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초기화

군사·지휘 · 북양정부·군벌 인물 3명

위안스카이

袁世凯
군사·지휘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859–1916 ○ 병사

신해혁명의 성과를 가로채 황제가 되려 한 북양군벌의 총수

1911년 우창 봉기 뒤 기용되어 청 조정과 혁명파를 동시에 압박해 청 황제의 퇴위를 얻어내고 이듬해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이 되었다. 1915년 제정을 선포했으나 국보전쟁의 반발로 이듬해 3월 퇴위하고 6월에 사망했다.

청 말 북양신군을 키운 군인·관료였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청 조정과 혁명파 사이에서 양쪽을 압박해 1912년 청 황제의 퇴위와 자신의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을 함께 얻어냈다. 이후 국회를 무력화하고 국민당을 해산했으며, 1915년 말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가 각 성의 반발로 이듬해 제정을 취소하고 곧 병사했다. 그의 죽음 뒤 북양군은 분열해 군벌 시대가 열렸다.

상세 이력 보기
  • 1901–1907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 1912–1916중화민국 대총통
  • 1915.12–1916.03「중화제국」 황제 자칭

쭤린 위팅 장

张作霖
군사·지휘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인 1875–1928 ✕ 암살

만주를 지배한 군벌 정치가

1928년 6월 4일, 베이징에서 돌아오던 그의 열차가 황고둔에서 폭발했다.

장쭤린은 청 말의 군인에서 출발해 중국 군벌시대 동북 지역의 독자적 권력자로 성장한 중국 정치가였다. 그는 봉천군벌을 이끌며 만주를 사실상 자치적으로 통치했고, 군사력과 산업·재정 정비를 결합해 자신의 기반을 강화했다. 일본의 지원과 만주 이권을 둘러싼 협력은 그의 권력을 키웠지만, 동시에 일본군과 충돌할 여지도 남겼다. 국민당의 북벌로 베이징에서 철수하던 중 관동군 장교들이 설치한 폭탄에 중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이 황고둔 사건은 일본군의 독단적 만주 개입이 심화되는 전조가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1895청군 기병으로 청일전쟁 참전
  • 1905봉천성 정규군 연대 지휘관
  • 1916봉천성 군무독판
  • 1918동삼성 순열사, 만주 군정 장악
  • 1924베이징 장악, 중화민국 군사독재자
  • 1927–1928중화민국 육해군 대원수
  • 1928황고둔 사건으로 관동군에 암살됨

장쉐량

张学良
군사·지휘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901–2001 ↓ 체포 1936 · 자연사

시안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제2차 국공합작의 길을 연 「젊은 원수」

1936년 12월 시안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냈고, 그 대가로 반세기 넘게 연금 생활을 했다.

만주 군벌 장쭤린의 아들로 1928년 아버지가 일본군에 폭살되자 동북을 물려받았고, 그해 말 난징 국민정부에 귀순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근거지를 잃은 뒤 공산당 토벌에 투입되었으나, 1936년 12월 시안에서 양후청과 함께 장제스를 감금해 내전 중지와 항일을 요구했다. 사건은 저우언라이의 중재로 풀렸지만 그는 장제스와 함께 난징으로 돌아가 이후 반세기 넘게 연금되었다. 1990년대 풀려나 하와이에서 100세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8–1931동북 변방군 사령관
  • 1936.12시안 사변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