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경제 건설 2회차: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것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8
1. 생산수단 소유의 또 다른 길
1회차에서 우리는 연합생산자론과 햇빛소득마을을 통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는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물었다. 답의 한 축은 국가-공공 부문 주도의 재생에너지·인프라 민주화였다. 이번 회차는 그 다른 축 — 노동자 자신이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모델 — 을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검토한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 소유 기업은 얼마나 자율적인 대안 경제로 성장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의 연합생산자론이 그린 그림은 무엇이고, 유고슬라비아·몬드라곤·에밀리아로마냐의 실험은 무엇을 증명했으며, 한국에서 주식회사가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사례들은 어떤 가능성과 장벽을 보여주는가?
2. 이론적 전통: 연합생산자에서 현실 유토피아까지
2.1 마르크스의 연합생산자 — 국유화가 아닌 공동 영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association of free individuals)"이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며 사회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미래를 그렸다. 여기서 핵심은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를 국유화(state ownership)와 구별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내전』(1871)에서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노동자협동조합 구상을 "공동체적 생산(communal production)"의 실험이라고 평가하며, 코뮌이 폐쇄된 공장들을 노동자 자신의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 한 시도를 높이 샀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적 소유란 국가 관료가 통제하는 국유화가 아니라, 직접 생산자들의 공동 영유와 민주적 통제(common possession and control) 였다.
레닌은 「협동조합에 대하여」(1923)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협동조합의 성장은 사회주의의 성장과 동일하다." 단, 레닌의 전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국가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이었다. 협동조합은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과도기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마오쩌둥의 협동조합론 역시 농업 합작사(초급→고급)의 단계론으로, 반(半)사회주의적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국가 계획경제로의 통합을 상정했다.
고전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이미 혁명이 완료된 조건에서의 건설 도구로 본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이 혁명 이전에 얼마나 자율적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 오늘날의 핵심 질문 — 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2.2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 — 왜 실패했는가
티토의 스탈린 결별 이후 1950년대 도입된 유고슬라비아 노동자 자주관리(worker self-management)는 30년 가까이 지속된 가장 야심 찬 실험이었다. 노동자평의회가 기업의 소유·운영·잉여 처분을 결정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세 가지 이유로 실패했다.
첫째, 형식적 자주관리.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League of Communists)이 기업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계속 장악했다. 노동자평의회는 있되 결정권은 당에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붉은 깃발 아래"라는 냉소적 평가를 낳았다.
둘째, 민족·지역 격차의 증폭.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의 부유한 북부와 마케도니아-코소보의 가난한 남부 간 경제 격차가 자주관리로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분권화가 지역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셋째, 시장 압력 속 내부 불평등. 시장경제와 경쟁하는 조건에서 협동조합 내부에도 임금 격차·경영자 특권이 재생산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교훈은 하나로 압축된다: 법적 소유권 이전만으로 자주관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적 통제의 제도적 기제 — 정보 접근성, 교체 가능한 경영진, 임금 상한, 잉여 처분의 민주적 절차 — 가 없으면 어떤 협동조합도 퇴행한다.
2.3 몬드라곤 — 성공과 '협동자본주의'의 역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즈멘디아리에타 신부와 5명의 기술학교 제자가 바스크 지방에 설립한 몬드라곤은 세계 최대의 노동자협동조합 복합체다. 2023년 기준 100개 이상의 해외 자본주의 자회사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과는 압도적이다. 최고 임금 대비 최저 임금이 6배(일부 CEO의 경우 9배)로 제한되고, 1인 1표의 민주적 지배구조가 유지되며, 이익은 공동체 재투자에 우선 배분된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장기 생존했다.
그러나 모순도 깊다. Errasti·Bretos·Las Heras(2025, Analyse & Kritik 47권 1호)의 최신 연구가 지적하듯, 해외 자회사의 노동자는 몬드라곤 조합원이 아닌 임금노동자다. 바스크 본토에서는 1인 1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만, 멕시코·중국·동유럽 공장에서는 전통적 고용 관계가 유지된다. 연구자들은 이를 '협동자본주의(coopitalism)' 로 명명한다 — 협동조합의 옷을 입은 다국적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몬드라곤이 보여주는 역설은 날카롭다: 노동자 소유 기업이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성장할수록, 그 내부에 자본주의적 관계를 재생산할 압력이 커진다. 성장 그 자체가 정체성을 잠식한다. 이는 규모의 정치 문제 — 얼마나 커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 를 제기한다.
