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5개년 계획 (1938–1941)
Third Five-Year Plan (1938–1941)
1939년 3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18차 대회에서 승인된 소련의 세 번째 국가경제발전계획이다. 계획 기간은 1938–1942년이었으나 1941년 6월 독일의 침공으로 중단되었으며, 실행 기간 내내 국방비 비중이 1938년 18.7%에서 1940년 32.6%로 급증하는 등 전시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다. 중공업과 군수산업에 자원이 집중되었고, 우랄·볼가·시베리아에 후방 공장들이 건설되어 이후 대조국전쟁에서 소련의 군수 잠재력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상세
배경과 승인
제3차 5개년 계획은 1939년 3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18차 대회에서 승인되었으며, 공식 계획 기간은 1938–1942년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미 전운이 짙어지고 있었고, 1938년 뮌헨 협정 이후 소련 지도부는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목표와 슬로건
계획은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고 추월하라'는 슬로건 아래 수립되었다. 공업 생산을 약 2배로 늘리고, 연료·국방 제품을 중심으로 대규모 국가 비축과 동원 예비를 확보하며, 농업 생산을 1.5배 증대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이전 계획들과 달리 양적 지표보다 품질 향상에 중점을 두어, 합금강·비철금속·정밀 기계의 생산 확대와 화학 공업 발전, 종합적 기계화 도입이 강조되었다.
국방 중심으로의 전환
그러나 계획은 실행과 동시에 전쟁 준비에 잠식되었다. 1939년 항공산업·무장·탄약·조선 인민위원부가 신설되었고, 국방비는 1938년 예산의 18.7%에서 1940년 32.6%, 1941년에는 43.4%까지 치솟았다. 1938–1939년에만 군수산업 생산이 46.5% 증가했다. 1939년 9월 '보편적 병역 의무에 관한 법률'이 채택되었고, 1941년 1월까지 소련군 병력은 420만 명에 달했다.
공업의 동부 이전
계획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우랄, 볼가, 시베리아 지역에 방위 산업의 후방 공장(백업 플랜트)을 건설한 것이었다. 이 조치는 1941년 독일 침공 직후 서부 지역 공장들의 기계 설비를 동쪽으로 대피시킬 수 있게 함으로써 소련의 군수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단
1938–1940년 전체 공업 생산은 약 34% 증가하여 계획 목표에 근접했으나, 많은 부문에서 목표치는 달성되지 못했다. 계획은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공식 폐기되었고, 이후 고스플란은 전시 동원 계획으로 전환했다.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fense spending trajectory 18.7% → 32.6% → 43.4%, plan period 1938–1942, quality focus on alloyed steels and precision equipment, 34% output growth, new military commissariats 1939, backup plants in Volga/Urals/Siberia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third plan ran 3½ years to June 1941, resources shifted to armaments and military factories east of Urals, originally intended to focus on consumer goods
- globalsecurity.org GlobalSecurity.org: approved March 1939 at 18th Party Congress, slogan 'catch up and overtake', goals to double industry and raise agriculture 1.5×, absorbed Baltic states/eastern Poland/Bessarabia, abandoned after 1941 inva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