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보프 명령 제171호
Tambov Order No. 171
1921년 6월 11일 탐보프 봉기를 진압하던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전권위원회가 낸 명령 「개별 비적과 그들을 숨겨 주는 가족에 대한 탄압 조치 개시에 관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는 주민의 즉결 총살, 무기를 숨긴 마을의 인질 총살, 봉기군을 숨긴 가족의 체포·추방과 재산 몰수, 그 집 연장자 일꾼의 재판 없는 총살을 규정했다. 위원장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옵세옌코와 사령관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서명했다.
상세
명령은 6월 1일부터 시작된 단호한 투쟁으로 「안토노프의 비적 떼」가 격파되었다고 밝히고, 「사회혁명당 비적의 뿌리를 완전히 뽑기 위해」 일곱 개 조항을 내렸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시민은 재판 없이 그 자리에서 총살하고, 무기를 숨긴 마을에는 인질을 잡는다는 판결을 내려 무기를 내놓지 않으면 인질을 총살하며, 숨긴 무기가 나오면 그 집의 가장 연장자인 일꾼을 재판 없이 총살하도록 했다. 비적이 숨어든 집의 가족은 체포해 주 밖으로 추방하고 재산을 몰수하며 연장자 일꾼을 총살하고, 비적의 가족이나 재산을 숨긴 가족도 비적으로 다루도록 했다. 달아난 비적 가족의 재산은 소비에트 권력에 충실한 농민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집은 불태우거나 허물게 했으며, 마지막 조항은 명령을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집행하라고 했다. 안토노프-옵세옌코와 투하쳅스키, 주 집행위원회 의장 라브로프, 서기 바실리예프가 서명했고, 명령은 마을 집회에서 낭독되었다.
이튿날인 6월 12일 투하쳅스키는 참모장 니콜라이 카쿠린과 함께 숲에 숨은 봉기군에게 독가스를 쓰라는 명령 제0116호에 서명했다. 6월 23일 전권위원회 명령 제116호는 봉기 성향이 강한 향을 포위하고 유력 주민 60~100명을 인질로 잡은 뒤 향 집회에서 명령 제130호와 제171호를 읽고, 두 시간 안에 비적과 무기를 내놓지 않으면 주민 앞에서 인질을 총살하는 「청소」 방식을 권장했다. 6월 27일 오시놉카 마을에서는 인질 약 40명 가운데 21명이, 7월 3~4일 보고슬롭카에서는 36명이 총살되었고, 위협이 통하지 않은 65~70호의 제2카레옙카 마을은 주민을 내쫓고 불태웠다. 수용소에는 어린이도 많이 갇혀, 7월 수용소를 비운 뒤에도 1~10세 어린이 인질이 450명 넘게 남았고, 7월 20일에는 어린이와 임신부,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인질로 잡지 말라는 지시가 따로 내려졌다. 러시아어 출처는 인질 제도가 봉기군을 더욱 격분시켜 그들도 붉은 군대 병사와 공산당원, 소비에트 직원과 그 가족을 인질로 잡아 총살했다고 쓰며, 역사가 율리야 칸토르는 탄압을 받은 탐보프 농민을 3만~5만 명으로 추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