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돔 원주
Vendôme Column
파리 방돔 광장 한가운데에 선 높이 44m의 기념 원주. 나폴레옹 1세가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기려 1806~1810년 적에게서 노획한 대포의 청동으로 겉을 씌워 세웠고 꼭대기에 자신의 조각상을 올렸다. 파리 코뮌은 1871년 4월 12일 이를 군국주의와 민족 간 증오의 상징으로 규정해 철거를 결의하고 5월 16일 쓰러뜨렸다. 1873~1875년 다시 세워졌다.
상세
원주는 로마 트라야누스 원주를 본떴다. 돌로 쌓은 기둥에 아우스터리츠 전투 등에서 빼앗은 러시아·오스트리아 대포의 청동을 녹여 만든 부조판 425장을 나선으로 감았고, 1810년 8월 15일 「대육군의 원주」로 봉헌되었다. 꼭대기 조각상은 체제와 함께 바뀌었다. 1814년 복고 왕정은 나폴레옹 상을 내리고 백기를 걸었고, 7월 왕정은 1833년 루이필리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꼬마 하사」 차림의 나폴레옹 상을 올렸으며, 나폴레옹 3세는 1863년 로마 황제 차림의 상으로 바꾸었다.
마르크스는 1852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끝에서 황제의 망토가 마침내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에 떨어지면 나폴레옹의 청동상은 방돔 원주 꼭대기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썼다. 1870년 9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국방정부에 원주를 해체하자고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71년 4월 12일 코뮌은 「제국의 원주는 야만의 기념물이요, 폭력과 거짓 영광의 상징이며, 군국주의의 확인이요, 국제법의 부정이며, 패자에 대한 승자의 영원한 모욕」이라는 포고로 철거를 결의했다. 엥겔스는 1891년 서문에서 코뮌이 이 원주를 국수주의와 민족 간 증오 선동의 상징으로 보았다고 적었다. 나폴레옹 기일인 5월 5일로 잡혔던 철거는 전황 때문에 미뤄져 5월 16일 오후 5시 30분 파리 시민의 환호 속에 이루어졌다.
코뮌이 진압된 뒤 1873년 5월 마크마옹 대통령의 정부는 쿠르베에게 재건 비용 32만 3,091프랑 68상팀을 물리기로 했다. 쿠르베는 33년 동안 해마다 1만 프랑씩 갚기로 했지만 첫 납부일 전날인 1877년 12월 31일 망명지에서 죽었다. 원주는 1873~1875년 다시 세워졌고 지금은 역사 기념물이다. 『프랑스 내전』 본문이 말하는 「방돔 광장 사건」은 이 원주가 아니라, 1871년 3월 22일 광장의 국민방위군 본부로 몰려간 「질서의 벗」 시위대와 국민방위군 사이의 충돌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