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етят журавли · 1957

학이 날아간다

The Cranes Are Flying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만든 1957년 소련 영화. 전쟁에 약혼자를 보내고 사촌에게 겁탈당해 그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로, 대조국전쟁을 전선의 영웅담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비극으로 다루었다. 195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유일한 소련 영화이자, 해빙기 소련 영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41년 6월 22일 새벽, 모스크바. 베로니카와 보리스가 함께 걸으며 도시 위를 나는 학 떼를 올려다본다. 스파스카야 탑 시계가 새벽 4시를 치고 둘은 몰래 집으로 들어간다. 몇 시간 뒤 전쟁이 터진다. 보리스는 면제받을 수 있는데도 자원입대한다. 그는 베로니카의 생일 선물로 황금 호두를 담은 다람쥐 인형에 쪽지를 끼워 할머니에게 맡기는데, 베로니카는 집합소까지 달려가지만 끝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공습으로 베로니카의 부모가 죽고 집이 무너진다. 그는 보리스의 집으로 옮겨 가 함께 살고, 군 면제를 받은 피아니스트 사촌 마르크가 끈질기게 구애한다. 다음 공습 때 거부당한 마르크가 베로니카를 겁탈한다. 그 뒤 그는 베로니카와 결혼하는데, 가족은 그가 보리스를 배신했다고 경멸한다. 전선에서 보리스는 베로니카를 조롱한 동료와 싸우고 위험한 정찰로 보내져, 그 동료를 구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의 눈앞에 치르지 못한 결혼식이 돈다.

가족은 시베리아로 피란하고, 베로니카는 보리스의 아버지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한다. 애인의 변심을 전해 들은 환자에게 표도르는 그런 여자를 잊으라고 호통치고, 베로니카는 자기 이야기로 듣는다.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려던 순간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보고 구해 낸다. 아이의 이름은 보리스다. 그는 아이를 키운다. 마르크는 다람쥐 인형을 정부에게 선물하고, 잔치에서 그 안의 쪽지가 드러나자 베로니카가 달려가 낚아챈다. 표도르는 마르크가 뇌물로 면제를 받았음을 알고 내쫓는다.

종전. 베로니카는 꽃다발을 안고 기차역으로 달려가 돌아오는 병사들 사이에서 보리스를 찾는다. 전우 스테판이 사진을 건네자 그제야 그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울며 군중을 헤치던 그는 승리의 기쁨과 잃은 이의 슬픔을 말하는 스테판의 연설을 듣다가, 꽃을 낯선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모스크바 하늘로 다시 학들이 날아간다.

왜 그때 이런 영화가 가능했나?

원작은 빅토르 로조프의 희곡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때까지 소련 영화에서 전쟁은 곧 전선의 삶이었다. 이 영화는 뒤이은 《병사의 발라드》(1959), 《이반의 어린 시절》(1962)과 함께 소련 전쟁 영화의 장르를 바꿨다. 전쟁을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로 그렸기 때문이다. 여주인공도 새로웠다. 영웅의 약혼녀가 겁탈당해 그 가해자와 결혼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연구자 조지핀 울은 베로니카가 스탈린 이후 영화에서 더 복잡한 여주인공의 길을 열었다고 평한다. 베로니카를 타티야나 사모일로바가, 보리스를 알렉세이 바탈로프가 연기했다.

동독의 팬들이 사모일로바에게 보낸 시계에는 “마침내 소련 영화에서 가면이 아닌 얼굴을 본다”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그의 순수함을 브리지트 바르도와 대비했다. 클로드 를루슈는 러시아에서 나온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무엇이 그토록 달리 보였나?

촬영기사 세르게이 우루솁스키의 카메라다. 그는 움직이며 찍기와 18밀리 초광각 렌즈로 화면 전체를 짰고, 보리스가 죽는 장면을 위해 원형 레일을 처음 고안해 만들었다. 칸은 그에게 기술 부문 최고상을 따로 주었다. 음악은 모이세이 바인베르크가 맡았다.

소련은 이 승리를 어떻게 받았나?

소련 안에서 2830만 명이 보았고, 프랑스에서 540만 명 이상이 보았다. 그런데 1958년 칸 수상 소식을 전한 《이즈베스티야》의 단신은 제목도 사진도 없고 감독과 각본가의 이름조차 없었다. 칸의 프랑스어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황새가 지나갈 때”(Quand passent les cigognes)라고 했다. “학”(grue)이 속어로 매춘부를, “날다”(voler)가 훔치다를 뜻해 “매춘부들이 훔친다”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칼라토조프는 트빌리시(당시 티플리스)의 그루지야 집안 출신이다. 《스바네티의 소금》(1930)으로 주목받았으나, 다음 영화 《장화 속의 못》(1931)은 “정치적으로 해롭다”며 금지되었다. 그 뒤 영웅 비행사 영화들로 자리를 잡고, 1943~1945년에는 미국 주재 영화위원회 대표를, 1945~1948년에는 극영화 제작 총국장을 지냈다. 《학이 날아간다》로 세계에 알려졌고, 우루솁스키와 《부치지 못한 편지》(1959), 《나는 쿠바다》(1964)를 이어 갔으나 당시에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73년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