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국민당
Romanian National Party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시기 트란실바니아·바나트 등지 루마니아인의 이익을 대변한 정당. 1881년 두 지역 정당이 합쳐 생겼고, 1918년 알바이울리아 대회를 조직해 트란실바니아와 루마니아의 통합을 이끌었다. 통합 뒤 루마니아의 주요 정당이 되어 1919~1920년 정부를 이끌었고, 1926년 농민당과 합쳐 국민농민당이 되었다.
상세
루마니아어 출처에 따르면 1869년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인 국민당과 바나트·헝가리 루마니아인 국민당이 각각 생겼고, 두 당은 1881년 5월 12~14일 시비우 통합 회의에서 하나가 되었다. 지도부는 그리스 가톨릭 교도가 다수였다. 강령은 트란실바니아 자치 회복, 루마니아인 지역의 행정·사법에서 루마니아어 사용, 보통선거, 마자르화 정책 반대를 내걸었다. 당은 1867년 대타협을 인정하지 않고 헝가리 선거에 불참하는 「수동주의」를 지키다가 1905년 선거 참여로 돌아섰다.
1892년 당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메모란둠」을 올렸고, 이 때문에 집행위원회 전원이 기소되어 1894년 클루지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1902년 이오안 라치우가 죽은 뒤 율리우 마니우, 알렉산드루 바이다보에보드, 테오도르 미할리 등이 새 지도자가 되었다. 당은 처음에는 분리가 아닌 헝가리 개혁을 목표로 헝가리 엘리트와 타협을 거듭 시도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1918년 10월 오라데아의 집행위원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의 독립을 선언했고, 당은 사회민주당과 함께 12월 1일 알바이울리아 대국민회의를 조직해 루마니아와의 통합을 결의했다. 통합 뒤 당명을 「국민당」으로 쓰고 1919년 8월 마니우를 당수로 뽑았다. 1919년 11월 총선에서 트란실바니아에만 후보를 내고도 169석을 얻어 최대 정당이 되었고, 농민당 등과 의회 블록을 이루어 바이다보에보드 정부를 세웠으나 1920년 3월 국왕 페르디난드에게 해임되었다.
1920년 선거에서는 27석에 그쳤다. 1922년 보수민주당과 합치며 본부를 클루지에서 부쿠레슈티로 옮겼고, 1925년 니콜라에 이오르가의 국민인민당을 흡수했다. 1926년 10월 10일 부쿠레슈티 대회에서 이온 미할라케의 농민당과의 합당을 승인해 국민농민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