2.4 에밀리아로마냐 — 생태계가 답이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인구 500만)에는 약 4,000개의 협동조합이 25만 명을 고용하고 300만 조합원을 두고 있다. 이는 전체 노동력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성공의 뿌리는 19세기 중반 노동자 상호부조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태계를 만든 것은 제도적 설계다. 이탈리아 전역 협동조합은 이익의 3%를 협동조합 발전 기금으로 자체 과세한다. 이 기금이 새로운 협동조합의 설립·전환·성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2015년에는 지방정부·노동조합·협동조합 연합·사용자단체 간 '노동과 경제를 위한 협약'이 체결되어, 돌봄·교육·에너지·제조 전반에 걸친 협동조합 생태계 확장을 제도화했다.
에밀리아로마냐의 핵심 교훈은 개별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협동조합화다. 금융·교육·돌봄·제조·유통을 아우르는 협동조합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비로소 개별 협동조합이 시장 압력에 저항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중립적 규제자'가 아니라 적극적 촉진자(enabler) 역할을 수행했다.
또 하나 주목할 특징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가 아닌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대량생산으로 경쟁하는 대신, 소규모·숙련노동자 주도·전문화된 협동조합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경쟁한다.
2.5 에릭 올린 라이트의 '현실 유토피아'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현실 유토피아』(Envisioning Real Utopias, 2010)에서 사회적 소유의 네 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국유화, 노동자 소유, 공동체 소유, 공공신탁.
그의 '협동조합 시장 사회주의(cooperative market socialism)'는 자본주의 내에서 비(非)자본주의적 경제 형태가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제 위에 서 있다. 이행의 정치(transitional politics)란 기존 제도 내에서 대안 경제를 싹틔우고, 그것이 충분한 사회적 규모에 도달했을 때 정치적 힘을 통해 제도 변화를 뒷받침하는 선순환이다. 몬드라곤을 대표적 현실 유토피아로 보았지만, 후기 저작에서는 국제화가 초래하는 모순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라이트식 점진주의의 긴장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협동조합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 선순환의 고리가 정치권력의 문제 — 누가 국가를 통제하는가 — 없이 굴러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한국 사례에서 더욱 첨예해진다.
3. 한국의 실험: 두 개의 전환
한국에서 노동자협동조합 운동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미 의미 있는 전환 사례가 존재한다. 두 사례는 서로 다른 경로 — 자발적 전환과 방어적 인수 — 를 보여준다.
3.1 해피브릿지협동조합 — 자발적 전환 (2013)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은 대한민국 최초의 주식회사→노동자협동조합 전환 사례다. 1999년 식자재 유통으로 시작해 프랜차이즈(화평동 왕냉면·국수나무 등 600여 개 가맹점)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2013년, 96명의 조합원과 15명의 일반 직원이 주식회사 간판을 내리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기존 일반 주주들이 소유권을 직원-조합원에게 이전했다. 단순한 법적 형태 변경이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전체를 1인 1표 민주주의로 재편한 것이다.
전환 후 4년간 매출은 550억 원으로, 전환 전 14년간의 매출(240억 원)을 단숨에 넘어섰다. CEO 급여는 신입사원의 6배 이하로 제한되었고, 몬드라곤을 명시적 롤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장벽도 뚜렷했다. 전환 직후 기존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전면 거부되었다.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에 대한 신용평가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협(신용협동조합)으로 금융거래를 전환해야 했다 — 사회연대금융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이다.
KCI 등재 학술연구(한국경영학회, ART002202529)는 해피브릿지의 전환을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 관점에서 분석하며, 이 전환이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였음을 밝혔다. 이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노동자협동조합 전환은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일상적 민주적 실천이 기업구조 변화로 결정화되는 과정이다.
3.2 한국종합기술 — 방어적 인수 (2017)
한국종합기술의 사례는 더 극적이다. 한진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로 2017년 매각 위기에 처한 엔지니어링 기업이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김영수 현 대표의 주도로, 직원 830명이 1인당 5천만 원씩 출자하고 증권사 차입을 더해 총 530억 원으로 지분 53%를 확보했다. 이는 적대적 M&A를 직원 집단 인수로 방어한 사례다.
지배구조는 3단계다: KECC엔지니어협동조합(노동자협동조합) → 한국종합기술홀딩스 100% 소유 → 한국종합기술 53% 지배. 1인 1표 원칙으로 대표이사를 전 직원 투표로 선출하고, 부서장 인사검증 시 부서원 투표로 부동의권(비토권) 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경제적 성과도 인상적이다: 매출 1,900억 원(2017)에서 4,100억 원(2024)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고용은 830명에서 1,630명으로 800명 가까이 늘었다. 이익을 소수 주주가 독식하는 대신 일자리 확대로 순환시킨 것이다. 인수 직후 3년간의 적자 국면에서는 전 직원 투표로 전원 임금 10% 자발적 반납을 결정하고 이후 반등에 성공했다 — 민주적 소유구조가 위기 대응력을 높인 사례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CEO 나이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이 67만 개에 달하며 후계자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종합기술 모델은 단순한 노동운동의 성공담을 넘어, 중소기업 승계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3.3 두 전환이 말해주는 것
해피브릿지와 한국종합기술의 교차점은 선명하다.
