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보안·정보·치안 · 독일 국가기관 인물 2명

조건 모두 해제

독일 사회민주당·독립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1918년 베를린 경찰청장을 지냈다

“내 직책은 혁명에서 받았으니, 혁명에 의해서만 내놓겠다.”

기계공 출신인 아이히호른은 사회민주당에서 일하다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으로 옮겼다. 1918년 11월 혁명 뒤 베를린 경찰청장이 되어 좌파 정치 세력에 우호적인 경찰 운영을 폈다. 프로이센 내각은 1919년 1월 4일 그를 해임하고 사회민주당원 오이겐 에른스트로 교체하려 했다. 이에 맞선 대중 시위와 총파업이 일어났고, 이어진 점거와 무장 충돌은 1월 봉기로 이어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893사회민주당 전임 간부가 되어 드레스덴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 1903–1911독일 제국의회 바덴 제9선거구 의원
  • 1908–1917베를린 사회민주당 언론국 책임자
  • 1917독립사회민주당에 가입하다
  • 1918–1919베를린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다
  • 1919–1920바이마르 국민의회 베를린 의원
  • 1920–1925독일 공산당에 가입하고 국가의회 의원으로 일하다
보안·정보·치안 독일 국가기관 독일 독일 1904–1942 ✕ 암살 공격 부상으로 사망

친위대 정보·경찰기관 수장으로 홀로코스트 실행을 지휘한 나치 관리다.

1942년 반제 회의에서 하이드리히는 유럽 유대인 살해를 위해 독일 국가기관들의 협력을 조율했다.

하이드리히는 1931년 친위대에 들어가 국가보안부(SD)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1936년에는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포괄한 보안경찰을 지휘했다. 1939년 제국보안본부(RSHA)가 설치되자 수장이 되어 보안경찰과 SD를 통합 지휘했고, 유대인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나치의 박해와 살해 정책을 실행하는 핵심 기관을 이끌었다. 1941년 총독 대리로 임명된 보헤미아·모라비아에서 저항 세력을 처형하고 유대인 게토화와 강제이송을 추진했다. 1942년 1월 반제 회의를 주재해 유럽 유대인 살해를 위한 부처 간 협력을 조율했으며, 5월 체코 저항요원의 공격으로 부상한 뒤 6월 4일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1–1942친위대 국가보안부(SD) 수장
  • 1936–1942보안경찰 수장, 1936–1939년 보안경찰 수석사무국장
  • 1939–1942제국보안본부(RSHA) 수장
  • 1941–1942보헤미아·모라비아 총독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