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조 —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생들의 결의 (1956)

PeopleImre Nagy, Mátyás Rákosi, Mihály Farkas TermsSixteen Points (1956), MEFESZ (Union of Hungarian University and Academy Students), Hungarian Working People's Party, Planned Economy EventsThe Hungarian Revolution

1956년 10월 22일

베껴서 헝가리 근로자들 사이에 퍼뜨려라!

MEFESZ 건설공업공과대학 학생총회 결의의 주요 정치·경제·이념 조항:

1. 우리는 강화조약[1]의 규정에 따라 모든 소련군이 헝가리에서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2. 우리는 헝가리 노동인민당 안에서 아래로부터 위로, 비밀투표로 기층·중간·중앙의 지도부를 새로 선출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되도록 빨리 당대회를 소집하고 새 중앙지도부를 선출하라.

3. 정부는 너지 임레 동지의 지도 아래 개편되어야 하며, 스탈린주의 라코시 시대의 죄 있는 지도자는 모두 즉시 해임하라.

4. 우리는 퍼르커시 미하이와 그 일당의 범죄 사건에 대한 공개 재판을 요구한다. 가까운 과거의 모든 범죄와 나라의 파탄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라코시 마차시를 귀국시켜 인민의 법정에 세우라.

5. 우리는 새 국민의회를 선출하기 위해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보통·평등·비밀 선거를 전국에서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파업권 보장을 요구한다.

6. 우리는 헝가리·소련 관계와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관계를 정치·경제·정신의 모든 면에서 재검토하고, 정치적·경제적으로 완전히 대등하며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위에서 새로 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7. 우리는 우리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헝가리 경제생활 전체를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국내 여건과 우리 헝가리 인민의 생존 이익을 염두에 두고, 계획경제에 기초한 우리 경제 체제 전체를 재검토하라.

8. 우리의 대외무역 협정과,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의 실제 수치를 공개하자[2]. 우리는 나라의 우라늄 광석 매장량과 그 채굴, 러시아의 이권에 관해 숨김없고 정직한 정보를 요구한다. 우리는 헝가리가 우라늄 광석을 세계시장 가격으로, 경화를 받고 자유롭게 팔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한다.

9. 우리는 공업에 적용되는 노르마[3]의 전면 개정과, 노동자와 지식인의 임금 요구를 시급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의 최저생계비를 정할 것을 요청한다.

10. 우리는 의무 공출[4] 제도를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고 농산물을 합리적으로 쓸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개인으로 농사짓는 농민에게도 동등한 지원을 줄 것을 요구한다.

11. 우리는 모든 정치·경제 재판을 독립된 법원에서 재심하고, 죄 없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을 석방·복권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소련으로 끌려간 전쟁포로와 민간인을, 국경 밖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까지 포함해 즉시 송환할 것을 요구한다.

12. 우리는 완전한 의견·언론·출판의 자유와 자유로운 라디오를, 그리고 MEFESZ 조직을 위해 대량으로 발행되는 새 일간지를 요구한다. 우리는 현존하는 간부 신상 자료[5]를 공개하고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13. 우리는 스탈린 폭정과 정치적 억압의 상징인 스탈린 동상을 최대한 빨리 철거하고, 그 자리에 1848~49년 자유의 전쟁의 영웅과 순교자들에게 걸맞은 기념비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14. 우리는 헝가리 인민에게 낯선 지금의 국장 대신 옛 헝가리 코슈트 문장[6]을 되살리기를 바란다. 우리는 헝가리 국방군에 민족의 전통에 걸맞은 새 군복을 요구한다. 우리는 3월 15일과 10월 6일[7]을 국경일이자 휴무일로 정할 것을 요구한다.

15.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의 청년들은 만장일치의 열광으로, 폴란드의 민족 독립 운동과 관련해 폴란드와 바르샤바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완전한 연대를 표명했다.

16. 건설공업공과대학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MEFESZ 지역 조직을 세우며, 이달 28일(토요일)[8] 부다페스트에서 청년의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전국의 모든 청년이 대표단을 보내 참여한다. 내일, 이달 23일 오후 두 시 반에 공과대학과 다른 대학의 청년들은 공과대학 앞 광장에 모여 팔피 광장(벰 광장)의 벰 동상[9]으로 행진하고, 화환을 바쳐 폴란드 자유 운동과의 연대를 표한다. 공장의 근로자들도 이 행진에 자유롭게 합류할 수 있다.

