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와 「새로운 전략」
인물카를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프란츠 메링, 쿠르트 아이스너,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페르디난트 라살레, 주세페 가리발디 용어대중파업, 프로이센 3계급 선거권, 독일 사회민주당 (SPD), 수정주의, 반사회주의자법 사건1905년 혁명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I
룩셈부르크 동지는 우리의 도르트문트 당 기관지에 실은 글로 대중파업 문제를 토론에 부쳤다.[옮긴이 1]
지금 이 순간 그런 토론이 유익하지 않다고 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더 피한다면 잘못 해석될 것이다. 특히 룩셈부르크 동지의 견해를 옹호하는 한 사람이 『브레멘 시민 신문』에서 메링을 공격한 뒤로는 그렇다. 나는 이 문제에서 메링과 완전히 같은 의견이다. 메링은 지금 여행 중이라 직접 반박할 수 없으므로, 내가 그를 대신해 답하는 것이 더욱 마땅해 보인다.
대중파업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어떤 의미에서 토론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대중파업이 우리에게 무기로서 고려 대상이 되느냐를 토론할 수는 없다. 그 문제는 예나 당대회 이래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대중파업이 지금 이 순간 성공할 전망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 토론에 들어가야 하는가? 그런 토론은 대중파업에 유리한 계기뿐 아니라 불리한 계기도 늘어놓는 것, 둘을 서로 저울질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적에게 자기 진지의 약점을 알려 주는 것이나 같다. 그런 토론 전체는 적에게 싸움을 걸지 말지를 놓고 적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작전 회의를 여는 것만큼이나 적절할 것이다. 동지들이 자기들끼리 이 문제를 논의한다면 유익할 뿐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동지의 글이 당 언론에서, 한쪽이 지금 대중파업이 가망 없다는 근거를 늘어놓는 토론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는다면 나는 매우 유감스러울 것이다. 그들이 옳든 그르든, 그런 논의는 결코 행동을 북돋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의 이 측면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다른 측면을 끌어낼 수도 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결코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대중파업을 당의 대중 행동의 다음 수단으로 고르느냐 아니면 대중 행동이 완전히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느냐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의 자기 보존을 위해서라도 가까운 시일 안에 온갖 수단으로 대중파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우리가 이 견해를 공유한다면, 물론 대중파업이 주어진 순간에 성공할 전망이 있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중파업을 도발해야 할 것이다. 패배조차 적 앞에서 아무 행동 없이 항복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검토하려는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그러나 먼저 몇 가지 일러둘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대중파업이라는 말로 무엇을 뜻하려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이렇게 쓴다.
「대중파업, 특히 짧은 일회적 시위 파업으로서의 대중파업은 분명 시작된 정치 캠페인의 마지막 말이 아니다.」
우리의 전술적 고려에서는 시위 수단으로서의 대중파업과 강제 수단으로서의 대중파업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각각 다른 조건을 전제하고 다른 전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기동 훈련과 진짜 결전 사이의 차이만큼 크다. 강제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대중파업은 정치권력자, 이를테면 정부나 의회가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하려고 벌인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하고 패배로 끝난다. 그것은 목표를 이루거나 대중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모든 힘을 다해 수행된다. 시위 파업은 처음부터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어떤 실질적 결과를 얻든 못 얻든 상관없다. 대중은 시위 파업이 끝나면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대오를 지어 행동에서 빠져나온다. 시위 파업은 국지적 사건, 이를테면 경찰의 만행에 대한 항의로서 국지적 성격을 띨 수 있다. 그런 시위 파업은 이번 선거권 운동에서 이미 있었다. 경찰의 만행이 잦아지거나 심해진다면 항의 파업도 그렇게 될 것이다. 반면 정부나 의회 같은 중앙 정치 기관에 대한 강제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대중파업은 전반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 그것은 될 수 있는 한 나라 전체의 노동계급을, 될 수 있는 한 모든 노동자층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그 기세가 엄청나서 시위 파업에는 나서지 않을 노동자층, 이를테면 철도원까지 휩쓸어 갈 때에만 성공할 것이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국지적 시위 파업만 선전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운동이 전반적 강제 파업으로까지 밀려 나가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녀의 글에서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 상황에서 국지적 항의 파업은 바람직하다고 보면서도 강제 파업이라는 생각은 범죄적 어리석음으로 물리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시위 파업만 필요하다고 보면서 아무 구별 없이 대중파업이라는 생각을 선전한다면, 우리 뜻과 달리 혈기 왕성한 사람들 사이에서 강제 파업이라는 생각을 키우고,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고 상황에도 역관계에도 맞지 않아 패배로 이어지는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강제 파업으로서의 대중파업은 우리가 투입해야 할 마지막 무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
룩셈부르크 동지는 대중파업을 「특히 짧은 일회적 시위 파업으로서」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녀는 대중파업의 다른 형태들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정치적 대중파업을 경제 파업과 관련짓고, 이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것을 북돋운다는 견해를 펼친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광업의 대규모 대중파업과 정치적 파업 운동이 겹치는 것은 둘 모두에 이로울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큰 대중운동에서는 수많은 정치적·경제적 계기가 함께 작용하며,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서로 벗겨 내고 현학적으로 갈라놓으려는 것은 헛되고 해로운 시도일 것이다. 지금의 프로이센 캠페인처럼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운동은 쌓여 있는 모든 사회적 불씨에서 양분을 길어 올려야 하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다른 한편 좁은 의미의 광부 문제의 성공에도, 그것이 더 넓은 정치적 문제로 흘러들어 적들, 곧 석탄 거물들과 정부에게 더 큰 두려움을 불어넣는다면 이로울 뿐이다. 그럴수록 그들은 양보로 광부들을 만족시키고 정치적 폭풍 해일에서 떼어 놓으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 파업은 처음부터 강제 파업이지 단순한 시위 파업이 아니다. 경제 파업은 시위 파업과 거의 어울릴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강제 파업과 경제 파업도 아주 다른 두 가지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 종류의 투쟁을 「갈라놓으려는」 「헛되고 해로운 시도」를 감행할 만큼 「현학적」이다. 지금까지 삶 자체가 그렇게 할 만큼 현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파업은 저마다 아주 다른 성공 조건을 따른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아마 나에게 1905년 러시아를 가리킬 것이다. 거기서는 당시 혁명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회생활 전체가 뒤집히는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동시적 파업 운동 속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러나 당분간 프로이센에는 아직 혁명이 없다.
