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르스크 실험
Zagorsk experiment
소련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메시체랴코프가 1963년 모스크바 근교 자고르스크(현 세르기예프포사트)에 세운 시청각장애 아동 기숙학교의 교육과, 그 졸업생 네 명이 모스크바 대학 심리학부에서 공부한 1970년대의 실험을 함께 이르는 말. 이반 소콜랸스키의 교육법을 이은 이 실험은 사람의 정신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공동 활동 속에서 형성된다는 마르크스주의 테제를 입증하려 했고, 철학자 에발트 일리옌코프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네 사람은 1977년 대학 과정을 마쳤지만,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참가자들이 선천성 시청각장애가 아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실험의 과학적 결론을 둘러싼 비판이 나왔다.
상세
왜 이 실험이 철학의 문제였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는 어떻게 사람의 말과 생각을 배울 수 있을까? 미국의 헬렌 켈러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 물음은 교육의 문제이면서 철학의 문제였다. 사람의 정신, 곧 생각하고 말하고 스스로를 의식하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신이 불어넣은 영혼이 ‘말씀’에 의해 깨어나는가, 유전자에 미리 적혀 있다가 펼쳐지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 처음부터 만들어지는가?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아이는 이 물음을 거의 실험실처럼 보여 준다. 보통 아이는 주변 세계에서 끝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신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단계별로 가려 보기 어렵다. 시청각장애 아동은 교육자가 손을 통해 직접 이끌어 주지 않으면 세계와의 연결이 거의 끊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가르칠 때 정신이 자라나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소련 마르크스주의 심리학과 철학은 이 교육을 자기 이론, 곧 사람은 노동과 사물을 다루는 활동을 통해 사람이 된다는 테제의 결정적 증거로 보았다. 러시아어로 이 아이들은 ‘слепоглухонемые’(눈멀고 귀먹고 말 못하는 이)라 불렸고, 한국어 옛 문헌에서는 ‘농맹아’라고도 옮겼다. 이 항목은 오늘의 한국어 표현인 ‘시청각장애’를 쓴다.
누가 어떻게 가르쳤나?
출발점은 이반 소콜랸스키(1889~1960)다. 그는 1920년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 시청각장애 아동 교육 기관을 이끌었고, 그의 제자 올가 스코로호도바는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과학 연구원이 되었다. 소콜랸스키는 1950년 5월 모스크바의 결함학 연구소에서 시청각장애 아동 연구·교육 실험실을 조직했다. 레프 비고츠키도 그의 교육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소콜랸스키의 일을 이은 사람이 알렉산드르 메시체랴코프(1923~1974)다.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그는 모스크바 대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1950년 알렉산드르 루리야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1960년 소련 교육과학아카데미 결함학 연구소에 시청각장애 아동 연구·교육 실험실을 만들었고, 1963년 자고르스크에 시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 교육 기관을 세웠다.
교육은 말이 아니라 일상의 동작에서 시작했다. 먼저 스스로 먹고 입고 씻는 자기 돌봄 기술을 익혔다. 처음에는 어른이 아이의 손을 잡고 동작을 함께 하고, 점점 아이 스스로 하는 부분을 늘려 갔다. 이것을 ‘공동-분리 활동’이라고 불렀다. 숟가락, 그릇, 계단, 옷 같은 사물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동안, 각 동작 앞에는 그 사물을 가리키는 손짓 낱말을 보여 주었다. 아이가 손짓 낱말 수십 개를 쓰게 되면 손가락 글자, 곧 지문자를 가르쳤고, 그다음 점자를 가르쳤다. 말하기도 교사의 근육 위치와 목의 떨림을 손으로 느끼며 따라 하는 방식으로 연습했다. 공간을 익히기 쉽도록 물건은 늘 같은 자리에 두었다.
Обучение детей методом совместно-раздельн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должно было подтвердить тезис марксистской философии о возникновении человека благодаря общественному труду и о том, что человеческая психика возникает в результате предметно-практическ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일리옌코프는 1970년 대중 과학지 《자연》에 쓴 글 「‘시간의 돋보기’ 아래 놓인 인간 정신」에서 자고르스크 학교 상급생들이 “눈과 귀가 성한 또래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중등학교 과정을 익힌다”고 썼다. 그는 자고르스크에서 지성 교육이 언어 교육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활동, 처음에는 일상생활, 다음에는 노동과 도덕의 규범 속으로 아이를 끌어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Ученики старших классов школы-интерната для слепоглухонемых в Загорске усваивают программу средней школы примерно теми же темпами, что и их зрячеслышащие сверстники
‘자고르스크 4인’은 누구였나?
