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Structural Adjustment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에 대출을 주거나 기존 대출의 금리를 낮추는 대가로 특정 정책 이행을 요구하는 조건부 대출과 그 정책 패키지다. 두 기구는 '경제구조를 조정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며 국제수지를 회복한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내용은 보통 민영화 확대, 무역·외국인투자 자유화, 정부 재정적자 축소를 중심으로 했다. 대출에 붙는 조건성 조항은 사회 부문에 미친 영향 때문에 비판받아 왔다.
상세
조건과 적용
구조조정 대출의 조건에는 보통 환율 평가절하를 통한 국제수지 적자 축소, 증세와 정부지출 삭감(긴축)을 통한 재정적자 축소, 대외채무 재조정, 식료품 보조금 철폐, 공공서비스 가격 인상, 임금 삭감 같은 안정화 정책이 포함된다. 여기에 시장 자유화, 국영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 매각, 금융기관 신설, 외국인투자자 권리 강화, 수출과 자원추출 중심의 경제구조 재편, 정부고용 축소 같은 장기 조정정책이 더해진다.
확산과 사회적 결과
구조조정은 IMF·세계은행이 개발한 정책으로 두 기구의 최상위 경제학자들이 자문했다. 그 실질적 기원은 1970년대 후반의 세계경제적 재난, 곧 석유위기와 채무위기, 복수(複數)의 경제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에 있다. 1979~80년 달러 위기 이후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으로 저소득·중간소득국에 대한 자본 공급이 급감했고, 1982년 멕시코 채무불이행이 이를 심화시켰다. 멕시코가 대출 대가로 구조조정을 처음 시행했고, 1980년대에 IMF·세계은행은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 유사한 대출 패키지를 만들었다. 1980년대 채무위기는 IMF에 70개 이상 개발도상국에 유사한 포괄적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요할 지렛대를 주었고, 국가개입·내향적 개발에서 수출주도·민간부문 주도·외국인수입과 외국인직접투자에 개방된 경제로 전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카르도주와 팔레투가 지적한 대로 북방 선진국의 자본주의적 통제가 재현되었고, 소규모 비산업 기업과 농업부문은 보호 축소로 피해를 봤으며, 초국적 행위자의 부상으로 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가 약화됐다.
시기 구분과 논쟁
세계은행 계통 서술은 구조조정 대출을 '1980년 초' 도입했다고 하므로 시작연도는 1980년으로 잡는다. 1982년은 멕시코 채무불이행이라는 확산의 촉매 사건 연도이지 구조조정 자체의 출발연도가 아니다. 조정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국제금융기구의 표준 정책수단으로 작동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빈곤감축전략서(PRSP)가 구조조정대출을 사실상 대체했으며 2002년에는 PRSP 도입이라는 또 한 번의 전환이 있었다. 따라서 '1980년대–1990년대'라는 기간 표기는 국제금융기구 정책수단으로서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며, 종료연도는 확정하지 않는다. 구조조정과 넓은 의미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언제 끝났는지는 2000년 무렵이라는 견해와 2008년 금융위기까지라는 견해가 갈리므로 특정 연도로 잘라 쓸 수 없다.
성과 평가도 갈린다. 조반니 아리기에 따르면 컨센서스 기구들은 저·중간소득국의 재정적 곤경을 이용해 구조조정 조치를 강요했고, 이는 이들 나라의 세계 부의 위계 내 위치를 개선하지 못한 채 부의 흐름을 미국의 부·권력 부활로 돌리는 데 기여했다. 반면 일부 연구는 구조조정이 성장·개혁과 '약하게 연관'되고 인플레이션을 낮췄다고 보며, 다른 연구는 빈번한 구조조정 대출의 결과를 '열악하다'고 본다. 경제학자들은 구조조정 아래에서 실질적 성장을 이룬 최빈개도국 사례를 거의 찾지 못하며, 대출 상당수는 상환되지 않았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영국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1980~90년대 위기에 빠진 개발도상국에 워싱턴 소재 IMF·세계은행·미국 재무부가 표준 개혁 패키지로 제시한 10개 경제정책 처방을 가리킨다. 이후 이 용어는 윌리엄슨의 본래 처방을 넘어 시장 근본주의·신자유주의 일반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고, 윌리엄슨 자신은 이 확대 해석에 반대했으며 '워싱턴'이라는 이름이 정책이 워싱턴에서 유래해 외부에서 강요된 것처럼 오해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일부 저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정책결정자들이 외부 강요가 아니라 자체 분석에 따라 개혁 패키지에 도달한 측면을 강조한다.
사례와 규정 문제
남한 1997년은 구조조정의 대표 사례로 다뤄진다. 미국과 IMF는 남한을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며 선진국에 가까워졌다고 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성공 여부를 의심하며 합의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었고 개혁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기초했다고 주장한다. IMF가 강대국의 권력·이해 배분에 좌우되어 공정·객관적 기준의 조치가 어렵고, 미국 금융패권과 투표권의 정치적 문제를 반영하기 때문에 피수혜국의 현실을 무시한 조건이 요구되며 시장 자유화·금융시장 개방을 과도하게 강조해 장기적으로 피수혜국에 나쁜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쟁 중 사회주의 국가가 브레턴우즈 기구의 구조조정 템플릿을 수용한 사례도 있다. 모잠비크에서는 전쟁으로 1981~86년 생산이 급감했고, 1985년 소련권의 충분한 원조를 얻지 못해 세계은행·IMF에 가입했으며 서방 공여국들이 IMF 프로그램을 계속 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집권 세력인 FRELIMO는 1986년 세계은행·IMF와 첫 구조조정 패키지(SAP)를 협상했고, 첫 구조조정 조치인 경제재건계획(PRE, Programa de Reabilitação Económica)은 1987년 1월 모잠비크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PRE는 경상지출 억제, 환율의 대폭 조정, 조세개혁과 가격개혁으로 인센티브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조정은 1990년부터 사회 부문을 포함해 경제·사회재건계획(ESRP/PRES)이 되었다. 모잠비크의 PRE는 생산자 가격 개혁, 보조금 철폐, 내·외부 무역 자유화, 심각한 평가절하를 수반하는 새 외환제도, 국영 서비스 '비용 분담', 민영화를 포함했고, 이후 구조조정은 주요 산업 민영화, 정부지출 축소, 규제완화, 무역자유화를 요구했다. 1980~90년대 1400건 이상의 공기업 민영화가 이루어져 당시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민영화 프로그램이었다. PRE는 명백히 사회주의 계획에서 시장으로의 이행을 표시하는 전환점이었고, 1989년 FRELIMO는 당 규약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용히 삭제했다. 그러나 부의 분배는 개선되지 않아 성장이 낙수효과를 내지 못했고 최빈층은 더 가난해졌으며 공교육·보건이 긴축의 타격을 받았다. 한편 모잠비크 조정의 개시 시점과 명칭을 두고 출처 간 기술이 갈린다. 세계은행 계통은 PRE를 1987년, ESRP를 1990년으로 잡고, 다른 세계은행 문서는 경제회복계획(ERP)을 1986년 시작으로, 아프리카개발은행은 ESRP를 1991년으로 서술한다. 조건부 대출이 누구의 진단을 강제하는가라는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시기 규정의 충돌은 확정하지 않고 병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