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발달영역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아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수준(현재 발달 수준)과 어른이나 더 유능한 친구와 함께할 때 해낼 수 있는 수준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는 소련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개념이다. 그는 1932~1934년 학교 교육과 정신 발달의 관계를 연구하며 이 개념을 내놓았고, 유작 『사고와 언어』(1934)에서 “발달을 앞질러 이끄는 교육만이 좋은 교육”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서구 교육학에서는 브루너 등이 이를 바탕으로 ‘비계 설정’(스캐폴딩) 개념을 만들었다.
상세
왜 아이의 ‘오늘’만 재서는 안 되나?
20세기 초 학교는 지능검사로 아이를 재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나이별 문제를 혼자 풀게 하고, 몇 살 수준의 문제까지 풀었는지로 ‘정신연령’을 매기는 방식이다. 소련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이 방법이 아이가 오늘 이미 갖춘 것, 곧 다 익은 기능만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비유했다. 정원 상태를 알고 싶은 정원사가 이미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만 센다면 틀린 것이고, 익어 가는 나무도 함께 보아야 한다. 심리학자도 다 익은 기능만이 아니라 익어 가는 기능, 곧 현재 수준만이 아니라 ‘근접발달영역’을 보아야 한다.
Как садовник, желающий определить состояние своего сада, будет не прав, если вздумает оценивать его только по созревшим и принесшим плоды яблоням, а должен учесть и созревающие деревья
비고츠키가 든 예는 간단하다. 정신연령이 똑같이 8세로 나온 두 아이가 있다. 그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더 높은 나이의 문제를 주면서 시범을 보이거나 실마리가 되는 질문을 던지거나 풀이의 첫머리를 보여 주면, 한 아이는 도움을 받아 12세 수준까지, 다른 아이는 9세 수준까지 푼다. 혼자 푸는 문제로 정해지는 현재 발달 수준과 협력 속에서 푸는 문제로 드러나는 수준 사이의 이 차이가 근접발달영역이다. 이 예에서 한 아이의 영역은 4년, 다른 아이는 1년이다. 비고츠키는 두 아이의 발달 상태가 같다고 볼 수 없으며, 학교에서 두 아이의 차이는 같은 현재 수준이 보여 주는 닮은 점보다 훨씬 크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Это расхождение между умственным возрастом, или уровнем актуального развития, который определяется с помощью самостоятельно решаемых задач, и уровнем, которого достигает ребенок при решении задач не самостоятельно, а в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и определяет зону ближайшего развития.
그의 다른 강연에서는 이 영역에 있는 기능을 “발달의 열매가 아니라 발달의 꽃봉오리, 발달의 꽃”이라고 불렀다. 아직 익지 않았지만 익어 가고 있어 내일이면 익을 기능이라는 뜻이다.
도움을 받아 푼 문제가 왜 발달의 증거인가?
옛 심리학과 상식은 남을 흉내 내서 푼 문제는 그 사람의 지능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여겼다. 무엇이든 흉내 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고츠키는 이 생각이 틀렸다고 보았다. 아이는 자기 지적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것만 모방할 수 있다. 그는 체스를 예로 들었다. 체스를 둘 줄 모르는 사람에게 최고의 기사가 이기는 법을 보여 주어도 그는 따라 하지 못한다. 산수를 아는 사람은 어려운 문제의 풀이를 보면 곧 스스로 풀 수 있지만, 고등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미분방정식 풀이를 보여 주어도 생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Можно считать установленным в современной психологии подражания, что подражать ребенок может только тому, что лежит в зоне его собственных интеллектуальных возможностей.
그러므로 협력하면 아이는 혼자일 때보다 언제나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끝없이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협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아이의 발달 상태가 정하는 일정한 거리 안에 있다. 이 거리가 바로 발달의 역동성을 보여 주는 가장 민감한 지표다. 비고츠키는 독일 게슈탈트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의 침팬지 실험도 끌어들였다. 침팬지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지적 행동만 의미 있게 모방하며, 훈련으로 더 복잡한 동작을 익혀도 그것은 이해 없는 습관에 머문다. 인간 아이는 다르다. 협력과 모방을 통해 아직 혼자 하지 못하는 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인간 발달의 특징이다.
교육과 발달은 어떤 관계인가?