위 결의를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전부 싣는 것을 오늘 저녁 라디오도 헝가리 신문도 거부했다. 『서버드 이프여샤그』[10]는 주로 첫째 조항 때문에 일부만 싣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결의문을 당장 등사해 찍어 내자고 거세게 요구했지만, 촐노키 총장[11]은 그 지시를 내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총회 참석자 약 2천 명이 오늘 저녁 안에 한 인쇄소 앞으로 자발적으로 행진해 결의문을 즉시 인쇄하는 일은, 참석자들의 거센 열기에도 불구하고 운동이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일그러지거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제안에 따라 결의의 최종 문안을 전체 회의 앞에서 마이크로 불러 주었고, 참석자들이 이를 받아 적었다. 당분간은 손이나 타자기로 베낀 사본을 눈덩이 방식으로 수도의 넓은 층에 퍼뜨릴 것이다.

우리는 헝가리 신문에 전문이 실리는 것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달 24일 MEFESZ는 위 결의를 바탕으로 헝가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에 관한 전국 토론을 열고자 한다. 우리는 헝가리 라디오가 총회를 현장 중계하여, 근로 인민이 왜곡 없이 청년의 목소리를 듣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결의의 전문을 일간 신문에 널리 싣겠다고 현장에서 한 약속들은 이 굳고 단호한 결의가 있는 한 지켜져야 한다.

이 결의는 헝가리 새 역사의 새벽인 1956년 10월 22일, 건설공업공과대학 강당에서 조국을 사랑하는 수천 명의 헝가리 청년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가운데 태어났다.

주석

  1. 1947년 2월 10일 파리에서 맺은 헝가리 강화조약. 연합국 점령군은 조약 발효 뒤 철수하되, 소련은 오스트리아 점령지와의 연락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헝가리에 군대를 둘 수 있었다. 1955년 오스트리아 국가조약으로 그 명목이 사라진 뒤에도 소련군은 바르샤바 조약을 근거로 남았다. ↩
  2. 저본은 이 조항만 「공개하자」(Hozzuk nyilvánosságra)라는 1인칭 복수로 썼다. 다른 판본에는 「공개하라」로 되어 있다. 배상금은 강화조약이 정한 소련·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전쟁 배상이다. ↩
  3. 노동자 한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해내야 하는 작업량 기준. 성과급 임금이 이 기준에 묶여 있어서, 노르마를 올리는 것은 곧 임금을 깎는 것이었다. ↩
  4. beszolgáltatás. 농민이 토지 면적에 따라 정해진 양의 곡물·육류·우유 따위를 국가가 정한 낮은 값에 넘겨야 했던 제도. ↩
  5. káderanyag. 직장과 당 인사 부서가 모든 근로자에 관해 쌓아 둔 신상·정치 성향 기록. 본인은 내용을 볼 수 없었다. ↩
  6. 1849년 독립 선언 때 코슈트 러요시 정부가 쓴, 왕관 없는 헝가리 문장. 1949년 헌법은 이를 소련식 국장(밀 이삭에 둘러싸인 망치와 이삭, 붉은 별)으로 바꾸었다. ↩
  7. 3월 15일은 1848년 페슈트 혁명이 시작된 날이고, 10월 6일은 1849년 혁명 진압 뒤 아라드에서 헝가리 장군 열세 명이 처형된 날이다. ↩
  8. 1956년 10월 27일이 토요일이다. 다른 판본에는 「27일, 토요일」로 되어 있다. 저본의 날짜를 그대로 옮겼다. ↩
  9. 1848~49년 헝가리 혁명군을 이끈 폴란드 장군 벰 유제프의 동상. 두 나라 자유 투쟁의 상징이어서 폴란드와의 연대 행진의 목적지가 되었다. ↩
  10. Szabad Ifjúság(「자유 청년」). 노동청년동맹(DISZ)의 기관지. ↩
  11. Cholnoky. 결의를 채택한 건설공업공과대학의 당시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