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사회주의: 기후위기의 계급정치경제학 — 3회: 탈성장이냐 그린뉴딜이냐 — 두 길의 계급정치학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4
연재 '생태사회주의: 기후위기의 계급정치경제학' — 3회/5회
1회: 자본주의는 왜 구조적으로 생태위기를 생산하는가 (물질대사 균열)
2회: 현실 사회주의와 생태 — 소련의 실패, 쿠바의 실험
3회: 탈성장이냐 그린뉴딜이냐 — 두 길의 계급정치학 ← 지금 여기
기후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응은 하나가 아니다. 오늘날 국제 진보 진영 내에서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략 논쟁이 있다면, 그것은 탈성장(Degrowth) 대 그린뉴딜(Green New Deal)의 대립이다. 두 입장 모두 자본주의의 생태 파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원인 진단과 대안 처방,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누가 전환을 추진하는가라는 계급 주체 문제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이 논쟁을 단순히 정책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이 숨어 있다.
1. 그린뉴딜: 자본주의 안에서의 녹색 전환
주장의 핵심
그린뉴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경제학자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의 입장은 명확하다: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다. 환경 친화적인 자본주의는 가능하며,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에 집중 투자하면 경제성장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방은 구체적이다: 전 세계 GDP의 1.5~2%를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향상에 투자한다. 버니 샌더스 버전은 일자리 2,000만 개 창출과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제시했고, 영국 노동당 버전은 고임금 녹색 일자리로의 '정의로운 전환'과 노동조합 설립 보장을 포함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미국 그린뉴딜 결의안은 전국 규모 재생에너지 전환, 보편적 의료, 주거 보장을 묶어낸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2020)이 그린뉴딜을 공식 정책 어젠다로 흡수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정부 버전의 그린뉴딜은 폴린의 것과도 달랐다 — 기후정의나 사회적 전환이 아닌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수단으로 환경을 동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린뉴딜의 현실적 강점
그린뉴딜 접근에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강점이 있다. 첫째, 노동자 계급에게 즉각적으로 가시적인 이익(일자리, 임금, 공공서비스)을 제시한다. 둘째, 국가 투자와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셋째, 광범위한 연합 — 노동조합, 환경단체, 사민주의 정당 — 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린뉴딜의 계급적 한계
그러나 그린뉴딜에는 구조적 약점이 있다.
재원 문제: 폴린이 제안하는 재생에너지 대규모 투자가 효과를 내려면 민간 투자가 현재의 3배 이상 증가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윤율이 낮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현대화폐이론(MMT)에 의존해 정부가 화폐를 발행해도, 실물 생산과 이윤율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인플레이션만 남는다. 역사적으로 루스벨트의 뉴딜이 대공황에서 미국 경제를 완전히 구해낸 것은 정책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국가가 생산·투자를 직접 장악)이었다.
구조 회피: 폴린은 화석연료만 줄이면 자본주의적 성장이 선(善)한 효과를 낼 것이라 가정한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 희소자원 수요가 늘고, 환경 파괴적 생산방식이 이윤에 유리한 한 자본은 계속 그 방향을 선택한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화석연료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보완한 것이 현실이다 — 덴마크, 독일조차 에너지 수요 증가 시 석탄을 병행한다.
탄소시장의 계급성: 그린뉴딜의 주요 재정 수단인 탄소세·배출권거래제는 비용을 소비자(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은 탄소세가 저소득층을 직격했을 때 어떤 반발을 낳는지 보여줬다.
2. 탈성장: 자본주의를 넘어서, 그러나 누가?
주장의 핵심
탈성장론의 출발점은 그린뉴딜보다 더 근본적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생태 재앙의 원인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지구의 생태적 수용 한계를 이미 1.7배 초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이 한계를 해결할 수 없다.
탈성장론의 대표 이론가로는 사이토 고헤이(齋藤幸平),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 그리고 버튼·소머빌 등이 있다. 사이토의 '탈성장 코뮤니즘'은 한국에서도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2021 한국어판)를 통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이토의 논점: 마르크스는 말년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정상형 경제'를 구상했다. 이는 탈성장 코뮤니즘의 원형이다.
탈성장의 계급적 문제들
탈성장론은 그린뉴딜보다 자본주의 비판에서 더 철저하다. 그러나 핵심적인 계급 문제가 있다.
첫째, 사이토의 마르크스 해석 문제. 노동자연대는 사이토가 마르크스를 '탈성장 코뮤니스트'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역할과 마르크스의 역사적 열린성(공멸 가능성 포함)을 삭제한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코뮤니즘을 필연적 낙관이 아니라 실천적 투쟁의 결과로 봤다.
둘째, 누가 탈성장을 실현하는가? 탈성장론자들은 생산과 소비의 전반적 축소를 제시하지만,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소비 억제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개인의 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은 BP(영국석유)가 2004년 광고 캠페인에서 대중화시킨 것이다 — 자신들의 구조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위해.
