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9일 제국의회 창문에서 공화국을 선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첫 총리가 된 SPD 정치가
1918년 11월 9일, 제국의회 창문에서 독일을 공화국으로 선포했다.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 서명을 거부하며 총리직을 사임했다.
카셀의 인쇄공 출신으로 SPD 언론인을 거쳐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고, 1918년 10월 막스 폰 바덴 내각에 무임소 장관으로 들어갔다. 11월 9일 리프크네히트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먼저 제국의회 창문에서 공화국을 선포해 에베르트의 노여움을 샀다. 인민대표평의회 위원을 거쳐 1919년 2월 총리가 되었으나, 베르사유 조약 수락을 거부하며 6월 사임했다. 1920년대 카셀 시장을 지냈고 1922년 극우의 청산가리 테러를 피했다. 1933년 망명해 코펜하겐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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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제국의회에 진출해 사회민주당(SPD) 의원단 지도부에서 활동했다.
- 1917SPD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 19186월 제국의회 부의장이 되었고, 10월 막스 폰 바덴 내각의 사회민주당 장관이 되었다. 11월 9일 제국의회 창문에서 공화국을 선포했으며, 혁명기 과도정부인 인민대표평의회에 참여했다.
- 19192월 13일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 수반에 임명되었다. 6월 20일 베르사유 조약 서명을 거부하고 내각과 함께 사임했다.
1918년 휴전을 요청하고 황제의 퇴위를 발표한 뒤 재상직을 에베르트에게 넘긴 독일 제국 마지막 재상
1918년 11월 9일, 베를린의 혁명적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막스 폰 바덴은 황제의 퇴위를 발표하고 재상직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게 넘겼다.
바덴 대공가의 후계자로 태어나 프로이센 군 장교를 지냈고, 전쟁 중에는 적십자와 전쟁 포로 구호 활동으로 온건파의 신망을 얻었다. 1918년 10월 3일 재상이 되어 SPD를 처음 입각시키고 연합국에 휴전을 요청했으며, 제국을 의회 책임 군주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을 이끌었다. 11월 9일 베를린이 시위대로 가득 차자 황제의 동의 없이 퇴위를 발표하고 재상직을 에베르트에게 넘긴 뒤 물러났다. 1920년 쿠르트 한과 함께 잘렘 기숙학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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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10.3독일 제국 재상에 취임해 SPD와 다수파 정당 인사들을 내각에 포함시켰다.
- 1918.10연합국에 휴전을 요청하고 제국 헌법 개정을 추진해 의회 책임 정부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 1918.11.9황제의 퇴위를 발표한 뒤 재상직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게 넘겼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민주당 정치인이자 두 차례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1893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당 지도부에 올랐고,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외무장관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다. 1920년 처음 총리가 되어 좌파 봉기를 진압하는 한편 장애인 고용, 초등교육, 실업급여와 노동자 사회보호를 확대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1928년 다시 총리가 되어 대연정을 이끌었으며, 대공황과 실업보험 재정 분담을 둘러싼 갈등 속에 연정이 붕괴하자 1930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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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3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 1916독일 제국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 1919–1920외무장관을 지내고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다.
- 1920총리로 재임했다.
- 1928–1930대연정 총리로 재임했다.
