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방위구상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1983년 3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장기 연구개발 계획이다. 탄도미사일을 비행 전 단계 전역에서 요격해 핵무기를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주된 요소는 우주 기반이었으나 지상 요격체와 지향성 에너지 무기, 센서, 지휘통제·컴퓨팅도 포함했다. 1984년 1월 국방부에 전략방위구상기구(SDIO)가 설치되어 개발을 관장했고, '스타워즈'라는 별칭은 비판자들이 붙인 조롱조 이름이다. 상호확증파괴 독트린과 1972년 탄도탄방어(ABM) 조약 체제를 정면으로 겨냥해 미소 군축 교섭의 최대 쟁점이 되었다.
상세
기원
구상의 뿌리는 1960년대의 국가 미사일방어 계획들(나이키 제우스, 나이키-X, 센티널, 세이프가드)과 우주 기반 요격 구상(BAMBI, 프로젝트 디펜더)에 있었다. 레이건은 1967년 로런스 리버모어에서 에드워드 텔러를 만나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1979년 노라드 셰이엔산 방문에서는 적 미사일을 추적할 수는 있어도 요격할 수는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니얼 그레이엄의 '하이 프런티어' 제안도 배경이 되었다.
발표와 조직
1983년 3월 23일 전국 TV 연설에서 레이건은 '과학기술계에 … 이 핵무기들을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만들 수단을 우리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무모한 스타워즈 구상'이라 비판하면서 별칭이 퍼졌다. 1984년 1월 SDIO가 설치되고 3월 27일 제임스 에이브러햄슨 공군 중장이 초대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85년까지 SDIO는 22개 싱크탱크와 항공우주 기업을 아우르는 우산 조직이 되었다.
기술적 시도
초기에는 엑스선 레이저(핵 펌핑 방식의 엑스칼리버), 화학 레이저(MIRACL), 우주 기반 레이저, 중성 입자빔, 레일건(CHECMATE), 운동에너지 요격체(HOE, ERIS, HEDI) 등이 추진되었고, 우주 기반 요격체는 1986년 로웰 우드와 에드워드 텔러가 제안한 브릴리언트 페블스로 발전했다. 1984년 6월 10일 HOE4 시험은 최초의 대기권 밖 직격 요격에 성공했으나, 1993년 언론 보도로 표적에 가해진 조작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고 미 의회는 관련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
비판과 궤도 수정
베테와 가윈은 레이저 방어망이 실현 불가능하고 기만체로 쉽게 무력화된다고 논박했으며, 1984년 3월 우려하는 과학자 연합 보고서는 엑스선 레이저에 유용한 전망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1985년 6월 데이비드 파나스는 전투관리 컴퓨팅 패널에서 사퇴하며 이 구상을 '사기'라고 규정했다. 1986년 미국물리학회 검토(1987년 초 공개)는 어떤 지향성 에너지 체계도 실전 배치에 근접하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이후 예산이 삭감되었다. SDIO는 1986년 말 '전략방위체계 1단계 구조'로 방향을 틀었고, 1990년에는 브릴리언트 페블스를 기준선으로 삼았다. 1991년 조지 H. W. 부시가 승인한 GPALS는 최대 200기 요격을 목표로 10년 예산을 530억 달러에서 410억 달러로 낮췄다.
군축 교섭
SDI는 우주 군축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1986년 10월 11~12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핵무기 전면 폐기 직전까지 갔으나, 고르바초프가 SDI를 10년간 실험실에 묶어둘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레이건이 이를 거부해 결렬되었다. 레이건은 10년 내 모든 탄도미사일 폐기와 사후 전략방어 배치 권리, SDI 기술 공유를 맞제안했으나 고르바초프는 기술 공유 제안을 일축했다. 1987년 2월 고르바초프가 SDI를 중거리 핵전력 협상에서 분리하면서 12월 INF 조약이 성사되었고, 레이건 임기 중 START 합의는 없었다.
소련의 대응
발표 직후 유리 안드로포프는 미국이 선제타격 능력을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소련은 전략핵전력의 생존성 제고, 방어 제층 돌파 능력 향상, 우주 전투정거장과 중계 거울 파괴 수단 개발 등 비대칭 대응을 구상했다. 스키프 1MW 이산화탄소 레이저와 카스카드 대위성 플랫폼이 추진되었고, 1987년 5월 15일 에네르기야에 실려 발사된 폴류스는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레이건의 SDI가 소련을 군비경쟁으로 몰아붙여 붕괴를 앞당겼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으나, 확립된 사실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자들 중에는 SDI의 실제 목적이 소련 경제를 압박해 파탄시키는 데 있었다는 견해(오만드, 고르디옙스키)도 있는데, 이는 회고와 의견에 기반한 서술이다. 반대로 비밀해제된 문서는 고르바초프의 참모들이 비대칭 대응을 실행 가능하고 비용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SDI 압력이 1987년 2월 분리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고 본다. 소련의 대탄도탄 연구는 SDI 이전부터 존재했고, 1983년 고르바초프는 SDI가 '세계를 새로운 군비경쟁 단계로 몰아넣고 전략 정세를 불안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와 유산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제네바, 레이캬비크, 워싱턴,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SDI를 둘러싸고 맞섰다. 소련과 영국 등 동맹국 지도자들은 효과적인 방어가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하고 새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사하로프는 SDI가 MAD보다 위험하다고 보았다. 1972년 ABM 조약은 각 당사국의 요격단지를 2곳(1974년 1곳)으로 제한했는데, SDI의 지상 요격체와 우주 시험은 이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미국이 조약에서 탈퇴한 것은 2002년(부시, 2001년 12월 통보, 2002년 6월 발효)이었다. SDI는 공식 폐기가 아니라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탄도탄방어기구(BMDO)로 개칭하고 전구 탄도미사일과 지상 요격체로 재조정하면서 종료되었다. 이 기구는 2002년 미사일방어국(MDA)으로 개칭되었고, 우주 기반 요격체는 1993년 포기되었다. 2019년 관련 요소가 우주개발국(SDA) 아래 재등장했고, 2025년 '골든 돔'은 SDI와 대체로 유사하면서 이를 확장한 체계로 설명된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program announcement (March 23, 1983), nickname 'Star Wars,' SDIO establishment (1984), APS report (1987), transition to BMDO (1993)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name СОИ, nickname Звёздные войны, goals, technical components, Soviet response
- armscontrol.org SDI as obstacle at 1986 Reykjavik Summit, Gorbachev's demand for laboratory confinement, Soviet view as first-strike enabler
- ahf.nuclearmuseum.org Reagan's 1967 Teller meeting, NORAD visit motivation, MAD and ABM Treaty context
- 위키백과 (러시아어)
- ahf.nuclearmuseum.org
- 위키백과 (영문)
- armscontrol.org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