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명당 최대주의자 연합
Union of Socialists-Revolutionaries-Maximalists
1906년 사회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온 러시아 제국의 급진 인민주의 정당. 토지와 공장을 비롯한 모든 생산수단의 즉각적인 사회화, 곧 「최대 강령」의 전면 실행과 「노동자 공화국」 수립을 요구했고, 정치 테러뿐 아니라 공장주·지주를 겨냥한 「경제 테러」와 수탈을 옹호했다.
상세
최대주의자들은 농촌의 테러리스트, 「모스크바 반대파」 등 사회혁명당 안의 급진 반대파였고, 1906년 이마트라에서 열린 사회혁명당 제2차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갈라졌다. 첫 창립 협의회는 1906년 10월 핀란드의 아보(투르쿠)에서 열렸다. 이들은 체르노프와 결부된 사회혁명당의 「2단계 혁명」론을 거부하고, 해방된 근로 대중이 부르주아 공화국과 점진적 개혁에 머물리라는 생각이야말로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다. 국가 자체에 반대하지 않고 혁명적 인민 독재를 구상해 무정부주의자와의 비교를 거부했으며,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국가두마 선거를 보이콧했다.
당의 실제 활동은 대부분 범죄적 방법의 자금 조달과 관리·자본가·지주에 대한 폭력이었다. 1906년 3월 모스크바 상호신용조합에서 87만 5천 루블을 빼앗았고, 8월에는 스톨리핀 암살을 시도해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10월에는 페테르부르크 포나르니 골목에서 세관 현금 수송 마차를 습격해 40만 루블을 탈취했다. 1906~1907년 이들이 일으킨 테러는 50건쯤이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타고난 독재자」로 불린 지도자 소콜로프와 이론가 로진스키(우스티노프), 블라디미르 마주린 등이 있었다.
1905~1907년 혁명이 실패한 뒤 체포로 큰 타격을 입어 1911년 무렵 활동을 멈추었으나, 1917년 2월 혁명 뒤 되살아나 10월 무장봉기와 소비에트 대회,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여했다. 1918년 4월 제3차 전러시아 협의회는 「노동자 공화국 헌법 기초안」을 승인했다. 연합은 1919년 분열했고, 1920년 일부는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에 들어가고 다른 일부는 옛 좌파 사회혁명당원들과 합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