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커 크러이너
Ruska Krajina
1918년 12월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인민법 제10호가 마러머로시·우고처·베레그·웅 네 주의 루신인 거주 지역에 세운 자치 지역. 이름은 헝가리어로 「루신 땅」이라는 뜻이다. 내정 자치를 받았고 외교·군사·재정 등 공동 사무는 헝가리 국회에 남았다. 평의회 공화국은 이를 이어 루신 인민위원부를 두었으나 1919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군과 루마니아군의 점령으로 끝났고, 그 땅은 체코슬로바키아의 포드카르파츠카 루스가 되었다.
상세
1918년 11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무너지자 루신인 지역에서는 몇 주마다 평의회가 열려 서로 다른 길을 주장했다. 후스트의 평의회처럼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의 통합을 요구한 곳도 있었고, 웅바르 평의회(11월 9일)처럼 헝가리 안의 자치를 요구하며 헝가리 정부와 협상한 곳도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루신 민족 자치당 창립자들은 루신인이 대평원으로 추수 일을 다니며 먹고살았고, 그들을 동화하려는 슬라브 이웃 나라보다 헝가리 안에서 말과 관습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보아 헝가리 안의 자치를 원했다.
그 결과 나온 인민법 제10호는 「마러머로시·우고처·베레그·웅 주의 루신인 거주 지역으로 루스커 크러이너라는 이름의 자치 법역(총독부 관할 지역)을 만든다」고 정하고, 루신어를 쓰지 않는 주민의 지방·문화 자치를 보장하게 했다. 외교·군사·재정·국적·민사와 형사 입법·경제·교통·사회정책은 헝가리 국회의 공동 사무였다. 자치 정부의 소재지는 웅바르였고, 카로이 미하이 정부는 시테판 아고시톤을 총독으로, 서보 오레스트를 루스커 크러이너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경계가 정해지지 않았고, 웅바르와 그 주변은 1919년 1월 12일 체코슬로바키아군에 점령되었다. 3월 4일 선거로 뽑힌 의회는 3월 12일 문카치에서 처음 모여 자치 지역의 경계를 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3월 21일 평의회 공화국이 들어서자 서보는 루신 인민위원 자리를 거절했고, 3월 24일부터 시테판이 루신 인민위원을 맡아 「소비에트 루스커 크러이너」를 이끌었다. 4월 7일 지방 평의회 선거가 치러지고 9일부터 루신 붉은 근위대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4월 8일 서보가 자치 지역의 통치평의회를 꾸렸으나 4월 17일 세 번째 회의를 문카치 지도부의 무장대가 해산했다. 4월 16일 루마니아군, 23일 체코슬로바키아군이 점령에 나서 29일 이곳의 평의회 권력은 40일 만에 끝났다.
5월 8일 루신 평의회들의 대표자 회의는 완전한 민족 자치를 조건으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통합을 받아들였고, 생제르맹 조약 제53조가 카르파티아 루신인의 자치를 약속했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헌법은 옛 루스커 크러이너를 포드카르파츠카 루스(Podkarpatská Rus)라 고쳐 불렀다. 그 사이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6월 23일 헌법은 여전히 루신 인민위원부와 루신인 민족 지구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