남베트남에서의 노동당 남부 당부로 규정한다. 공개 명의상의 독자 정당성과 조직 실체상의 남부 당부라는 두 규정이 긴장 관계에 놓인다.

1951년 제2차 당대회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3개 당 분할 결정과 영어 위키백과의 노동당 남부 하위 지부 서술은 이런 정리에 연결되지만, 그 결정을 인민혁명당 창설의 직접 계기로 단정하는 서술은 출처가 명시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

지도부와 중앙사무국

지도부에 대해서는 상충하는 사료가 있다. 미국 측 문서에 따르면 의장은 보찌꽁, 총비서는 후인반떰이었고 그가 알제리 주재 전선 대표로 임명된 뒤 쩐남쭝이 그를 대체했다. 또 다른 정보 문서는 응우옌반꾹이 의장, 쩐남쭝이 총비서, 보찌꽁이 상무위원이었다고 전한다. 보찌꽁(1912년 8월 7일~2011년 9월 8일)은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로, 1961년 민족해방전선 창립 구성원이자 부의장이 됐고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전선 상임 부의장을 지냈으며 이후 남베트남 중앙사무국 부비서로서 전쟁 중 남부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중앙사무국은 1962년부터 1976년 해체 때까지 공식적으로 남베트남 인민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로 알려졌으며, 전쟁 중 남베트남 안에서의 북베트남 정치·군사 본부였다. 미국 측이 중앙사무국이라 부른 것은 분산된 고기동 본부 네트워크였다. 첫 비서는 응우옌반린이었고 그가 군사위원회 비서도 겸했으며, 응우옌찌타인이 남부 지역 정치 담당으로 본부의 지배적 인물이 됐고 사후 팜훙이 그를 대체해 중앙사무국과 군사위원회의 첫 비서가 됐다. 영어 위키백과는 그의 도착을 1963년 말에서 1964년 초로 적지만, 다른 사료는 파견을 1964년 10월로 적어 시점에 차이가 있다. 중앙사무국은 1961년 남부와 중부의 노동당 지부가 중앙 남부 지도부로 통합되면서 만들어졌고, 처음에는 캄보디아 국경 부근 떠이닌성에 위치했다.

합당·개칭과 해체 시기의 상충

영어·한국어 위키백과는 1976년 제4차 당대회에서 베트남노동당이 남베트남 인민혁명당과 합병해 1930년의 원래 명칭인 베트남공산당을 창설했고 당시 당원 수가 155만 명이었다고 서술한다. 반면 베트남 주미대사관이 게재한 VNA 보도는 같은 대회가 노동당을 베트남공산당으로 개칭하고 새 당규약을 통과시켰다고만 적을 뿐 인민혁명당과의 합병은 명시하지 않는다. 대회는 1976년 12월 14~20일 하노이에서 열려 1,008명 대표가 참석했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합당 일자를 1976년 12월 20일로 특정한다.

해산 시기에도 상충하는 사료가 있다. 베트남어 위키백과는 해산 일자를 1975년 4월 30일로 적고 승계를 베트남공산당으로 표기하며, 1975년 4월 30일 이후 남부 당부가 공개적으로 노동당의 일부가 되었고 '베트남 인민혁명당' 명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서술한다. 영어 위키백과의 분류도 이 조직을 1975년 해산으로 분류해 이런 서술을 뒷받침한다. 반면 영어·한국어 위키백과는 1976년 제4차 당대회에서의 합병을 해산으로 본다. 한편 1976년 7월 2일 통일 국회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선포한 것은 별개의 사건으로, 이를 남부 당부의 편입 시점으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이 당은 1960년 12월 20일 떠이닌성 떤럽 마을에서 세워진 민족해방전선을 지도하는 하위 지부의 지위에서 출발했고, 영어 위키백과는 민족해방전선의 정치 부문을 인민혁명당으로 기재하며 전선이 1977년 2월 4일 베트남조국전선에 합병됐다고 서술한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vi.wikipedia.org
  3. 위키백과 (한국어)
  4. 위키백과 (영문)
  5. vietnamembassy-usa.org
  6. 위키백과 (영문)
  7. 위키백과 (영문)
  8.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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