가능성: 노동자 소유는 (a) 기업의 경제적 성과를 훼손하지 않으며 오히려 향상시킬 수 있고, (b) 민주적 지배구조가 위기 대응력을 높이며, (c) 1인 1표 원칙이 소수 주주·오너에게 집중되던 이익을 일자리·임금·공동체로 재분배한다는 점이다.
장벽: 두 사례 모두 (a) 제도권 금융 접근성의 급격한 저하를 경험했고, (b) 상법·세법이 노동자 소유 기업을 상정하지 않아 지속적인 법적 마찰에 노출되며, (c) 전환 과정 자체가 개별 기업의 고립된 투쟁에 의존했다. 에밀리아로마냐식 생태계 — 전환을 지원하는 제도적 금융·법률·교육 인프라 — 는 부재한다.
4. 제도적 장벽과 전환의 조건
4.1 협동조합기본법의 빈틈
2012년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은 일반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 근거를 마련했지만, 노동자협동조합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a) 조합원=노동자라는 동일성, (b) 잉여의 노동자 배분, (c) 기업 전환 시 자본 이전의 특수한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현행법은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4.2 사회연대금융의 부재
해피브릿지 사례가 보여주듯, 기존 금융시스템은 협동조합에 작동하지 않는다. 에밀리아로마냐의 3% 자체 과세 기금이나, 퀘벡의 노동자 연대 기금(Fonds de solidarité FTQ)과 같은 사회연대금융 메커니즘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4.3 노동자 기업인수(EOT) 입법 과제
영국의 Employee Ownership Trust(EOT), 미국의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처럼, 노동자 기업인수를 촉진하는 별도 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회·시민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노동자 기업인수는 일반 M&A 법제 안에서 기형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4.4 전환의 조건 — 생태계와 정치
한국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이 '고립된 모범 사례'에서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금융 생태계: 협동조합 전환·설립을 위한 전용 금융 — 공공금융기관의 협동조합 특화 대출, 협동조합 간 상호금융, 사회연대펀드.
- 법제 정비: 노동자협동조합 특별법, EOT 입법, 공공조달에서 사회적 가치 우선 구매.
- 지역 거버넌스: 지방정부의 촉진자 역할 — 기술·경영 교육, 빈 점포·유휴 시설의 협동조합 우선 임대, 지역화폐 연계.
- 네트워크 효과: 개별 협동조합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 거래·공동구매·공동브랜드로 연결되는 에밀리아로마냐식 연합.
5. 협동조합은 혁명의 대체재인가, 가속기인가
이론과 실천의 검토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자동적 대체재가 될 수 없다. 몬드라곤의 '협동자본주의'로의 퇴행, 유고슬라비아의 실패, 한국 사례의 제도적 고립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노동자 소유 기업이 성장할수록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압력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협동조합의 무의미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협동조합이 정치권력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에밀리아로마냐식 생태계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정치가 시장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종합기술 노동자들이 적대적 M&A를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830명의 집단적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말했듯, "협동조합의 성장은 사회주의의 성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레닌이 전제한 '국가권력의 장악' 없이도,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 관계를 예표(prefigure) 하는 일상적 실천이다. 햇빛소득마을의 에너지 자치, 해피브릿지의 민주적 프랜차이즈, 한국종합기술의 노동자 투표 — 이 모든 것은 미래의 생산 관계를 현재 안에 심는 작업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생산수단 민주화의 또 다른 축, 에너지 민주주의와 재공영화의 국제적 실험들을 검토한다. 영국의 공공에너지 회사, 독일의 에너지 협동조합 붐, 라틴아메리카의 물 재공영화 — 자본이 포획한 필수재를 어떻게 공동의 것으로 되찾을 것인가.
참고문헌
- Marx, Capital Vol. 1; The Civil War in France (1871)
- Lenin, "On Cooperation" (1923)
- Errasti, Bretos & Las Heras, "Mondragon Cooperatives and the Utopian Legacy: Economic Democracy in Global Capitalism," Analyse & Kritik 47(1), 2025
- Erik Olin Wright, Envisioning Real Utopias (2010)
-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사례연구, 한국경영학회, KCI ART002202529
- "직원들이 회사를 샀다" — 민생연대·소셜임팩트뉴스 (2024)
- Emilia-Romagna cooperative ecosystem: Lowimpact.org interview (2023), Legacoop data
-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 libcom.org, "Worker self-management in historical perspective"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