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체코당
Young Czech Party
1874년 체코 국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코 지방의 자유주의·민족주의 정당. 정식 이름은 「국민자유당」이며 당원들은 「청년체코파」로 불렸다. 보편 남성 선거권과 반교권주의를 내세워 1891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구체코당의 우위를 끝냈고, 1918년 다른 정당들과 합쳐 체코 국가권민주당이 되었다.
상세
체코어 출처에 따르면 1863년 무렵부터 체코 국민당 안에 「구체코파」와 「청년체코파」라는 두 흐름이 생겼고, 1870년대 초 구체코파의 수동적 저항(의회 불참) 노선을 두고 대립했다. 1874년 국민당 의원 7명이 이 노선을 깨고 의회에 등원했고, 같은 해 12월 27일 국민자유당이 정식으로 창당해 카렐 슬라트코프스키가 초대 당수가 되었다.
당은 카렐 하블리체크 보로프스키의 유산을 잇는다고 내세웠고, 모든 남성의 보통선거권과 개인의 자유를 요구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고, 정치적으로 대표되던 보헤미아 보수 귀족층에 맞섰다. 영어 출처는 당이 전문직·소시민·농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고 적는다. 1879년 구체코파·보수 귀족과 함께 제국의회에 들어가 타페 정부를 지지하는 체코 클럽을 이루었다.
1889년 보헤미아 지방의회 선거에서 37석을 얻었고, 1891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체코인 선거구를 휩쓸어 구체코당의 우위를 끝냈다. 토마시 가리그 마사리크는 1890년 입당해 1891~1893년 이 당 소속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1897년 당내 위기로 급진 좌파가 급진진보당으로, 바츨라프 클로파치 등이 체코 국민사회당으로 떨어져 나갔고, 카렐 크라마르시가 새 당수가 되었다.
1907년 남성 보통선거로 치른 첫 제국의회 선거에서 당은 농업당에 뒤진 2위에 그쳤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크라마르시와 알로이스 라신 등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되었다. 1918년 2월 9일 당은 국가권진보당 및 진보당의 큰 부분과 합쳐 「체코 국가권민주당」이 되었고, 이 당은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뒤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민주당」으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