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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당 지도 · 체코슬로바키아 국가기관 인물 2명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다 프라하의 봄 개혁운동에 의해 축출된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

1965년 메이데이 집회 직후 즉석 인터뷰에서 "고기가 곧 나올 겁니다!"(Maso bude vbrzku!)라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그 '곧'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디냐"고 물으며 온 나라가 웃었다.

1921년 KSČ 창립 당원이자 자물쇠공 출신으로, 슬란스키 숙청 과정에서 당 기구를 타고 부상했으며, 고트발트 사후 제1서기(1953–1968)와 대통령(1957–1968)을 겸직하며 15년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치했다.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며 중앙계획·검열을 강화하고 1950년대 정치재판 청산을 거부했으나, 경제 침체와 슬로바키아의 불만이 누적되며 정권 기반이 잠식되었다. 1968년 1월 두브체크에게 당직을 내주며 강제 사임함으로써 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는 곧바로 프라하의 봄을 촉발했다. 1971년 정상화 국면에서 중앙위원으로 재선되었으나 실질적 영향력은 없었고, 1975년 프라하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 당원으로 입당
  • 1937–1938KSČ 호도닌 지역위원회 서기
  • 1941–1945나치 점령 하 지하활동으로 체포,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수감
  • 1945–1951KSČ 프라하 시당 제1서기
  • 1951–1953KSČ 정치서기국 위원 겸 부총리
  • 1953–1968KSČ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57–196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71정상화 국면 KSČ 중앙위원 재선

요세프 스므르콥스키

Josef Smrkovský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프라하의 봄 최고 개혁파가 된 사람

모스크바 의정서 서명 후 귀국한 스므르콥스키는 동료 지도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 앞에 나서 말했다. 브레즈네프가 그의 연설만을 문제 삼았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공산주의 정치인으로, 프라하의 봄에서 두브체크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맹이었다. 나치 점령기 체코민족평의회 부의장으로 프라하 봉기를 이끌었고, 1948년 2월 쿠데타에서 인민민병대를 지휘했으며, 1951년 슬란스키 사건 연루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1963년 복권되어 1968년 국민의회 의장이 되었다. 1968년 1월 『루데 프라보』 인터뷰로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고, 8월 침공 후 모스크바로 끌려가 의정서 서명을 강요당했으며, 귀환 후 후사크에 의해 축출되어 감시 속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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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KSČ 입당, 붉은노조 청년서기
  • 1944–45지하 중앙위원, 체코민족평의회 부의장으로 프라하 봉기 주도
  • 1946–48국민의회 의원, 인민민병대 부사령관으로 2월 쿠데타 지원
  • 1951–55슬란스키 사건 연루, 종신형 → 1955년 석방
  • 1955–63JZD 파블로비체 의장으로 복무
  • 1963–67복권, 중앙위원 → 임업·수자원부 장관
  • 1968.4–1969.1국민의회 의장, 두브체크의 핵심 개혁 동맹
  • 1968.8–1970모스크바 연행, 의정서 서명 → 후사크에 의해 축출·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