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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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생산 운영 인물 103명

에를렌 키리코비치 페르비신

Эрлен Кирикович Первышин

군사통신 인프라를 총괄한 통신장비공업 장관

1976년 4월, 전자공업부 전시회에서 동료 장관 발렌틴 프롤레이코는 페르비신을 이렇게 평했다: "자기 쪽 작업이 뒤처진 데에 불만을 품고, 기회만 있으면 빈정거리며 오직 불평만 늘어놓았다."

시베리아 설치 현장에서 출발한 통신기사로, 1974년부터 1989년까지 15년간 소련 통신장비공업부 장관을 지내며 군사령·통제·통신(C3) 체계의 중추인 보안통신·무선중계·레이더 장비 생산을 총괄했다. 1989년 통신부 장관으로 옮겨 통합 통신망 구축을 추진했고, 소련 해체 후에는 러시아 통신 기업을 이끌며 민영화 전환기에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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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1957제5설계·조립트러스트 톰스크 설치구역 기사
  • 1957–1959제5설계·조립트러스트 크라스노야르스크 설치구역 책임자
  • 1959–1961제5설계·조립트러스트 부수석기사 (모스크바)
  • 1965–1969소련 무선공업부 전소련 설계·조립트러스트 총책임자
  • 1970–1974소련 무선공업 차관
  • 1974–1989소련 통신장비공업부 장관
  • 1989–1990소련 통신부 장관
  • 1991–1992통신기업 콘체른 '텔레콤' 이사회 의장

아르카디 이바노비치 볼스키

Аркадий Иванович Вольский

소련 기계공업을 총괄하고 탈소비에트 자본을 조직한 실무자

1991년 8월 쿠데타 때, 가택연금 중인 고르바초프와 전화 연결에 성공한 볼스키는 쿠데타파가 퍼뜨린 '고르바초프 건강 이상설'이 거짓임을 세상에 알렸다.

중앙위 기계제작부장, 안드로포프체르넨코의 경제 보좌관, 그리고 소련 말기 산업 관료에서 탈소비에트 기업 로비로 이행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러시아 산업가·기업가 연합(RSPP)의 창립자이자 15년간 회장을 맡으며 '붉은 디렉터'들을 조직화된 로비 세력으로 전환시켰고, 이는 러시아 시장경제 이행의 조건을 크게 규정했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고르바초프와 접촉하여 쿠데타파가 내세운 '건강상 무능'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특별관리위원장(1988~1990)과 체첸 평화협상 부대표(1995)를 지냈으며, 1986년 체르노빌에서 석 달간 산업 대응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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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1969ZIL 자동차 공장: 보조 직장 → 주물공장장 → 당위 서기
  • 1969–1983중앙위 기계제작부: 자동차산업 부문장 → 부부장 → 제1부부장
  • 1983–1984안드로포프 서기장 경제 보좌관
  • 1984–1985체르넨코 서기장 경제 보좌관
  • 1985–1990중앙위 기계제작부장
  • 1988–1990나고르노-카라바흐 특별관리위원회 위원장
  • 1990–2005러시아 산업가·기업가 연합(RSPP) 회장
  • 1991.8–12소련 부총리 (산업·군수복합체 담당)

올레크 드미트리예비치 바클라노프

Олег Дмитриевич Бакланов

우주산업을 이끈 최후의 GKChP 생존자

1991년, 나는 우리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하리코프 계기공장의 조립공으로 출발해 소련 로켓·우주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일반기계공업부 장관까지 오른 기술관료로, 에네르기야-부란 왕복우주선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소련 우주개발의 마지막 대역사를 이끌었다. 1988년 CPSU 중앙위원회 국방산업 담당 서기로 당의 군수정책을 주관했고, 1991년 8월에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 8인 중 한 명으로 소련 붕괴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 후 1년 반 동안 수감되었다. 2021년 사망 당시 GKChP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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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1962하리코프 계기공장에서 조립공·무선기기 조정사로 근무
  • 1963–1972하리코프 계기공장 주임 엔지니어
  • 1972–1975하리코프 계기공장 공장장
  • 1975–1976생산연합 '모놀리트' 총괄책임자
  • 1976–1981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차관
  • 1981–1983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제1차관
  • 1983–1988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장관
  • 1988–1991CPSU 중앙위원회 국방산업 담당 서기

레프 드미트리예비치 랴베프

Лев Дмитриевич Рябев

체르노빌 직후 핵산업을 넘겨받은 중형기계공업 장관

랴베프는 후일 이렇게 회고했다. “체르노빌에 5월 2일부터 한 달 넘게 있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아픔과 분함이 가시지 않았다.”

볼로그다 출신의 물리학자로 MIFI를 졸업하고 사로프의 비밀 핵무기 연구소 VNIIEF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74년 VNIIEF 소장이 되어 신형 핵탄두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이후 당 중앙위원회 방위산업부에서 중형기계공업 부문을 감독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직후 슬라프스키의 후임으로 중형기계공업 장관에 올라 소련 핵무기·원자력 산업 전체를 지휘했으며, 이후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으로서 연료·에너지 복합체를 총괄했다.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원자력부 제1차관으로 핵무기 단지를 보존하고 《소련 원자력 계획》 문서 시리즈를 편집하며 산업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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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1963VNIIEF(KB-11) 기술자·선임 기술자
  • 1963–1967크렘료프 시 당위원회 제2서기
  • 1967–1969VNIIEF 생산 담당 부수석 기술자
  • 1974–1978VNIIEF 소장
  • 1978–1984CPSU 중앙위 방위산업부 중형기계공업 부문장
  • 1984–1986중형기계공업 차관·제1차관
  • 1986–1989중형기계공업 장관
  • 1989–1991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연료에너지복합체 국장
  • 1993–2002러시아 원자력부 제1차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파니체프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аничев