1971년 2월 메시체랴코프는 자고르스크 출신 시청각장애 청년 네 명으로 실험 집단을 꾸렸다.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유리 레르네르, 세르게이 시로트킨, 나탈리야 코르네예바다. 이들은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교육받았고, 메시체랴코프와 사이가 좋았으며,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만큼 말을 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경쟁 없이 정원을 주되 입학시험은 치르게 했다. 수보로프는 1971년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에서 연수생으로 공부한 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심리학부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는 특별한 조건이 마련되었다. 학생마다 개인 통역사가 붙어 강의 내용을 손가락 글자로 손바닥에 옮겨 주었고, 교재를 점자로 옮겨 주었다. 세미나에서는 ‘텔레탁토르’라는 장치를 써서 일반 글자와 점자를 서로 바꿔 대화했다. 네 사람은 보통 학생보다 한 해 긴 6년 만에 과정을 마쳤다. 1975년에는 이들이 심리학부 학술위원회에서 한 발표가 《철학의 문제들》 제6호에 실렸다.
메시체랴코프가 1974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일리옌코프가 비공식적으로 네 사람의 공부를 이끌었다. 레온티예프 학부장도 이 실험을 지지했다. 1977년 일리옌코프는 당 이론지 《코무니스트》에 「인격의 형성: 한 과학 실험의 결과에 대하여」를 실어 이렇게 썼다. “나는 이 거의 믿기 어려운 신비, 곧 영혼이 태어나고 재능이 형성되는 기적이 한 걸음 한 걸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메시체랴코프와 소콜랸스키는 1981년 시청각장애 아동 교육의 과학적 체계를 만든 공로로 사후에 소련 국가상을 받았다.
Я видел, как шаг за шагом совершалось это почти неправдоподобное таинство — чудо рождения души и формирования таланта.
무엇을 증명하려 했고, 어떤 비판을 받았나?
실험에는 분명한 이념적 목표가 있었다. 사람의 정신과 인격은 날 때부터 있는 비물질적 영혼이 말씀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처음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일리옌코프는 이 실험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복음서의 명제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사물을 다루는 실천이 먼저이고 언어는 그 위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정상적인 아이는 재능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고, 재능의 차이는 유전이 아니라 사회적 교육 조건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그가 같은 시기 다비드 두브롭스키와 벌인 뇌와 의식 논쟁의 실천적 짝이었다.
비판은 실험이 진행되던 때부터 있었다. 두브롭스키(1968)와 생물학자 알렉산드르 말리놉스키(1970)는 인격 형성에서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념적 이유로 본격적인 비판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야 가능했고, 비판자 가운데에는 실험 참가자 세르게이 시로트킨도 있었다.
비판의 요점은 이렇다. 첫째, 네 사람 모두 선천성 시청각장애가 아니었다. 시력과 청력을 잃기 전에 이미 말을 할 수 있었고, 일부는 어른이 된 뒤에도 남은 시력이나 청력이 있었다. 둘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자고르스크에서 자라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정신이 학교 교육으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다. 셋째, 교사 외의 통제되지 않는 영향, 곧 아이들끼리의 교류를 배제할 수 없었다. 넷째, 자고르스크에는 네 사람 말고도 선천성 시청각장애 아동이 50명가량 있었는데, 그 누구도 높은 사회화에 이르지 못했고 언어도 익히지 못했다. 비판자들은 그래서 실험이 과학적으로 결론을 낼 수 없다고 보았다.
Более того, в Загорском интернате, кроме четырёх участников эксперимента, жили ещё около пятидесяти других детей, которые являлись слепоглухими именно с рождения
일리옌코프의 제자인 철학자 세르게이 마레예프는, 완전한 시력·청력 상실은 드물고 남은 감각은 늘 있으며, 말이 뜻을 갖는 것은 사물이 사람들의 공동 활동 속에서 뜻을 갖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비유로 말은 정신의 ‘돈’과 같아서, 사물의 가치를 대표하는 한에서만 값을 가진다. 이 논쟁은 오늘도 이어지며, 2010년대 러시아 철학계에서는 실험에 조작이 있었는가를 따지는 논문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그 뒤 어떻게 살았나?
네 사람의 삶은 실험의 성과를 증언한다. 수보로프(1953~2024)는 일리옌코프를 지도교수로 연구를 이어가 심리학 박사가 되고, 러시아 교육아카데미 대학 교수와 시청각장애인 가족 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시로트킨(1949~2021)은 철학 준박사가 되어 전러시아 시각장애인 협회의 시청각장애인 업무 위원회를 이끌었다. 레르네르(1946~2003)는 조각가가 되어 자고르스크 학교에서 일했고, 코르네예바(1949~)는 러시아 교육아카데미 심리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2015년 세르기예프포사트에는 자고르스크 실험 역사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오늘날 이 실험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자고르스크 실험은 소련 과학이 이데올로기 경쟁의 무대였음을 보여 준다. 사회주의 사회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선전 효과가 실험을 널리 알리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를 걷어 내더라도, 시청각장애 아동이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학문과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준 성과는 남는다. 또 이 실험이 던진 물음, 곧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사회적 활동의 산물이고 얼마나 생물학적 조건에 달려 있는가 하는 물음은 오늘의 발달심리학과 특수교육, 장애학에서도 여전히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