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경제 건설 1: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 햇빛소득마을에서 연합생산자론까지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8
1. 왜 지금 '대안 경제'인가
한국 진보 담론은 오랫동안 '비판'에 강하고 '건설'에 약했다. 재벌체제의 모순, 신자유주의의 폐해, 기후위기의 절박함을 분석하는 글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추상적 선언이나 먼 미래의 청사진으로 도피하곤 했다.
2025~2026년 한국은 이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재명 정부의 햇빛소득마을 사업, 전남개발공사의 공공주도 해상풍력, 3만 개를 넘어선 협동조합 생태계,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운동 —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정상성의 가장자리에서 이미 진행 중인 '다른 경제'의 싹들이다.
이 연재는 이 싹들을 단순한 '좋은 사례' 모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연합생산자론에서 에릭 올린 라이트의 현실 유토피아까지 이어지는 이론적 계보 위에 올려놓고 분석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경제 건설은 이미 시작되었다 — 다만 우리가 그것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2. 마르크스의 연합생산자론 —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첫걸음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그린 대안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association of free individuals)"이다. 이 연합은 "공동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다양한 개인들이 함께 활용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개인적 노동이 아닌 사회적 노동으로서 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자본론』 1권, 제1장).
여기서 핵심은 소유 형태의 전환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공동 영유와 컨트롤(common possession and control)"을 강조했고, 이는 단순한 국유화와 구별된다. 국가가 소유하는 것과 생산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코뮌은 그 원형이었다. 『프랑스 내전』에서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노동자 협동조합 구상을 "공동체적 생산"의 실험으로 평가했고, 레닌은 1894년 이미 "사회적 소유는 토지와 그 밖의 생산수단으로 확장되고, 개인적 소유는 생산물, 즉 소비재로 국한된다"고 마르크스를 해설했다.
이 이론적 틀은 우리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공한다: 생산수단의 공동소유가 단순히 법적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민주적 통제와 잉여의 공동 처분을 수반할 때 비로소 '연합생산'으로 진입한다는 것.
3. 햇빛소득마을 — 21세기 한국의 연합생산 실험
이런 눈으로 보면, 이재명 정부의 햇빛소득마을 사업은 단순한 '친환경 복지 정책'이 아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전국적 실험이다.
구조
마을 주민 10인 이상이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마을 내 유휴부지에 300kW~1,00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운영한 뒤 수익을 공동 분배한다. 행정안전부는 2026년 3월 공고를 통해 2026년에만 500개소 이상, 5년간 2,500개소를 목표로 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3만8천 개 읍·면·리 기준,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전국적 확대를 지시했다 (경향신문, 2026.3.24).
자금 조달의 설계
재원 구조는 생산수단 공동소유로 가는 진입 장벽을 낮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사업을 통해 설치비의 최대 85%를 1.75% 장기 저리로 융자
- 자기자금 15%는 마을 공동기금, 개인 출자(전체 출자금의 10% 이내 제한), 지역 농·수협 대출로 충당
-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 1.2가 적용되어 발전 수익이 20% 추가 확보됨
주목할 것은 출자 구조다. 개인 출자를 총 출자금의 10% 이내로 제한한 것은 한 사람이 다수 지분을 차지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이는 협동조합의 1인 1표 원칙을 재정 설계에서도 관철한 것이다.
잉여의 사회화
수익 배분 가이드라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 마을공동기금 40%: 다음 투자와 공동사업의 재원 — '축적의 사회화'
-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40%: 에너지 빈곤 해소라는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
- 유지보수 10%, 일상관리 10%: 설비의 지속가능성 확보
그리고 수익 분배는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이뤄진다. 이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산된 잉여가 지역 경제 내에서 다시 순환하도록 하는 지역순환경제의 의도적 설계다.
4.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 영광 바다에서 일어난 일
햇빛소득마을이 '아래로부터의 공동소유'라면, 전남개발공사의 영광 약수 해상풍력은 '공공 주도의 생산수단 직접 운영'이다.
