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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당 지도 · 악시옹 프랑세즈 인물 1명

조건 모두 해제

샤를 모라스

Charles Maurras

악시옹 프랑세즈의 두뇌, 「통합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공화국 자체를 부정한 왕당파 이론가

「이것은 드레퓌스의 복수다!」, 종신형 선고를 듣고 리옹 법정에서, 1945년 1월 27일

프로방스 마르티그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청력을 잃은 시인이자 논객으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악시옹 프랑세즈를 반세기 동안 이끌었다. 그가 말한 「통합민족주의」는 왕정 복고와 의회 공화국의 폐기를 내걸고 유대인, 개신교도, 프리메이슨, 외국인을 프랑스를 안에서 좀먹는 「네 개의 연합국」으로 지목했다. 1926년 교황청이 악시옹 프랑세즈를 단죄했음에도 세력은 유지되었고, 1938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1934년 1월 스타비스키 사건 내내 그의 신문은 「도둑들」을 날마다 지목했고 2월 6일 아침 지면은 저녁에 의사당 앞으로 나오라고 독자들에게 호소했다. 1940년 페탱의 집권을 「신의 뜻밖의 선물」이라 부르며 비시를 지지했고, 점령기 내내 저항 세력과 유대인을 지면에서 고발했다. 1945년 1월 대적 협력 혐의로 종신형과 공민권 박탈을 선고받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868–1890마르티그 출생, 청력을 잃고 파리에서 문필 활동 시작
  • 1899–1908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악시옹 프랑세즈에 합류, 1908년 일간지 창간
  • 1908–1939「통합민족주의」의 이론가로 프랑스 극우 전체에 영향
  • 1926교황청이 악시옹 프랑세즈를 단죄
  • 1934.01–02스타비스키 사건 지면 공세, 2월 6일 시위 호소
  • 1938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선출
  • 1940–1944비시 지지, 저항 세력과 유대인을 지면에서 고발
  • 1945.01대적 협력으로 종신형과 공민권 박탈 선고
  • 1952병으로 석방된 해에 투르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