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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당 지도 · 러시아 제국 인물 2명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Г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
정치·당 지도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69–1916 ✕ 살해

제국의 침실까지 들어온 시베리아의 「성자」

1905년 11월 1일, 니콜라이 2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4시에 세르기옙카로 갔다. 밀리차 및 스타나와 차를 마셨다. 하느님의 사람 — 토볼스크 출신 그리고리와 알게 되었다."

시베리아 농민 출신 신비가. 황태자의 혈우병을 진정시켜 황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고, 전시에 장관 인사까지 좌우했다. 1916년 12월 군주제를 구하려던 귀족들에게 살해되었으며, 왕조는 두 달 뒤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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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s시베리아 순례자에서 페테르부르크 살롱으로
  • 1905–07황실에 소개되어 황태자의 발작을 진정
  • 1911–16인사 개입 스캔들, 전시의 「장관 도약」
  • 1916.12유수포프 저택에서 살해

바실리 비탈리예비치 슐긴

Василий Витальевич Шульгин
정치·당 지도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무국적) 러시아 1878–1976 ○ 자연사

차르의 퇴위를 직접 받아내고 백군 이데올로그가 된 두마의 군주제 보수주의자

프스코프 역의 차르 전용 열차에서, 나흘째 면도도 씻지도 않은 슐긴에게 황제의 측근이 말했다: '이 피자크 차림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오.'

바실리 슐긴은 러시아 제국 말기 두마(II·III·IV대)의 핵심 보수정치인이자 《키예블랴닌》 편집자로, 강력한 러시아 민족주의와 입헌군주제를 주창했다. 1917년 3월 알렉산드르 구치코프와 함께 프스코프로 가 니콜라이 2세의 퇴위를 직접 받아냈으나, 혁명의 파국을 막지는 못했다. 남북전쟁기 백군의 이데올로그로 활동하고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했으며, 1944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블라디미르 중앙교도소에서 12년간 수감되었다. 1956년 사면 후 소련에 남아 회고록을 집필하고 1965년 다큐멘터리 《역사의 심판》에 출연하여, 패배했으나 굴복하지 않은 구체제의 산 증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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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917II·III·IV대 두마 의원 (볼린현)
  • 1913–1917《키예블랴닌》 편집자
  • 1915진보블록 공동창설, '진보적 민족주의자' 그룹 지도
  • 1917.3구치코프와 프스코프에서 니콜라이 2세 퇴위 접수
  • 1918–1920백군 운동 선전가·이데올로그, 《로시야》·《벨리카야 로시야》 편집
  • 1920–1944유고슬라비아 망명, 회고록 《날들》·《삼도시》 집필
  • 1947–1956블라디미르 중앙교도소 25년형 수감 (12년 복역)
  • 1956–1976사면 후 블라디미르 거주, 《레닌의 실험》 집필, 영화 《역사의 심판》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