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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정 · 프랑스 왕정 인물 2명

루이 16세

Louis XVI
정부·행정 프랑스 왕정 프랑스 프랑스 1754–1793 ✕ 처형

혁명으로 폐위되고 재판받은 프랑스 국왕

국민공회는 1792년 12월 3일 루이 16세를 직접 재판하기로 결정했고, 반역죄 유죄 표결 끝에 1793년 1월 21일 그를 단두대로 처형했다.

1774년 즉위한 프랑스 국왕으로 재정 위기 속에서 1789년 삼부회를 소집했다. 1791년 헌법을 받아들였지만 바렌 도주와 대외전쟁 속에서 왕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1792년 왕권이 정지되고 국민공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1793년 1월 처형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774–1792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해 1792년 9월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재위했다.
  • 1789재정 위기 속에서 삼부회를 소집했고, 바스티유 함락 뒤 국민의회의 입법 권한을 인정했다.
  • 17916월 바렌 도주가 실패했고, 같은 해 9월 제정된 헌법을 받아들여 입헌군주제가 선포됐다.
  • 17928월 10일 봉기로 체포되어 탕플 감옥에 갇혔고, 9월 21일 국민공회가 왕정을 폐지했다.
  • 1792–1793국민공회가 12월 3일 그를 재판하기로 결정했고, 12월 11일부터 재판이 열려 반역죄 유죄가 선고됐다.
  • 17931월 21일 파리 혁명 광장에서 단두대로 처형됐다.

샤를 10세

Charles Philippe, comte d’Artois
정부·행정 프랑스 왕정 프랑스 프랑스 1757–1836 ○ 망명 중 사망

혁명기 망명왕당파를 이끈 아르투아 백작

1825년 랭스 대관식에서 성왕(聖王) 치유 의식까지 되살리며 왕권의 신성을 내세웠지만, 1830년 7월 칙령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검열하자 파리 시민이 봉기해 8월 2일 퇴위했다.

루이 16세의 동생 아르투아 백작으로 1789년 바스티유 함락 직후 망명했다. 국외에서 왕정복고를 추진하고 망명귀족 세력의 정치적 구심이 됐다. 부르봉 왕정복고 뒤 1824년 샤를 10세로 즉위했으나 1830년 7월혁명으로 퇴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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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65아버지 도팽 루이 사망
  • 1773사부아의 마리 테레즈와 결혼
  • 17897월 17일, 바스티유 함락 사흘 뒤 출국
  • 1791–1792트리어 선제후국에 망명 궁정을 두고 반혁명 침공을 준비
  • 1814왕국 총독 대리로서 왕정복고를 주도
  • 1824–1830프랑스 국왕. 1825년 랭스에서 대관식
  • 18307월 칙령 발표, 8월 2일 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