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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물 2명

우 딴

ဦးသန့်
외교·국제활동 유엔 버마 버마족 1909–1974 ○ 자연사

초강대국의 핵 대치를 중재한 조용한 외교관

“어떤 역사라도 살아남는다면, 인류 문명의 종말을 함께 초래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 딴은 버마의 교사와 관료 출신 외교관으로, 탈식민화와 국제 협상이 중심이 된 냉전기의 유엔을 이끈 제3대 사무총장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는 존 F. 케네디니키타 흐루쇼프에게 호소와 제안을 보내 소련 선박의 항로 전환과 쿠바 미사일 철수를 연결하는 출구를 제시했고, 이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와 검증 문제를 논의했다. 그의 중재는 핵전쟁의 위험을 낮췄지만, 유엔의 조용한 외교는 초강대국 중심의 위기 서술에서 오래도록 과소평가되었다. 그는 콩고 평화유지 작전과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협상도 추진하며 국제기구의 도덕적 책임과 강대국 정치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8–1931판타나우 국립고등학교 교사·교장
  • 1948버마 방송국 국장
  • 1951–1957버마 총리실 비서
  • 1955반둥 회의 사무국장
  • 1957–1961유엔 주재 버마 상임대표
  • 1961유엔 콩고위원회 의장
  • 1961–1971유엔 사무총장
  • 1971–1974애들라이 스티븐슨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외교·국제활동 유엔 에콰도르 칠레계 1935–2014 ○ 급사

6년의 제네바 왕복으로 소련군 철수를 틀 지운 에콰도르 출신 유엔 외교관

고르바초프가 철수 의사를 굳힌 것은 스팅어 미사일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와 외교 덕분'이라고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단언했다.

코르도베스는 에콰도르의 외교관이자 유엔 사무차장으로, 1982년부터 6년간 데 쿠엘랴르 사무총장의 개인대표로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간 제네바 협상을 중재했다. 라울 프레비시와 함께 UNCTAD 창설에 참여했고, 유엔 내에서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까지 오르며 이란 인질 위기, 이란-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분쟁 등 굵직한 현안을 두루 다뤘다. 1988년 4월 제네바 합의 서명을 이끌어내 소련군 철수의 외교적 틀을 완성했으며, 이후 에콰도르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5.11.03키토 출생
  • 1962칠레대학교 법학 학위 취득, 변호사
  • 1963유엔 입직, 라울 프레비시와 UNCTAD 창설 참여
  • 1978유엔 경제사회담당 사무차장보
  • 1981–1988유엔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 아프가니스탄 담당 사무총장 개인대표
  • 1988.04.14제네바 합의 서명 중재, 소련군 철수 틀 마련
  • 1988–1992에콰도르 외무장관
  • 2005–2007유엔 주재 에콰도르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