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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재정·계획 · 미국 국가기관 인물 2명

조건 모두 해제

세계 최대 면화상을 일군 자유무역론자, 유럽 붕괴를 경고한 메모로 마셜 플랜을 촉발한 국무차관

1947년 5월 27일 마셜 국무장관에게 보낸 메모에서 클레이턴은 이렇게 썼다: '즉각적이고 대규모인 미국의 원조 없이는 경제·사회·정치적 붕괴가 유럽을 뒤덮을 것입니다.'

클레이턴은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속기사로 출발해 앤더슨·클레이턴 사를 세계 최대 면화 무역회사로 키운 사업가였다. 자유무역을 신봉한 민주당원으로서 1944년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보, 1946년 경제담당 차관에 임명되었고, 1947년 5월 전후 유럽의 참상을 목격한 후 조지 마셜에게 보낸 「유럽의 위기」 메모에서 '즉각적이고 대규모인 미국의 원조 없이는 경제·사회·정치적 붕괴가 유럽을 뒤덮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메모는 마셜 플랜 발표의 직접적 촉매가 되었고, 찰스 볼런은 연설문 초안을 쓸 때 클레이턴의 문장을 대거 인용했다. 퇴임 후에도 자유무역과 대서양 동맹을 옹호하며 1961년 크리스천 허터와 애틀랜틱 카운슬을 공동 설립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0미시시피주 투펄로 인근 면화 농장에서 출생
  • 1904앤더슨·클레이턴 사 공동 창업,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면화 중개 시작
  • 1916본사를 휴스턴으로 이전, 이후 세계 최대 면화 무역회사로 성장
  • 1918전시산업위원회 면화분배위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정부 봉사
  • 1940–1944재건금융공사·수출입은행·잉여전쟁자산청에서 연이어 근무
  • 1944–1946국무부 경제담당 차관보, 포츠담 회담 경제 고문
  • 1946–1947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유럽의 위기」 메모로 마셜 플랜 촉발
  • 1961크리스천 허터와 애틀랜틱 카운슬 공동 설립

찰스 배닉

Charles Vanik

이민의 자유를 무역법에 새긴 의원

1974년 그는 잭슨-배닉 수정조항을 하원에 제출해 이민의 자유를 무역 조건으로 만들었다.

찰스 배닉은 클리블랜드 동부의 노동자와 동유럽계 주민을 기반으로 활동한 민주당 하원의원이었다. 그는 조세 형평, 사회보장, 메디케어, 오대호 환경 문제를 다루며 국내 개혁 의제를 외교정책과 연결했다. 1974년 헨리 잭슨과 함께 잭슨-배닉 수정조항을 발의해, 이민을 제한하는 비시장경제 국가에 대한 정상 무역관계 부여를 조건부로 묶었다. 이 법은 소련계 유대인을 비롯한 종교적 소수자의 이주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었지만, 데탕트와 무역을 인권 조건에 연계한 미국 의회의 개입이기도 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8–1939클리블랜드 시의회 의원
  • 1940–1942오하이오주 상원의원
  • 1942–1945미 해군 예비역 장교, 대서양·태평양 전선 복무
  • 1947–1954클리블랜드 시 법원 판사
  • 1955–1969미국 하원의원, 오하이오 제21선거구
  • 1969–1981미국 하원의원, 오하이오 제22선거구
  • 1973–1981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 위원장
  • 1985–1995Squire Sanders & Dempsey 워싱턴 사무소 변호사, 동유럽 무역 담당
  • 2007플로리다주 주피터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