페레스트로이카 속 공작기계 공업을 지키려 했던 마지막 장관

2012년 인터뷰에서 당시 업계 현실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발전 프로그램은 이미 많이 채택되었다. 공작기계 분야만 30개 이상의 정부 문서가 나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니콜라이 파니체프는 소련 공작기계·공구공업의 마지막 장관(1986~1991)으로, 벨라루스 농촌 출신 선반공에서 출발해 25년간 레닌그라드 일리치 공작기계공장에서 공장장까지 오른 생산 행정가였다. 장관 시절 CNC 공작기계·유연생산모듈·로봇복합체 등 최신 기술을 도입했으나, 행정명령 체계와 시장 개혁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공작기계협회 '스탄코인스트루멘트'를 설립해 업계를 대변했고, 전직 소련·러시아 장관 원로 모임인 공공평의회 의장을 맡았다. 2004년 회고록 『균열』에서 계획경제의 성취와 개혁 실패를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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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1955소련군 복무
  • 1955–1956드리빈 지구 DOSAAF 위원장
  • 1957–1959레닌그라드 일리치 공작기계공장 선반공
  • 1959–1964레닌그라드 연삭장비 특별설계국 설계사
  • 1964–1975일리치 공장 작업장장 → 스베르들로프 공작기계연합 당위 부비서
  • 1975–1978레닌그라드 일리치 공작기계공장장 겸 연삭장비 특별설계국장
  • 1980–1981전연방 정밀공작기계 생산연합 책임자
  • 1981–1986소련 공작기계·공구공업 차관 → 제1차관
  • 1986–1991소련 공작기계·공구공업 장관
  • 1991–1992국영주식연합 '스탄코인스트루멘트' 회장
  • 1992–로스스탄코인스트루멘트 사장 · 스탄코인스트루멘트 이사회 의장

블라디미르 마카로비치 벨리치코

Владимир Макарович Величко

소련 후기 중공업을 책임진 기술관료

우스티노프가 박격포 생산을 지시하자 그의 장관 아파나시예프는 '하나라도 만들면 검찰에 넘기겠다'고 경고했다. 벨리치코는 '영웅적인 돌격 작업'으로 결국 납품하고 '신경질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조건이었다'고 회고했다.

레닌그라드 '볼셰비크' 공장 선반공에서 시작해 공장장까지 오른 기술관료로,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에너지·중공업·수송기계 부문 장관과 소련 각료회의 제1부의장을 지냈다. 그가 이끈 부처들은 아톰마시 원자력 설비 단지, 12기 이상의 원전용 반응로·터빈 시스템, 대륙간탄도미사일 지상 장비, 우주왕복선 부란의 발사대 등 소련 후기 핵심 에너지·군수 인프라를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 다른 공업 부처들이 흔들릴 때 그의 부처들은 안정적으로 계획을 완수해 정부가 두 차례나 문제 부처들을 그에게 통합시켰다. 소련 해체 후에도 '탸제네르고마시' 그룹을 이끌며 러시아 산업정책에 원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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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1955레닌그라드 '볼셰비크' 공장 선반공
  • 1955–1962레닌그라드 기계공학대학에서 기계공학 전공
  • 1962–1971'볼셰비크' 공장 기술자 → 부서장 → 생산담당 부공장장
  • 1971–1975레닌그라드 '볼셰비크' 공장장
  • 1975–1983소련 에너지기계공업부 제1차관
  • 1983–1987소련 에너지기계공업부 장관
  • 1987–1989소련 중공업·에너지·수송기계공업부 장관
  • 1989–1991소련 중공업부 장관
  • 1991.1–8소련 각료회의 제1부의장
  • 1991–2016'탸제네르고마시' 회장 → AO '텐마' 회장 → FPG 회장

빅토르 스테파노비치 체르노미르딘

Виктор Степанович Черномырдин

가스공업부를 가스프롬으로 바꾼 소련 마지막 가스공업 장관

오르스크 시당이 그를 공장에서 당 기관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생산직 인간이라고 느꼈고 고향 공장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다르게 정했다." 평생 자신을 당료가 아닌 '생산자'로 여겼다.

오렌부르크 코사크 가정 출신으로 오르스크 정유공장 기계공에서 시작해 오렌부르크 가스처리공장장을 거쳐 1985년 소련 가스공업 장관에 올랐다. 장관 재임 중 CPSU 중앙위원(1986~1990)과 연방·공화국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내며 소련 후기 에너지 행정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1989년 자신의 부처를 폐지하고 세계 최대 국영 가스 독점기업이 될 '가스프롬'을 창설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는 계획경제 부처를 국가 독점 주식회사로 바꾼 선구적 전환이었으며 이후 러시아 경제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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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1973오르스크 정유공장 기계공·운전기사, 오렌부르크 가스처리공장 부주임기사·공장장
  • 1973–1982오르스크 시당·CPSU 중앙위 중공업부에서 산업 행정
  • 1982–1985소련 가스공업 차관, 튜멘가스프롬 청장
  • 1985–1989소련 가스공업 장관
  • 1989–1992국영 가스 콘체른 가스프롬 창설·초대 이사회 의장
  • 1984–1990소련 최고회의·RSFSR 최고회의 대의원, CPSU 중앙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