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산당
South African Communist Party
1921년 2월 12일 「남아프리카 공산당」(Communist Party of South Africa, CPSA)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한 남아프리카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1950년 공산주의 탄압법으로 불법화되었고, 1953년 지하에서 지금 이름으로 재건되어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을 벌였다. 1990년 합법화되었으며, ANC·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COSATU)와 삼자동맹을 이루고 있다.
상세
CPSA는 1921년 국제사회주의동맹 등이 합쳐 윌리엄 H. 앤드루스의 지도 아래 창당했고, 코민테른에 가입했다. 당은 1922년 백인 광부들의 파업인 랜드 반란 때 처음 이름을 알렸는데, 이때의 태도에 대해 출처가 엇갈린다. 영어 출처는 당이 파업을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투쟁으로 지지하면서도 인종주의 구호와는 거리를 두었다고 적고, 아프리칸스어 출처는 당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여 백인 남아프리카를 위해 싸우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적는다. 이후 당은 흑인 노동자 조직으로 방향을 바꾸어 1928년에는 당원 1,750명 가운데 1,600명이 흑인이었다. 코민테른은 남아프리카를 원주민의 나라로 보는 「원주민 공화국」 테제를 채택하게 했는데, 영어 출처는 그 시기를 1928년으로, 아프리칸스어 출처는 1924년으로 적는다. 당은 1948년 무렵 이 노선을 공식 폐기했다.
1946년 당은 ANC와 함께 아프리카 광산노동자 파업에서 시작된 총파업에 참여했고, 브람 피셔 등 많은 당원이 체포되었다. 1948년 집권한 국민당이 공산주의 탄압법을 만들자, 영어 출처에 따르면 당은 다수결로 스스로 해산한 뒤 1950년 불법으로 선포되었다. 아프리칸스어 출처는 1950년 금지되자 지하로 들어갔다고 적는다. 1953년 옛 당원들이 남아프리카 공산당(SACP)을 결성했고, 당은 소련과 노선을 같이했다. 흑인 당원들은 ANC에 들어가 지도부에 진출하도록 권유받았고, 백인 당원들은 민주주의자회의를 만들어 회의동맹에 참여했다. 당은 회의동맹이 채택한 자유헌장의 작성에 관여했다. 모지스 코타니는 오랫동안 ANC 재무를 맡았다.
1961년 SACP와 ANC 지도자들은 무장투쟁 조직 움콘토 웨 시즈웨(MK, 「민족의 창」)를 만들었다. 조 슬로보는 MK의 참모장(아프리칸스어 출처는 1961년 사령관으로 적는다)이었고, 그의 아내 루스 퍼스트는 대표적 이론가였다. 지도부가 체포되자 해방운동은 망명 지도부 아래 놓였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금과 무기를 댔다. 1984년 슬로보가 사무총장이 되었다. 1990년 2월 2일 정부가 SACP와 ANC 등의 금지를 풀었고, 1991년 MK 참모장 출신 크리스 하니가 사무총장을 이었으나 1993년 4월 10일 복스버그에서 백인 극우주의자 야누시 발루시에게 암살되었다.
1994년 SACP는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ANC 명부로 의회에 진출했으며, 넬슨 만델라는 슬로보를 주택부 장관에 임명했다. ANC 정부가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고 외국인 투자에 기대자 동맹 안의 긴장이 커졌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ANC는 2013년 만델라가 죽은 뒤 그가 SACP 당원이었고 중앙위원을 지냈다고 확인했다. SACP는 타보 음베키(1999~2008)의 정책에 맞서 2007년 ANC 의장 선거와 2008년 대통령 소환으로 그를 물러나게 하는 데 힘을 보탰고, 제이컵 주마를 지지했다. 2017년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메치마홀로 지방 보궐선거에 나서 비례대표 3석을 얻었고, 2024년 12월에는 2026년 지방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