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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사회민주당 인물 9명

조건 모두 해제

페이들 줄러

Peidl Gyula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1873–1943 ○ 자연사

평의회 공화국 붕괴 뒤 엿새 동안 「노동조합 정부」를 이끈 인쇄공 출신 사회민주당 지도자

죄르 주 러버즈드의 정육점 집안에서 태어난 식자공으로, 인쇄노동자 조합과 소비협동조합을 이끌고 1909년 사회민주당 지도부에 들어갔다. 1919년 베린케이 정부의 노동·복지장관을 지냈고, 공산당과의 합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선포에 반대해 당직에서 물러났다. 1919년 8월 1일 평의회 정부가 사퇴하자 총리가 되어 평의회 공화국을 폐지하고 그 법령을 철회했지만, 8월 6일 루마니아군의 지원을 받은 프리드리히 이슈트반에게 쫓겨났다. 그 뒤 사회민주당 재건에 참여했고 1922~1931년 국회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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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1918인쇄노동자 주간지 『티포그라피아』 편집
  • 1909사회민주당 지도부
  • 1919베린케이 정부 노동·복지장관
  • 1919「노동조합 정부」 총리
  • 1922–1931국회의원

런들레르 예뇌

Landler Jenő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유대계) 1875–1928 ○ 심부전

평의회 공화국의 내무 인민위원이자 붉은군대 지휘관을 지낸 노동 변호사 출신 공산주의자

겔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변호사로, 철도노동자 연맹의 법률고문으로서 1904년 전국 철도 파업 지도자들을 변호했다. 1908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점차 좌경화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19년 3월 감옥에서 쿤 벨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도입에 합의했고, 평의회 공화국에서 내무·상업 인민위원을 지낸 뒤 붉은군대 제3군단장으로 북부 원정을 지휘했으며 7월에는 총사령관이 되었다. 붕괴 뒤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망명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1928년 칸에서 죽었고 유골은 크렘린 벽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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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철도 파업 지도자 변호
  • 1908사회민주당 입당
  • 1919내무·상업 인민위원
  • 1919붉은군대 제3군단장, 7월 총사령관
  • 1919–1928오스트리아 망명, 망명 공산주의 운동 지도

거르버이 샨도르

Garbai Sándor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1879–1947 ○ 자연사

평의회 공화국 혁명통치평의회 의장을 지낸 건설노동자 출신 사회민주주의자

키슈쿤할러스의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 벽돌공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들어섰고, 1901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건설노동자 조합과 노동자보험기금을 이끌었다. 1919년 3월 21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합당을 지지했고, 혁명통치평의회 의장으로서 평의회 공화국의 법적 국가원수 겸 총리가 되었으나 실권은 쿤 벨러에게 있었다. 붕괴 뒤 페이들 정부의 교육장관을 지냈고, 루마니아군에 붙잡혔다가 클루지에서 탈출해 브라티슬라바, 빈,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전후 귀국이 허락되지 않은 채 1947년 파리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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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사회민주당 입당
  • 1903건설노동자 전국연맹 의장
  • 1908노동자보험기금 의장
  • 1919혁명통치평의회 의장
  • 1919페이들 정부 교육장관
  • 1920–1947망명(브라티슬라바·빈·파리)

뵘 빌모시

Böhm Vilmos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유대계) 1880–1949 ○ 자연사

평의회 공화국의 국방 인민위원이자 붉은군대 총사령관을 지낸 사회민주당 지도자

부다페스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기계공으로, 금속노동자 조합 서기를 거쳐 사회민주당 지도부에 들어갔다. 1919년 1월 베린케이 정부의 국방장관이 되었고, 공산당과의 합당 협상에 참여했다. 평의회 공화국에서 국방 인민위원과 붉은군대 총사령관을 지냈고, 7월 빈 주재 공사로 가서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위임으로 협상국 사절단과 평의회 정부의 퇴진을 합의했다. 망명 뒤 빈, 체코슬로바키아, 스웨덴에서 살았고, 1946~1948년 스웨덴 주재 헝가리 공사를 지내다 사회민주당이 공산당에 통합되자 사임했다. 1949년 스톡홀름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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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1노동조합 평의회 위원
  • 1919베린케이 정부 국방장관
  • 1919국방 인민위원, 붉은군대 총사령관
  • 1919빈 주재 공사
  • 1946–1948스웨덴 주재 헝가리 공사

서무엘리 티보르

Szamuely Tibor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유대계) 1890–1919 ✕ 자살(이설 있음)

평의회 공화국의 군사 인민위원 대리로 적색 테러와 레닌 소년단을 이끈 공산주의자

니레지하저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언론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다. 10월 혁명 뒤 모스크바에서 쿤 벨러와 함께 헝가리인 포로 공산주의자들을 조직했고, 1918년 12월 독일 스파르타쿠스단 창립에도 참여했다. 평의회 공화국에서 군사 인민위원 대리와 교육 인민위원을 지냈으며, 그의 무장대는 레닌 소년단으로 불렸다. 반혁명 혐의자를 재판 없이 처형한 적색 테러의 중심인물로, 5월 말에는 모스크바로 날아가 레닌을 만났다. 1919년 8월 2일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다 붙잡혀 죽었는데, 당국은 자살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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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러시아군 포로
  • 1918모스크바에서 헝가리인 포로 공산주의 그룹 조직
  • 1918스파르타쿠스단 창립 참여
  • 1919헝가리 공산주의자당 중앙위원
  • 1919군사 인민위원 대리, 교육 인민위원

라코시 마차시

Rákosi Mátyás
헝가리 공산주의자당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1892–1971 ○ 사망

헝가리 스탈린화의 설계자, '살라미 전술'로 일당독재를 구축

1940년 10월 30일 석방되어 11월 6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라코시는 다음 날 붉은광장 열병식에서 레닌 묘단 위 스탈린 곁에 섰다.

