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전쟁지도회의
Supreme Council for the Direction of the War
최고전쟁지도회의는 일본 제국이 1944년 8월 전쟁 수행과 정부·군부 간 조정을 위해 설치한 최고 정책 협의체였다. 수상과 외상, 육군상과 해군상, 육군·해군 참모총장으로 구성된 ‘6인 회의’로서 1945년 항복 결정의 중심이 되었지만, 포츠담 선언 수락을 모색한 각료들과 전쟁 지속을 주장한 육군 지도자들의 대립으로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상세
일본어 명칭은 최고전쟁지도회의(最高戦争指導会議, 사이코 센소 시도 가이기)다. 도조 히데키 내각 뒤 고이소 구니아키 내각 아래에서 설치되었으며, 기존 연락회의를 대신해 전쟁의 기본 방침과 정부·군부의 협의를 다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군사작전의 지휘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피하는 관행 때문에 실제 통합 지휘권은 제한적이었고, 결정도 법적으로 강제되는 형식은 아니었다.
1945년 8월 회의에는 수상 스즈키 간타로, 외상 도고 시게노리, 육군상 아나미 고레치카, 해군상 요나이 미쓰마사, 육군 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 해군 참모총장 도요다 소에무가 참여했다. 요나이와 도고를 포함한 각료들은 천황제의 존속 조건을 확인하며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려 했고, 아나미·우메즈 등 육군 지도자들은 본토 결전을 통한 항전을 주장했다. 소련의 대일 참전과 원자폭탄 투하 뒤에도 의견이 갈려, 천황의 개입이 있은 뒤에야 항복 방침이 정리되었다.
회의는 1945년 8월 22일 해산되었다. 이 기구는 일본의 전시 의사결정이 민간 내각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군부의 제도적 거부권과 천황의 최종 개입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설립 시기, ‘Big Six’ 구성, 1945년 항복 논의에서의 역할과 내부 분열을 뒷받침함)
- 위키백과 (러시아어) (일본어 명칭, 1944년 창설, 구성과 1945년 8월 해산을 뒷받침함)
- history.navy.mil (1945년 8월 6일 구성원, 조기 협상파와 끝까지 싸우자는 강경파의 대립, 만장일치 관행을 뒷받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