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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노동자당 인물 4명

조건 모두 해제

안토닌 야노우셰크

Antonín Janoušek
헝가리 공산주의자당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877–1941 ○ 자연사

1919년 슬로바키아 평의회 공화국의 혁명통치평의회 의장을 지낸 체코인 언론인

님부르크에서 태어난 기계 조립공으로, 1895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06년부터 노동자 언론인이자 노동단체 간부로 일했다. 1918년부터 부다페스트에 살며 클라드노의 신문 『스보보다』의 통신원으로 일했고, 1919년 헝가리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체코·슬로바키아 분과를 이끌었다. 헝가리 붉은군대가 슬로바키아로 진격한 뒤 프레쇼우에서 슬로바키아 평의회 공화국을 선포하고 혁명통치평의회 의장이 되었으나, 이 국가는 7월 7일 체코슬로바키아군이 헝가리군을 밀어내면서 사라졌다. 평의회 공화국 붕괴 뒤 헝가리에서 투옥되었다가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에 넘겨졌다. 1922년 소련 시민권을 받고 소련으로 가서 국제노동자구호회 일을 맡았다. 1941년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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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5사회민주당 입당
  • 1906노동자 언론인·노동단체 간부
  • 1919헝가리 공산당 중앙위원회 체코·슬로바키아 분과장
  • 1919슬로바키아 평의회 공화국 혁명통치평의회 의장
  • 1922–1941소련 이주, 국제노동자구호회

안토닌 자포토츠키

Antonín Zápotocký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체코 1884–1957 ○ 자연사

노동조합 중앙평의회를 이끌고 1948년 2월 사건 뒤 총리, 1953년 대통령이 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자

공산당 조직과 노동조합을 구축하고, 1948년 정권 장악 뒤 총리, 고트발트 사후 1953년 대통령이 되어 1957년까지 재임했다.

보헤미아 자콜라니 출신의 석공으로 사회민주당을 거쳐 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다. 독일 점령기에 체포되어 판크라츠 감옥과 드레스덴을 거쳐 1940년부터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갇혔다. 해방 뒤 귀국해 노동조합 중앙평의회 의장과 공산당 간부회 위원이 되었고, 1946년 제헌의회 의장을 잠시 지냈다. 1948년 6월 대통령이 된 고트발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고, 1953년 고트발트가 죽자 대통령이 되었다. 보다 온건한 통치를 원했으나 노보트니에게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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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창립에 참여해 당 언론·노동조합·협동조합 조직에 힘썼다.
  • 1929–1939공산주의 노동조합 총서기를 지냈다.
  • 1945전후 결성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의장이 되었다.
  • 1948공산당 정권 장악 뒤 정치서기국 위원과 체코슬로바키아 총리가 되었다.
  • 1953–1957고트발트 사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즈데네크 피를링게르

Zdeněk Fierlinger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체코 1891–1976 ○ 자연사

해방 뒤 첫 총리를 지내고 1948년 2월 공산당 편에 서서 사회민주당을 공산당에 합친 친소 사회민주주의자

1948년 2월 공산당 쿠데타 때 사회민주당 지도부에서 공산당과의 통합을 추진해, 그해 말 두 당의 합병으로 당을 일당 지배 체제에 편입시켰다.

올로모우츠 출신의 외교관으로 네덜란드·루마니아·미국·스위스·오스트리아 대사를 거쳐 전쟁 중 모스크바 주재 망명정부 대사를 지내며 소련과 가까워졌다. 1945년 4월 코시체 정부의 총리가 되어 1946년 6월까지 민족전선 정부를 이끌었다. 사회민주당 지도자로서 공산당과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했고, 1948년 2월 비공산당 장관들이 사임할 때 자리를 지키며 공개적으로 공산당을 지지했다. 쿠데타 뒤 사회민주당을 공산당에 합쳤고 공산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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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1946코시체 정부와 해방 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총리를 지냈다.
  • 1946–1947체코 사회민주당 의장을 지냈다. 1947년 11월 공산당에 지나치게 복종한다는 당내 비판으로 지도자 자리에서 밀려났다.
  • 19482월 쿠데타 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합당을 주도하고 공산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 1948–1953부총리를 지냈다.
  • 1951–1953종교사무 국가국 장관을 지냈다.
  • 1953–1964국민의회 의장을 지냈다.
  • 1968프라하의 봄 개혁을 지지했으며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했다.

이르지 하예크

Jiří Hájek
체코슬로바키아 반체제 인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13–1993 ○ 자연사

국제법의 언어를 시민권 투쟁으로 돌린 외교관

1968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의 침공을 “점령”이라고 규정하며 항의했다.

이르지 하예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프라하의 봄 개혁과 그 좌절을 모두 경험했다. 1968년 소련 주도의 침공을 유엔에서 점령이라고 규정하며 항의한 뒤 관직과 공산당 지위를 잃었고, 국제적 약속이 국내 권력보다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1977년 바츨라프 하벨, 얀 파토치카와 함께 샤르타 77의 첫 대변인이 되어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인권 조항을 시민적 책임의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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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45나치 독일에 투옥
  • 1945–1948체코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 의원·노동운동 간부
  • 1950–1953정치·경제과학대학 총장
  • 1955–1958영국 주재 대사
  • 1958–1965외무차관·유엔 주재 대표
  • 1965–1968교육부 장관·외무부 장관
  • 1977–1979샤르타 77 첫 대변인
  • 1988–1990체코슬로바키아 헬싱키위원회 창립자·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