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자마
Ujamaa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1967년 아루샤 선언을 통해 제시한 탄자니아의 아프리카 사회주의 발전 모델. 스와힐리어로 '가족애(familyhood)'를 뜻하며, 전통적 공동체의 상호부조와 공유 정신을 현대 국가 규모의 사회주의와 접목하고자 했다. 농촌의 집단화(우자마 마을), 은행·주요 산업의 국유화, 자조(self-reliance)를 통한 대외의존 탈피를 핵심으로 삼았으나, 강제적 마을화와 농업 생산성 저하로 경제적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상세
우자마는 1967년 2월 5일 탄자니아의 집권당 TANU(탄자니아 아프리카 민족연맹)가 채택한 아루샤 선언(Arusha Declaration)을 통해 국가 발전 이데올로기로 공식화되었다. 니에레레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명제 대신, 전통 아프리카 사회가 본래 '사회주의적'이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에 따르면 식민주의 이전 아프리카의 확대가족 체계에는 착취도, 계급도, 빈부격차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과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로 훼손된 전통을 '회복'하고 현대화하는 것이었다.
정책의 중심은 농촌 재편이었다. 1967년부터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우자마 마을(Ujamaa vijiji) 건설은 1973년 '비지지 작전(Operation Vijiji)'을 통해 강제화되었고, 1973~1976년 사이 약 1,100만 명이 집단 마을로 이주당했다. 각 마을은 공동 경작지, 중앙 학교·회관, 개인 자급용 텃밭으로 구성되었으며, 10세대 단위의 '셀(cell)'로 조직되었다. 동시에 은행, 보험, 곡물 제분, 대규모 제조업이 국유화되었고, 수입 대체 산업화가 추진되었다.
사회 지표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성인 문해율은 1960년 17%에서 1975년 63%로, 초등학교 취학률은 같은 기간 25%에서 72%로 상승했으며, 영아 사망률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농업 생산성 하락, 만성적 재정 적자, 관료의 비효율, 강제 이주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누적되면서 1980년대 초반 경제 위기를 맞았다. 니에레레는 1985년 자발적 퇴진으로 우자마 실험의 정치적 막을 내렸고, 후임 정부는 IMF 구조조정을 수용하며 집단화 정책을 폐기했다. 우자마는 경제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의 국가 정체성과 정치적 안정을 형성한 아프리카 탈식민 사회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실험이었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article on Ujamaa ideology, Arusha Declaration, villagization, Operation Vijiji, social indicators, and decline
- britannica.com Britannica summary: cooperative agriculture, self-reliance, villagization, and economic outcomes
- newworldjournal.org Ahmed Mohiddin, New World Journal: Ujamaa as eclectic philosophy blending African traditions with socialist technique, 'attitude of mind' thesis, incentive probl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