헝가리 공산당 서기장(1945–1948)과 노동자당(MDP) 서기장·제1서기(1948–1956)로 1948년부터 1956년까지 헝가리를 지배했다. 1925년 체포되어 1926년 8.5년형과 1935년 종신형을 받고 15년 넘게 복역한 뒤 1940년 11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1945년 귀국 뒤 '살라미 전술'로 민주 정당들을 해체하고 사회민주당을 강제 합병해 일당 지배를 세웠으며, 대량 투옥과 강제노동수용소, 러이크 재판의 책임을 졌다. 1953년 총리직을 너지 임레에게 넘긴 뒤에도 개혁을 방해하다 1956년 7월 18일 해임되었고, 1962년 제명 뒤 크라스노다르·토크마크·아르자마스를 거쳐 1971년 2월 5일 고리키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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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통상 인민위원, 적위대·적군 지휘
  • 1921–1924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서기
  • 1925–1940호르티 정권 아래 투옥 (8.5년형 이후 종신형, 1940년 석방)
  • 1940–1945모스크바에서 헝가리 공산당 해외국 지도
  • 1945–1948헝가리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48–1956헝가리 노동인민당(MDP) 중앙위원회 제1서기 (1953년까지 서기장)
  • 1952–1953헝가리 인민공화국 각료회의 의장
  • 1956–1971소련 강제 망명 (키르기스스탄, 아르자마스, 고리키)

너지 임레

Nagy Imre

13일의 총리

1958년 6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을 거부하며 말했다. "유일한 위안은 언젠가 헝가리 민족과 국제 노동계급이 나에 대한 이 중대한 혐의를 벗겨 주리라는 확신이다."

헝가리의 공산주의자.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군 포로로 볼셰비키에 가담했고, 모스크바 망명기에 농업 문제 전문가가 되었다. 1945년 농업장관으로 토지개혁을 집행했으나 1948~49년 집단화 속도를 두고 라코시·게뢰와 맞섰다가 밀려났다. 1953년 7월 총리가 되어 '새 노선'으로 투자 축소, 개인 농가 보장, 억류수용소 폐쇄를 추진했으나 1955년 해임되었다. 1956년 혁명 때 총리로 복귀해 다당제·중립을 선언했고, 1958년 비공개 재판 뒤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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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1921러시아군 포로, 적군 가담, 볼셰비키 입당
  • 1930–1944모스크바 망명, 코민테른 농업 연구
  • 1945–1946농업장관, 토지개혁 집행
  • 1953–1955총리, 「새 노선」: 수용소 해산, 농민 부담 경감
  • 1955실각·출당
  • 1956.10–11봉기의 총리, 다당제·중립 선언
  • 1958비밀 재판 후 처형
  • 1989영웅광장 재매장

도비 이슈트반

Dobi István
헝가리 공산주의 헝가리 헝가리 1898–1968 ○ 자연사

소농당 출신의 명목상 국가원수

1953년 6월 소련 지도부는 실권이 거의 없던 도비를 헝가리 대표단에 포함했다. 모스크바의 초청은 그의 국가원수직이나 소농당 경력에 대한 오해, 또는 국가 간 회담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쇠니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년만 마치고 날품팔이로 일했다. 1919년 평의회 공화국을 지지했고 농업노동자 운동에 참여했다. 소농당 좌파 지도자로 공산당과 손잡아 1948~52년 총리, 1952~67년 대통령평의회 의장으로 명목상 국가원수를 지냈다. 1953년 6월 크렘린 회담에 초청되었지만, 라이너는 소련 지도부가 그의 실권이나 농민 사이의 권위를 잘못 짐작한 탓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협동조합의 강제 해산을 두려워해 몰로토프의 해산 제안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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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1952헝가리 총리를 지냈다.
  • 1952–1967헝가리 인민공화국 대통령평의회 의장으로 국가원수를 지냈다.

녜르시 레죄

Nyers Rezső

사회주의 체제의 시장개혁을 밀어붙인 당 지도자

1989년 모스크바 협상에서 그는 당의 목표를 “민주적 사회주의, 자치, 의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라고 제시했다.

녜르시 레죄는 헝가리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권 개혁 정치가로, 계획경제를 사회적 통제와 경제적 효율성의 결합으로 바꾸려 했다. 그는 1968년 신경제메커니즘을 이끈 뒤 정통파의 반발로 영향력을 잃었지만, 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안고 1989년 정치 전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1989년 6월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의장으로 선출되어 집단 지도체제를 이끌었고, 10월 창당된 헝가리 사회당의 초대 의장이 되었다. 그의 경력은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시장기제를 도입하려 한 시도가 당의 해체와 다당제 전환으로 이어진 역사적 긴장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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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헝가리 사회민주당 입당
  • 1956식품산업부 장관
  • 1960–1962재무부 장관
  • 1968신경제메커니즘 개혁 설계
  • 1974–1981헝가리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소장·고문
  • 1987–1988국회 개혁위원회 위원장, 국무상
  • 1989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의장, 헝가리 사회당 초대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