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외교·국제활동 · 영국 국가기관 인물 3명

조건 모두 해제

윌리엄 시즈

William Seeds

협상의 한복판에서 소련을 오판한 영국 외교관

시즈는 몰로토프를 두고 “농민 유형의 어리석은 교활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윌리엄 시즈는 영국 외교관으로, 여러 유럽·아메리카 공관을 거쳐 1939년 모스크바 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영불소 상호원조 조약을 만들려는 협상에서 영국을 대표했지만, 서방의 지연과 소련의 안보 요구가 충돌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읽어 내지는 못했다. 리트비노프의 교체 뒤 몰로토프를 경멸적으로 평가한 그의 보고는 협상 실패를 바라본 당대 영국 외교의 시야와 한계를 함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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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1907워싱턴 주재 영국 외교공관
  • 1908–1910베이징 주재 영국 공사관
  • 1913–1919리스본 총영사관 대리공사·총영사
  • 1928–1930라인란트 영국 고등판무관
  • 1930–1935브라질 주재 영국 대사
  • 1939–1940소련 주재 영국 대사, 모스크바 삼국동맹 협상 대표
  • 1973런던에서 사망

토머스 브리멜로

Thomas Brimelow

핵무기 외교의 실무 설계자

키신저와 함께 소련의 초안을 동맹 의무를 보존하는 반대안으로 돌려세웠다.

토머스 브리멜로는 영국 외교관이자 소련 문제 전문가로, 냉전의 동맹정치와 군비외교 사이에서 활동했다. 그는 1973년 핵전쟁 방지 협정 협상에서 헨리 키신저와 초안을 함께 다듬어, 소련의 무조건적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 구상을 동맹 의무와 제3국을 포함한 보다 제한적인 문안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 역할은 영국 외무부 전문성이 미국의 대소 전략에 직접 결합한 사례였지만, 동시에 긴장 완화의 언어가 핵억지와 세력정치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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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외무부 입부
  • 1966–1969주폴란드 영국 대사
  • 1969–1973외무부 차관보급, 상임차관 대리
  • 1972키신저와 핵전쟁 방지 협정 반대제안 공동 작성
  • 1973–1975외무부 상임차관
  • 1976브리멜로 남작 작위 수여
  • 1977–1978유럽의회 의원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주소 대사에서 『아프간츠이』의 저자까지, 소련을 가장 깊이 이해한 영국 외교관

「우리가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민스 파이를 먹고 있을 때, 고르바초프가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이 소련 대통령직을 사임했다고 세계에 알렸다」, 1991년 크리스마스 모스크바에서.

영국 외교관이자 작가로,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붕괴의 결정적 시기인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주소 영국 대사를 지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개인적 신뢰를 쌓으며 1991년 8월 쿠데타와 옐친의 부상, 소련 해체를 현장에서 목격했고, 이후 존 메이저 총리의 외교정책 보좌관과 합동정보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2011년 출간한 『아프간츠이』(Afgantsy)는 소련군이 전장에서 패배하지 않고 질서 있게 철수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정보적 실패였다고 주장해 '소련판 베트남'이라는 서방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대표적 수정주의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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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1952군 정보부 복무, 비엔나 주둔
  • 1955영국 외교부 입부
  • 1963–1966주소 영국대사관 근무 (모스크바 첫 부임)
  • 1975–1978주유럽공동체 영국대표부, 브뤼셀
  • 1982–1984주미 영국대사관 무역 공사
  • 1984–1988외무부 사무차관보, G7 셰르파팀
  • 1988–1992주소련·러시아 영국 대사
  • 1992–1993총리 외교정책 보좌관, 합동정보위원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