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경제 건설 5회차: 전환의 정치 — 지역에서 국가까지, 민주적 경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9


1. 들어가며: 지금까지의 여정과 마지막 질문

이 연재는 지금까지 네 가지 축을 따라 대안 경제의 구체적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 1회차 —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햇빛소득마을, 영광 약수 해상풍력, 협동조합 3만 개 시대
  • 2회차 —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것: 몬드라곤, 에밀리아로마냐, 한국 노동자협동조합의 현실과 한계
  • 3회차 — 공공이 다시 소유할 때: 영국 Great British Energy, 독일 에너지협동조합, 재공영화의 세계적 흐름
  • 4회차 — 디지털 공간을 공유지로: 플랫폼 협동조합, 데이터 민주주의, 커먼즈 기반 동료 생산

이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전환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소유 형태, 제도 설계, 기술 인프라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들을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는 권력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전환의 정치를 세 층위 — 지역, 연합(생태계), 국가 — 로 나누어 살펴보고, 한국의 현재 조건에서 어떤 경로가 열려 있는지 검토한다.

2. 지역: 프레스턴 모델 — 지방정부가 경제를 다시 짜다

영국 랭커셔의 프레스턴(Preston)은 2010년대 초반까지 대형 쇼핑몰 개발 유치 실패로 침체된 전형적인 탈산업 도시였다. 노동당 소속 매튜 브라운(Matthew Brown) 시의원이 미국 클리블랜드의 에버그린 협동조합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추진한 '커뮤니티 웰스 빌딩(Community Wealth Building, CWB)'은 이 도시를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안 경제 실험실로 바꾸어놓았다.

프레스턴의 4대 원칙:

  1. 있는 부(富)로 시작한다(Wealth that's there) — 프레스턴 시의회, 경찰, 대학(UCLan), 병원 등 6개 앵커 기관의 조달 지출을 지역 내로 전환. 2013~2017년 사이 지역 조달 지출이 £7,500만 파운드 증가했다.
  2. 노동력(Workforce) — 생활임금(Real Living Wage) 도입, 기술 훈련 투자, 지역 소비 촉진. 프레스턴은 북잉글랜드 최초 생활임금 지자체가 되었고, 저임금 노동자의 약 1/4이 임금 인상 혜택을 받았다.
  3. 토지·자산·투자(Land, Property, Investments) — 공공 자산의 전략적 활용. 프레스턴은 랭커셔 14개 지자체 중 사회·저렴주택을 가장 많이 공급했다.
  4.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 — 협동조합 육성, 경제적 시민권 확장.

성과, 실증으로 확인되다:

2025년 8월 BMJ(British Medical Journal)에 게재된 연구는 프레스턴 모델의 효과를 엄밀하게 검증했다. 2015~2019년 프레스턴의 고용률은 유사 규모 지자체 대비 4% 포인트 증가했으며, 장애인·소수인종·저학력 집단에서 더 큰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랜싯》(The Lancet) 2023년 연구는 주민 정신건강 지표의 유의미한 개선을 확인했다. 2014/15~2023/24년 아동빈곤 증가율은 랭커셔 6개 유사 기초지자체 중 최저를 기록했다.

프레스턴 모델이 시사하는 것:

  • 지방정부는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경제의 전략적 조정자가 될 수 있다.
  • 재정적 여유가 없어도 기존 구매력(조달 예산)을 방향 전환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
  • 앵커 기관 네트워크는 일종의 공공-공공 파트너십(public-public partnership)으로, 민관협력(PPP)의 대안이다.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

햇빛소득마을(1회차 참조)은 프레스턴 모델과 정확히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마을 단위 공동소유 + 앵커 기관(행안부·지자체)의 제도적 지원 + 지역화폐 순환. 2026년 정부는 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 1.15조원을 편성했고,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여행 시 지역사랑상품권 50% 환급 제도를 시행한다. 지자체 사회적경제 조례도 확산 중이다. 협동조합 활성화 예산은 2026년 31억원(2024~25년 15억원에서 증액), 사회적경제 전체 지원은 1,265억원(2025년 316억원에서 4배 증가)이다.