셋째, 탈성장의 실효성 문제. 버튼과 소머빌 자신이 제시하는 수치로도, GDP 10% 감축은 2007~2009년 금융위기가 해마다 반복되는 것에 해당한다.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기껏해야 3억 톤(2015년 배출량 32억 톤의 9%)에 그친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 수축은 남반구 민중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용한다.
넷째, 남반구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맥스 아일(Max Ajl)의 『민중을 위한 그린뉴딜』(2023)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북반구 탈성장론은 이미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이 남반구 민중에게 "성장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제국주의적 함의를 지닐 수 있다. 기후정의는 역사적 탄소 부채 청산과 남북 불균형 해소를 포함해야 한다.
3. 마르크스주의적 재배치 — 두 입장의 공통 공백
그린뉴딜과 탈성장, 두 입장 모두에 공통된 결함이 있다: 계급 주체 문제.
그린뉴딜 지지자들은 올바른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중심에 놓는다 — 즉, 국가와 개혁적 정치인이 주역이다. 탈성장론자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과 행동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탈계급적이다. 두 입장 모두에서 노동자 계급이 생산 체계를 통제하는 주체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다르다: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 이윤 추구를 위한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이 체제를 변혁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그 주체는 생산의 중심에 있는 노동자 계급이다. 그린뉴딜이나 탈성장이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환경 파괴적 생산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나 탐욕이 아니라 이윤율 압박에 따른 구조적 강제라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투자 결정권이 자본에 있는 한, 재생에너지는 이윤이 날 때만 확대된다. 생산과 에너지의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계획이 필요하다.
- 탈성장은 체제 전환 없이 불가능하다: '좋은 삶'(Good Life, Buen Vivir)으로의 이행은 생산 우선순위를 이윤에서 필요로 전환하는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종식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종식을 요구한다.
- 정의로운 전환은 계급 투쟁이다: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했을 때, 그것은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 10만 명의 일자리 문제를 미해결인 채 전기차 전환을 가속하는 수단이 됐다. 그린뉴딜이든 탈성장이든, 전환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는 계급 문제다.
4. 세 입장의 계급 좌표
| 그린뉴딜 | 탈성장 | 생태사회주의 | |
|---|---|---|---|
| 자본주의 진단 | 신자유주의 문제, 체제 유지 | 성장 자체가 문제 | 생산양식 자체가 문제 |
| 전환 주체 | 국가·개혁 정치인 | 모든 사회 구성원 | 노동자 계급 |
| 기술 평가 | 낙관 (재생에너지가 해법) | 비판적 (기술이 성장을 강화) | 조건부 (사회적 통제 하에서 도구) |
| 성장 입장 | 녹색 성장 가능 | 탈성장 필요 | 자본주의적 성장 종식, 필요 기반 생산 |
| 남반구 관점 | 부재 또는 부차적 | 제국주의적 함의 위험 | 기후정의·탄소 부채 포함 |
| 한국 적용 | 한국판 뉴딜(실패), 탄소세 | 생태당, 녹색당 일부 | 공식 운동 약함 |
5. 한국: 정의로운 전환의 계급 지형
한국에서 이 논쟁은 추상이 아니다. 구체적 지형이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K-ETS): 2015년 도입. 배출 허용량 초과 기업은 배출권을 사야 한다. 그러나 비용은 제품 가격에 전가되고, 저소득층이 더 큰 비율의 소득을 에너지에 쓰기 때문에 역진적이다. 에너지 빈곤층 문제가 심화됐다.
자동차 산업 전환: 전기차 전환으로 내연기관 부품사(약 10만 명 노동자)가 직접 위협받는다. 현대·기아 완성차 노조는 탄소중립 정책 지지를 표명했으나, 부품사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정의로운 전환'이 완성차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면, 하청 노동자 대량 해고로 귀결된다.
에너지 전환의 지정학: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중국산 태양광 패널·풍력터빈 의존도를 높인다. 미-중 갈등 속 공급망 정치가 에너지 전환과 충돌한다. 트럼프 2기의 IRA 해체 움직임은 한국 녹색산업에 직격탄이다.
결론: 어떤 전환인가, 누구를 위한 전환인가
그린뉴딜과 탈성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답하려 한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질문을 회피한다: 자본주의 생산 체계에서 생산을 결정하는 권력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것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이 생태사회주의의 출발점이다. 다음 회(4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생태사회주의가 제시하는 대안 — 생태적 계획경제, 코뮤니티 에너지, 식량 주권 — 의 내용과 그 실현 가능성을 검토한다.
연재 순서: 1회 — 물질대사 균열 | 2회 — 소련의 실패, 쿠바의 실험 | 3회 — 탈성장 vs 그린뉴딜 | 4회 — 생태사회주의의 대안 (예정) | 5회 — 한국의 생태 전환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