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 조약
Treaty of Kars
1921년 10월 13일 카르스에서 터키 대국민의회 정부와 소비에트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가 러시아 SFSR의 참여 아래 맺은 국경 조약. 1921년 3월 모스크바 조약을 재확인해 카르스·아르다한을 터키에, 바투미를 소비에트 그루지야에 두고 나히체반을 아제르바이잔 보호 아래 자치 지역으로 정했다.
상세
터키 쪽에서는 카즘 카라베키르가, 소비에트 러시아 쪽에서는 대사 야코프 가네츠키가 서명했고, 아르메니아의 아스카나즈 므라뱐, 아제르바이잔의 베흐부드 샤흐타흐틴스키, 그루지야의 샬바 엘리아바도 서명자였다. 옛 바투미주는 나뉘어 남쪽 아르트빈 일대가 터키로, 바투미 항을 포함한 북쪽이 아자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소비에트 그루지야에 남았다. 조약은 무슬림 주민이 많은 이 지역의 자치와 바투미 항을 통한 터키 물자의 무관세 통과를 보장했다.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국경은 아후랸강(아르파차이강)과 아라스강으로 정해져, 터키는 카르스·아르다한·올투와 아니 유적, 아라라트산을 포함한 수르말루와 쿨프 소금광산을 얻었다. 볼셰비키는 아니와 쿨프를 남기려 했지만 터키는 거절했고, 대신 터키군은 알렉산드로폴을 포함한 오늘날 시라크주 서부에서 물러났다. 제5조는 나히체반을 아제르바이잔 보호 아래 자치 지역으로 정했고, 1924년 나히체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뒤인 1945년 6월 7일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터키 대사에게 카르스·아르다한·아르트빈을 소련에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니키타 흐루쇼프에 따르면 라브렌티 베리야가 이오시프 스탈린을 부추긴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이 요구에 반대했고, 소련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영토 요구를 철회하고 1991년 해체 때까지 조약을 지켰다. 소련 해체 뒤 러시아·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은 조약을 받아들였고, 아르메니아는 2006년 조약을 아르메니아 SSR의 법적 승계국으로서 인정하면서도 터키가 봉쇄로 교통 자유를 정한 제17조를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은 1921년의 자캅카스 공화국들이 모스크바의 통제 아래 있었다며 조약을 국제법 위반으로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