한국사회연대경제는 2026년 정기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돌봄·먹거리·에너지·지역순환경제에서 지방정부 정책의 핵심 주체로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위치시키는 것이 골자다. 프레스턴은 한국의 기초지자체가 참조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모델이다.

3. 연합: 에밀리아로마냐 — 협동조합 생태계가 지역을 바꾸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협동조합이 지역 GDP의 약 30%를 생산하는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협동조합 생태계를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최빈곤 지역이었던 이곳이 유럽 최고 수준의 번영을 누리게 된 배경에는 단순한 '협동조합의 양적 성장'이 아니라 생태계적 연합(ecosystem coalition)이 있었다.

핵심 메커니즘: 3% 자체과세와 연합회

1947년 제정된 Legge Basevi(바세비 법)는 협동조합이 이윤의 3%를 협동조합 연합회에 납부하도록 규정했다. 이 기금은 Legacoop, Confcooperative, AGCI 3대 연합회를 통해 기술 지원·금융·교육·정치적 대표 기능으로 환원된다. 즉 협동조합이 스스로 세금을 부과해 자신들의 생태계 인프라를 공동 생산하는 구조다.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

에밀리아로마냐 협동조합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범위의 경제에 있다. 건설 협동조합, 제조 협동조합, 서비스 협동조합, 사회복지 협동조합이 상호 계약을 통해 보완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단일 시장 지배가 목표가 아니며,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복합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촉진자 역할

에밀리아로마냐 주정부는 협동조합을 직접 소유하거나 지휘하지 않는다. 대신 인프라·법제·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촉진자(facilitator)로 기능한다. 협동조합에 유리한 공공조달 정책, 창업 지원, 위기 시 금융 지원 등이 그것이다. 영국의 CCIN(Cooperative Councils Innovation Network)은 2024년 에밀리아로마냐를 방문해 이 모델의 이식 가능성을 검토했다.

교훈:

단일 협동조합의 성공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 연합의 제도화가 전체 생태계의 회복력을 결정한다. 한국의 협동조합 3만 개는 양적으로 풍부하지만, 연합회를 통한 자체 투자·기술 공유·정치적 대표 기능은 에밀리아로마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핵심 과제는 바로 이 생태계 인프라의 제도화다.

4. 국가: 풀란차스와 라이트 — 민주적 국가 변형의 이론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 『국가·권력·사회주의』(1978)에서 국가를 단순한 '계급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계급 투쟁의 응축물(condensation of class struggle)로 보는 관계적 국가론을 제시했다. 국가 내부에는 다수의 모순과 균열이 존재하며, 민주적 힘들이 이 균열을 통해 국가를 내부로부터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란차스의 핵심 통찰은 세 가지다:

  1. 국가는 단일한 권력 블록이 아니라 모순들의 장(field of contradictions)이다.
  2.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국가 권력의 일회적 '장악'이 아니라 장기적인 변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3.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확장하는 것 —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하는 것 — 이 전략의 핵심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는 『현실 유토피아』(2010)에서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네 가지 전환 논리를 제시했다:

  1. 균열(ruptural) — 자본주의 국가 기구의 혁명적 전복. 역사적 사회주의 혁명의 고전적 경로.
  2. 간극(interstitial) — 자본주의의 틈새에 협동조합·커먼즈·사회적경제 등 대안을 구축하는 전략. 프레스턴과 에밀리아로마냐가 여기 해당한다.
  3. 공생(symbiotic) — 국가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내부에서 변형하는 전략.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건설이 전형적 사례다.
  4. 사회적 소유(social ownership) — 위 세 전략을 종합하는 라이트의 독자적 제안. 국가 소유도, 사적 소유도 아닌 '사회적 소유'의 다양한 형태들(협동조합, 커뮤니티 트러스트, 공공은행 등)을 법제도와 운동의 결합으로 확장한다.