잠정 국가를 지속 질서로 만든 정치가
의회평의회 의장 아데나워는 분단된 독일의 기본법을 최종 헌법이 아닌 잠정적 합의로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콘라트 아데나워는 나치즘의 붕괴와 독일 분단 뒤 연방공화국의 틀을 세운 가톨릭 보수 정치가였다. 의회평의회 의장으로서 영구 헌법 대신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 둔 잠정적 기본법을 지지하면서 서부 점령지에 민주 제도를 마련했다. 초대 연방총리로는 서방 결속과 유럽 통합,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진했지만 반공 노선으로 냉전의 분단도 굳혔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잠정성을 내세운 국가 건설이 장기적 질서로 정착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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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9쾰른 부시장
- 1917–1933쾰른 시장
- 1921–1933프로이센 국가평의회 의장
- 1948–1949의회평의회 의장
- 1949–1963독일연방공화국 초대 연방총리
- 1951–1955연방 외무장관
- 1950–1966기독교민주연합 의장
분단 베를린의 목소리가 된 사회민주주의자
“세계의 민족들이여, 이 도시를 보십시오. 이 도시와 이 민족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에른스트 로이터는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오가며 20세기 유럽의 격변을 직접 겪은 독일 정치가였다. 나치의 박해와 터키 망명을 거친 뒤 베를린으로 돌아와 도시 행정과 사회민주주의를 결합한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베를린 봉쇄 때 그는 서베를린 시민의 결의를 국제사회에 호소했고, 분단된 도시를 자유와 자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의 경력은 혁명적 급진주의에서 민주적 지방정치로 이동한 한 세대의 긴장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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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독일 사회민주당 입당
- 1918–1919볼가 독일인 자치 소비에트 공화국 초대 의장
- 1921독일 공산당 베를린 지구 제1서기
- 1926–1931베를린 교통 담당 시의원
- 1931–1933마그데부르크 시장
- 1935–1946앙카라대학교 도시계획 강사·터키 정부 고문
- 1947베를린 시장 당선, 소련 점령당국의 승인 거부
- 1948–1953서베를린 시장, 1951년부터 통치시장
분단의 도시에서 화해의 정치를 만든 사회민주주의자
장벽이 세워진 뒤 그는 말했다. “장벽은 무너져야 하지만, 무너지기 전까지 도시는 살아가야 합니다.”
빌리 브란트는 나치 독재에 맞서 망명과 저항을 거친 독일 사회민주주의 정치가였다. 서베를린 시장으로서 장벽 건설 뒤 흔들린 도시의 사기를 지키고 서방의 책임을 촉구했으며, 장벽을 ‘수치의 장벽’이라 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방총리로서는 동방정책과 ‘접근을 통한 변화’를 추진해 냉전의 대립을 완화했고 197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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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1945나치 독재에 맞선 망명·저항 활동가
- 1948–1953베를린 주재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
- 1957–1966서베를린 정무시장
- 1964–1987독일 사회민주당 의장
- 1966–1969외무장관·부총리
- 1969–1974독일연방공화국 연방총리
- 1976–1992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
몰타 회담 직전 10개항 통일 계획으로 독일 문제의 주도권을 쥔 총리
1989년 11월 28일, 콜은 동맹국은 물론 자신의 외무장관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연방의회 연단에 섰다. 부시가 그의 10개항 계획 요약 편지를 받은 것은 콜이 이미 연설을 시작한 직후였다.
16년간 서독과 통일 독일의 총리를 지내며 유럽 통합과 독일 재통일을 이끈 기독교민주연합(CDU) 정치인. 1989년 11월 28일, 동맹국과도 협의 없이 독일 통일을 위한 「10개항 계획」을 연방의회에서 발표해 불과 며칠 후 열린 몰타 회담에서 독일 문제의 틀을 결정지었다.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을 재통일시켰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마스트리흐트 조약과 유로화 도입을 주도했다. 서독 체제의 동독 확장이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완수했으며, 16년 장기 집권 끝에 1998년 선거에서 패배한 뒤 CDU 비자금 스캔들로 당 명예의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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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라인란트팔츠 주의회 의원 (최연소)
- 1969–1976라인란트팔츠 주총리
- 1973–1998기독교민주연합(CDU) 당수
- 1976–1982연방의회 CDU/CSU 원내대표 (야당 지도자)
- 1982–1998독일연방공화국 총리
- 1989.11.28연방의회에서 독일 통일을 위한 「10개항 계획」 발표
- 1990.10.03독일 재통일
- 1998연방선거 패배, CDU 당수 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