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헤나우 명령
Reichenau Order
1941년 10월 10일 독일 제6군 사령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가 내린 명령 「동방 공간에서 부대의 행동」. 동부전선의 병사를 가차 없는 민족 이념의 담지자이자 복수자로 규정하고, ‘유대인 하등인간’에 대한 가혹한 응징의 필요를 병사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히틀러가 이를 훌륭하다고 평가하자 다른 사령관들이 본뜬 명령을 잇달아 냈다.
상세
1941년 9월 29~30일 키이우 근교 바비 야르에서 국방군이 가담한 가운데 유대인 3만 3000명 넘게 학살되자 제6군 부대 안에 불만의 기색이 보였다. 역사가 A. M. 예르마코프는 라이헤나우가 이에 대응해 이 명령을 냈다고 본다. 명령은 ‘유대-볼셰비키 체제’에 맞선 원정의 목표가 그 권력 수단의 완전한 분쇄라고 하고, 독일군 후방의 봉기는 언제나 유대인이 선동한 것이니 싹부터 짓밟아야 한다고 했다. 명령은 중대 단위까지 내려가 병사들 앞에서 낭독되었다.
남부 집단군 사령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는 이 명령을 예하 부대에 돌렸다. 히틀러가 이를 훌륭하다며 동부전선의 모든 군 사령관이 본받으라고 하자, 육군 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도 군 사령관들에게 비슷한 명령을 내리라고 요청했다. 11월에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11월 20일), 헤르만 호트, 에른스트 부슈, 카를 키칭거가 유대인 처우에 관한 명령에 서명했다. 11월 24일 제3기갑군단장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처럼 주민을 정중히 대하라고 한 장군도 있었지만, 예르마코프는 국방군 점령 정책의 법적 토대를 만든 것은 그런 예외가 아니라 카이텔,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 만슈타인, 호트 같은 지휘관들의 명령이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