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그당 (영국)
Whigs (British political party)
168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토리와 권력을 다툰 잉글랜드·영국 의회의 정당. 절대왕정에 반대하고 입헌군주제와 의회 정치를 지지했다. 1830년 의회 개혁을 내걸고 집권해 1832년 개혁법을 통과시켰고, 1850년대 필파·급진파와 합쳐 자유당이 되었다.
상세
휘그라는 말은 스코틀랜드 장로파, 특히 서약파를 부르던 별명 「휘거모어」를 줄인 것이다. 1679~1681년 가톨릭인 요크 공작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배척 위기 때 계승에 반대한 쪽이 휘그, 지지한 쪽이 토리라는 멸칭을 얻었고, 두 말은 뒤에 영국 정치의 두 정파를 가리키는 중립적인 이름이 되었다. 휘그는 1688년 명예혁명에서 중심 구실을 했다.
1714년 하노버 왕조가 왕위를 이은 뒤 휘그는 1715년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토리를 정부, 군대, 국교회, 법조계의 요직에서 몰아냈다. 첫 대지도자 로버트 월폴이 1721~1742년 정부를 이끌었고, 1760년 조지 3세 즉위 전까지 영국은 휘그 일당 국가에 가까웠다. 1784년 무렵 찰스 제임스 폭스가 재편한 휘그당이 소피트의 새 토리에 맞서며 두 당은 정식 정당이 되었다. 휘그는 처음에 귀족 가문의 이익을 대변했으나 뒤에는 떠오르는 산업 개혁가와 상인 계층의 지지를 얻었다.
1807년 「모든 인재 내각」이 무너진 뒤 폭스파 휘그는 25년 가까이 권력에서 밀려나 있었다. 노예제 폐지 같은 도덕 개혁으로 다시 뭉친 휘그는 1830년 의회 개혁을 내걸고 승리해 그레이 백작을 총리로 세웠고, 부패 선거구를 없애고 선거권을 넓힌 1832년 개혁법, 1833년 노예제 폐지법, 1834년 구빈법 개정법을 통과시켰다. 그래도 투표권은 상층·중간계급에 머물렀다. 토리였던 파머스턴은 1830년 11월 그레이 내각의 외무장관을 맡으며 휘그로 옮겼다.
자유당이라는 이름은 1868년에야 공식적으로 쓰였지만, 휘그와 필의 자유무역파 토리, 급진파의 연합은 1852년 애버딘 백작 아래에서 처음 이루어졌고 1859년 파머스턴 아래에서 굳어졌다. 1859년 6월 6일 윌리스 룸스 회합에서 자유당이 결성되었다. 휘그 세력은 글래드스턴의 오랜 지도 아래 영향력을 잃었고, 옛 휘그 귀족 다수는 1886년 아일랜드 자치 문제로 자유당을 떠나 자유통일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