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외교·국제활동 · 핀란드 국가기관 인물 3명

조건 모두 해제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Juho Kusti Paasikivi

겨울전쟁 직전 모스크바 협상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은 핀란드의 현실주의 외교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스탈린에게서 빌려와 평생의 외교 원칙으로 삼은 말.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 시절부터 시작해 핀란드 독립·내전·겨울전쟁·계속전쟁·냉전을 모두 통과한 정치가다. 독립 직후인 1918년 첫 총리를 지내며 친독일·군주제 노선을 밀었고,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했다. 1939년 가을 스톡홀름 주재 공사에서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몰로토프와 직접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전쟁이 터지자 무임소장관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었다. 1946년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현실 인정이 지혜의 시작'이라며 소련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추구했고, 이 파시키비 독트린은 냉전기 핀란드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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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913핀란드 의회 의원 (핀란드당)
  • 1908–1909원로원 재무분과장
  • 1918.5–11핀란드 총리
  • 1914–1934KOP 은행 총재
  • 1936–1939주스웨덴 공사
  • 1940–1941주모스크바 공사
  • 1944–1946핀란드 총리
  • 1946–1956핀란드 대통령

아르노 사카리 아르마스 위리외코스키넨

Aarno Armas Sakari Yrjö-Koskinen

전쟁 직전 모스크바의 핀란드 외교관

1939년 11월 26일 저녁, 그는 몰로토프의 마이닐라 포격 항의각서를 받고 즉시 헬싱키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아르노 위리외코스키넨은 독립 핀란드의 법률가이자 외교관으로, 외무부의 정치 업무와 대외 협상을 맡았다. 모스크바 공사로서 그는 1939년 11월 마이닐라 포격을 둘러싼 몰로토프의 항의와 핀란드의 회답을 전달하며 전쟁 직전 외교의 최전선에 섰다. 그는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에도 참여했지만, 협상으로 안보 갈등을 봉합하려던 외교는 겨울전쟁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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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철학 칸디다트 학위
  • 1913법학 칸디다트 학위
  • 1920파리 핀란드 공사관 서기관
  • 1924외무부 정치국장
  • 1931외무장관, 모스크바 공사
  • 1932소련·핀란드 불가침조약 서명
  • 1939마이닐라 외교 교환을 담당
  • 1940앙카라 공사관장

스탈린의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의 타협론을 묵살한 겨울전쟁 직전의 핀란드 외무장관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 파시키비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에르코가 남긴 훈시.

헬싱긴 사노마트를 북유럽 최대 일간지로 키운 언론 재벌로, 1938년 12월 외무장관에 취임하여 소련과의 협상 전권을 장악했다. 모스크바로 떠나는 파시키비에게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고 훈시할 만큼 확신에 찬 강경파였으며, 스탈린의 영토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 원수의 타협 권고를 묵살했다. 그가 소유한 헬싱긴 사노마트가 여론을 타협 불가 방향으로 이끈 가운데 협상은 결렬되었고, 겨울전쟁 발발 후 파시키비는 이를 "에르코의 전쟁"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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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백위대 장교로 핀란드 내전 참전
  • 1919–1927외무부 파리·탈린·런던 근무
  • 1927–1938헬싱긴 사노마트 주필 겸 사노마 Oy CEO
  • 1932무임소장관 겸 내무차관 (수닐라 2차 내각)
  • 1933–1936국회의원 (국민진보당)
  • 1938–1939외무장관 (카얀데르 3차 내각)
  • 1939–1940주스톡홀름 대리공사
  • 1945–1965사노마 Oy CEO·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