바르셀로나 en Comú의 실험:

바르셀로나는 2015~2023년 좌파 시민운동 연합 'Barcelona en Comú'(아다 콜라우 시장)의 집권을 통해 이 네 가지 논리를 지방정부 수준에서 종합한 사례다. 주요 정책은:

  • 공공 에너지 회사(Barcelona Energia) — 2018년 설립, 시민에게 100% 재생에너지 전기 판매
  • 워터 커먼즈(Water Commons) — 상수도를 시민 참여형 공공 관리로 전환
  • 시민 소유 데이터 인프라(DECODE) — EU 프로젝트로 시민이 자신의 데이터를 통제하고 공유지로 관리하는 플랫폼 개발
  • 협동조합 지원 — La Comunal(협동조합 인큐베이터), Coòpolis(사회연대경제 지원센터) 설립

바르셀로나 en Comú는 2023년 지방선거에서 과반을 잃고 야당이 되었지만, 제도화된 정책들(특히 Barcelona Energia)은 후임 정부에서도 해체되지 않았다. 제도적 침전(sedimentation)의 성공 사례다.

5. 한국: 세 층위의 현재 지형

한국에서 대안 경제의 정치적 전환은 여전히 초기 단계지만, 세 층위 모두에서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역 층위:

  • 햇빛소득마을, 영광 약수 해상풍력 등 에너지 협동조합의 확장
  •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제도화: 2026년 1.15조원 예산
  • 지자체 사회적경제 조례 확산

연합(생태계) 층위:

  •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운동: 2026년 한국사회연대경제 정기총회 결의
  • 협동조합 연합회의 정책 역량 강화 움직임
  • 한계: 에밀리아로마냐 수준의 자체 과세·공동 기금·공동 정치 대표 체계는 부재

국가 층위:

  • 2026년 정부의 분산에너지 정책: "중앙집중에서 지역밀착으로" 전환 명시
  • 이격거리 규제 개선(재생에너지법 개정 2026년 1분기 추진), 주민참여형 태양광 활성화 제도 개선
  • 공영주차장 1,500개소 태양광(1.1GW) 설치 계획
  • 사회적경제 예산의 급격한 증액(4배)

한국의 조건에서 가장 현실적인 전환 경로는 간극 전략(interstitial)과 공생 전략(symbiotic)의 결합이다:

  • 간극: 협동조합·커먼즈·사회적경제를 자본주의의 틈새에 구축
  • 공생: 지방정부의 조달·계획 권한, 국가의 법제·예산을 통해 이를 확장·제도화

이는 라이트가 말한 '사회적 소유(social ownership)' 전략의 한국적 적용에 다름 아니다.

6. 결론: 대안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섯 회차에 걸친 이 연재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하나다: 대안 경제는 이론적 구상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는 햇빛소득마을과 영광 해상풍력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몬드라곤과 에밀리아로마냐에서 70년 이상 축적된 성과와 교훈을 제공한다. 공공 소유의 새로운 형태는 Great British Energy와 Barcelona Energia에서 실험되고 있다. 디지털 공유지는 플랫폼 협동조합과 데이터 민주주의의 형태로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전략은 프레스턴과 바르셀로나, 에밀리아로마냐에서 검증되었다.

한국은 이 모든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 특권적 위치에 있다. 협동조합 3만 개의 양적 기반, 지방정부의 제도적 자율성, 2026년 재생에너지·지역화폐·사회적경제 예산의 급격한 확대는 전환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재가 던진 질문들 — 누가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어떤 정치로 전환할 것인가 — 에 대한 답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한다: 지금, 여기,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것. 국가 권력을 기다리지 않고, 자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우리가 이미 가진 자원과 제도와 연대로부터 대안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이론과 실천이 만나는 지점이며, 이 연재가 도달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