2025년 7월, 전남 최초의 공공주도 해상풍력이 상업운전에 성공했다. 4.3MW 규모로 4,000가구에 청정 전력을 공급하는 이 사업은 지방공기업이 발전소를 직접 소유·운영하는 모델이다. 전남개발공사는 이후 완도 장보고(400MW), 신안 후광(323MW) 등 총 964MW 규모의 사업권을 확보했고, 지방공기업 최초로 '에너지본부'를 신설했다 (JN인뉴스, 2026.1.26).
여기서 핵심은 수익의 귀속 방향이다. 민간 발전사의 이윤이 주주 배당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달리, 공공주도 발전의 수익은 지방정부 재정으로 환원되어 지역 기반시설·복지·재투자로 순환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수단의 공동 영유"가 21세기 한국의 행정·기술 조건에서 작동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5. 협동조합 3만 개 시대 — 조용한 확장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협동조합 수는 3만 1천여 개.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13년 만의 성과다. 분야·업종·지역별로 다양하게 성장 중이며, 종사자 규모와 취약계층 고용확대 추세가 뚜렷하다(연합뉴스, 2026.4.6).
정부의 제5차 협동조합 기본계획(2026~2028)은 'S.M.I.L.E' 5대 전략을 내세웠다: △Social value(사회적 가치 창출) △Management(경영 혁신) △Innovation(혁신 성장) △Link(연대·협력) △Ecosystem(생태계 조성). 우선출자 총액한도 확대와 취득세 감면 같은 제도적 지원도 검토 중이다.
동시에 한국사회연대경제는 2026년 1월 정기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lifein.news, 2026.1.29). 돌봄·먹거리·에너지·지역순환경제 등 현장 실천 경험을 제도화하자는 운동이다.
협동조합 3만 개는 이미 '틈새'가 아니다. 다만 이 거대한 생태계가 단순한 '자영업자 협업체'에 머무르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라는 원칙을 의식화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가는 별개의 과제다.
6. 이론적 계보 — 마르크스에서 라이트까지
이 현장의 실천들을 이론적으로 위치 짓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르크스-레닌의 축: 『자본론』의 연합생산자론 → 『프랑스 내전』의 코뮌 분석 → 레닌의 「협동조합에 대하여」(1923)로 이어지는 계보. 레닌은 후기 저작에서 "협동조합의 성장은 사회주의의 성장과 동일하다"고까지 썼다. 물론 소비에트 러시아의 조건에서 쓴 글이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권력 장악을 전제로 협동조합을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적 통로로 본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 전환이론의 축: 에릭 올린 라이트의 『현실 유토피아』(Envisioning Real Utopias, 2010)는 '협동조합 시장 사회주의(cooperative market socialism)'를 자본주의 내에서 싹틀 수 있는 대안 경제의 한 형태로 정식화했다. 그가 제안한 사회적 소유의 네 가지 경로 — 국유, 노동자 소유, 공동체 소유, 공공신탁 — 는 오늘날 한국 현장에서 각각의 실험적 형태를 찾을 수 있다.
라이트의 통찰 중 하나는 이행의 정치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내에서 비(非)자본주의적 경제 형태가 성장할 수 있고, 이것들이 서로 연합하고 정치적 힘을 얻을 때 체제 전환의 궤도가 열린다고 보았다. 햇빛소득마을·공공풍력·3만 협동조합은 바로 그 비자본주의적 싹들이다.
7. 이 연재의 길
이 글은 5회차 연재의 첫 회다.
1회차(본고)는 마르크스의 연합생산자론과 햇빛소득마을을 연결하여 이론과 현장의 접점을 확인했다. 2회차에서는 노동자협동조합과 자주관리, 사회적 소유의 다양한 형태를 국내외 사례로 분석한다. 3회차는 에너지 민주주의와 재공영화의 국제 비교로 나아간다. 4회차에서는 플랫폼 협동조합과 데이터 공유지 — 디지털 경제의 대안적 소유 형태를 다룬다. 5회차는 이 모든 흐름을 '전환의 정치'로 종합하여, 지역에서 국가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조직화의 과제를 제기한다.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는 먼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다. 2026년 한국의 마을과 바다와 작업장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이 연재가 묻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이 싹들을 연결하고, 이론화하고, 정치적 힘으로 조직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