비고츠키가 이 개념을 내놓은 것은 교육과 발달의 관계라는 오래된 논쟁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스위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발달과 교육을 분명히 구분하고, 발달은 아이 자신의 힘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자연발생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교육은 발달이 무르익기를 기다려 그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순서를 거꾸로 보았다. 연구가 보여 주는 바로는 한 연령기의 앞 단계에서 근접발달영역에 있던 것이 다음 단계에서 현재 발달 수준으로 옮겨 간다. “다시 말해, 아이가 오늘 협력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내일은 혼자서 할 수 있다.”
Иными словами, то, что ребенок умеет делать сегодня в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он сумеет сделать завтра самостоятельно.
여기서 그의 유명한 결론이 나온다. “어린 시절의 교육은 발달을 앞질러 가며 발달을 이끄는 교육만이 좋은 교육이다.” 물론 아이에게는 이미 배울 수 있는 것만 가르칠 수 있다. 교육은 지나온 발달 단계라는 아래 문턱을 딛고 서야 하지만, 다 익은 기능이 아니라 익어 가는 기능에 기대야 하며 언제나 아이에게 아직 익지 않은 것에서 시작한다. 이 논의는 『사고와 언어』의 제6장 「아동기 과학적 개념의 발달 연구」에 있다. 비고츠키와 제자 조제피나 시프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적 개념이 아이가 일상에서 스스로 얻는 생활 개념과 다른 길로 발달하며, 학교 교육이 아이의 생각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Только то обучение в детском возрасте хорошо, которое забегает вперед развития и ведет развитие за собой.
이 개념의 뿌리에는 비고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이 있다. 그는 기억, 주의, 개념적 사고 같은 고등정신기능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협력 속에서 나타나고, 그 뒤에 개인 안으로 옮겨 간다고 보았다(이 사전의 ‘문화역사이론’ 항목). 근접발달영역은 이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의 이행이 교실에서 벌어지는 자리다.
소련에서는 어떤 운명을 겪었나?
비고츠키는 1934년 6월 11일 37세에 결핵으로 죽었고, 『사고와 언어』는 그해 12월 1928~1934년 논문을 묶은 유작으로 나왔다. 근접발달영역은 그가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내놓았지만 끝까지 다듬지 못한 개념이다. 1936년 볼셰비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교육인민위원부 체계의 아동학적 왜곡에 관하여」라는 결정으로 아동의 발달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던 분야인 아동학(페돌로기야)을 사실상 없앴다. 비고츠키도 아동학의 주요 이론가였으므로 그의 연구는 그늘에 들어갔다. 영어권 문헌은 흔히 그의 저작이 1953년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 금지되었고 1956년에야 주요 선집이 나왔다고 쓴다.
1956년 이후 비고츠키의 유산은 그의 동료였던 알렉세이 레온티예프와 알렉산드르 루리야, 그리고 다닐 엘코닌과 바실리 다비도프 같은 다음 세대가 이어받았다. 엘코닌과 다비도프의 ‘발달 교육’ 실험은 근접발달영역의 생각을 학교 교육 과정 전체로 넓힌 시도였다. 1982년 소련에서 나온 비고츠키 『저작집』 제2권도 다비도프가 편집했다. 21세기 들어 러시아 학계 일부에서는 소련 시기 출판본이 근접발달영역을 비롯한 핵심 개념을 편집 과정에서 바꾸어 놓았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원 텍스트로 비고츠키를 다시 읽으려는 흐름이 ‘수정주의 혁명’이라고 불린다.
서구와 오늘의 교실에서는 어떻게 쓰이나?
서구에서 비고츠키가 널리 읽히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사고와 언어』의 영어 번역, 그리고 여러 글을 엮은 『사회 속의 정신』(1978)부터다. 1976년 미국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와 데이비드 우드, 게일 로스는 근접발달영역 개념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면서 ‘비계 설정’(scaffolding)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건물을 다 지으면 비계를 걷어 내듯, 교사가 처음에는 도움을 주고 학생이 혼자 할 수 있게 되면 도움을 줄여 간다는 뜻이다. 비고츠키 자신은 이 말을 쓰지 않았다. 이 해석에서 상보적 교수법, 역동적 평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고, 근접발달영역은 오늘날 교육심리학 교과서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
널리 쓰이면서 생긴 문제도 있다. 비계 설정은 근접발달영역을 과제마다 필요한 도움의 양 정도로 좁혀 이해하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비고츠키가 원래 말한 것은 한 연령기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달의 과정이었고, 그가 비판한 것은 아이를 혼자 시험해 서열을 매기는 교육이었다. 근접발달영역은 협력이 발달의 원천이라는 사회적 학습관의 요약이다. 그 점에서 이 개념은 인간의 정신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생각을 교실의 언어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