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ußische Nationalversammlung · 1848

프로이센 국민의회 (1848)

Prussian National Assembly (1848)

1848년 3월 혁명 뒤 프로이센 헌법을 만들기 위해 남성 보통·평등·간접선거로 뽑혀 5월 22일 베를린에서 개원한 의회. 프랑크푸르트보다 수공업자·농민이 많은 「민중에 가까운」 의회였다. 귀족 칭호 폐지 등으로 국왕과 충돌한 끝에 11월 브란덴부르크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고, 12월 5일 국왕이 해산하고 헌법을 흠정했다.

상세

선거는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와 같은 1848년 5월 1일에 치러졌다. 연합 주의회는 의회가 국왕과 「합의」해 헌법을 만들도록 정했다. 의회는 6월 20일 캄프하우젠 정부의 헌법안을 거부했고, 7월의 「발데크 헌장」은 국왕과 보수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월 12일 「신의 은총에 의한」 문구를 지웠고 10월 31일 귀족 칭호와 특권을 없앴다.

국왕은 11월 브란덴부르크 백작을 총리로 앉히고 브랑겔의 군대로 베를린을 되찾았으며, 군대가 11월 10일과 15일 회의를 해산했다. 요한 야코비는 이때 국왕에게 「진실을 듣지 않으려는 것이 왕들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흠정 헌법은 1850년 개정되어 1918년까지 이어진 3계급 선거권을 담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de.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