서유럽의 선거권 투쟁에서는 지금까지 경제적 계기와 정치적 계기가 엄격히 구별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선거권 투쟁에서 한때 노동조합원들, 특히 광부들이 보통선거권 운동에 8시간 노동제 운동을 결합하려 한 적이 있다. 우리 오스트리아 동지들의 다수는 거기서 선거권 투쟁에 대한 촉진이 아니라 방해를 볼 만큼 현학적이었다(1894년 빈 당대회 의사록 참조).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선거권 투쟁이 경제적 요구와 결합된 예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런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광부들이 선거권 문제로 정부와 주의회에, 동시에 노동시간 단축 문제로 탄광주들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파업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운동들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다른 하나를 북돋울 수 있겠는가? 탄광주들은 파업에 몰리면 노동자들을 다시 일터로 돌려보내려는 목적에서만 양보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선거권이 개혁될 때까지 계속 파업하려 한다면, 그들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니면 탄광주들이 양보하여, 노동자들이 즉시 작업을 재개한다는 조건으로 경제적 요구를 들어준다. 이것이 룩셈부르크 동지가 염두에 둔 경우다. 석탄 거물들은 「양보로 광부들을 만족시키고 정치적 폭풍 해일에서 떼어 놓으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자에게 공통된 정치적 투쟁 목표를 노동 부문마다 다른 특수한 노동조합적 목표와 뒤섞는 것은 개별 노동자층을 서로 떼어 놓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로써 어떻게 선거권 투쟁의 수단으로서의 대중파업이 강화된다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토론하려면 시위 파업과 강제 파업을, 그리고 정치 파업과 경제 파업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다른 한편 프로이센의 지금 상황에 다른 나라의 본보기를 끌어대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이렇게 쓴다.
「결정해야 할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노동조합 조직과 가장 큰 유권자 군대에 기대고 있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작은 벨기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스웨덴에서,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때에 큰 성공을 거두며 이루어 낸 대중 행동을 이루어 낼 수 있느냐다.」
오스트리아가 이 맥락에서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거기서는 선거권 투쟁에서 대중파업에 이른 적이 아예 없다.
물론 거기서도 결국 거리 시위가 투쟁을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헝가리의 소요와 러시아 혁명이 없었다면 오스트리아에서도 대중파업이 불가피해졌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려는 마지막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오스트리아의 예는 거리 시위에서 대중파업으로 몇 달, 아니 몇 주 만에 운동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든 프롤레타리아트의 근대적 대중 행동의 내적 논리가 명하는 바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예에 관해 말하자면, 이미 말했듯이 거기서 첫 성공적 대중파업은 오늘날 프로이센에는 없는 조건에서 일어났다. 수치스럽게 진 전쟁, 와해된 군대, 정부에 대한 증오와 경멸로 가득 찬 모든 주민 계급. 여기서 대중파업은 흔들리는 체제를 쓰러뜨린 마지막 일격이었다. 이 예도 지금 우리에게는 쓸모가 없다. 그 밖의 대중파업 사례들은 선거권 투쟁이 아니라 경제투쟁에서 생겨났다. 「작은 벨기에」의 사례만 빼고. 룩셈부르크 동지가 왜 벨기에가 작다는 것을 특별히 내세우는지 잘 알 수 없다. 작은 지역에서는 넓은 지역에서보다 파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루르 지방에서만보다 독일 전체에서 하기가 더 쉽다는 것인가?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벨기에는 오늘날까지도 평등 선거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니 이 예로도 우리는 멀리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외국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프로이센의 오늘날 상황의 조건 자체에서 우리의 전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II
근대 전쟁학은 두 종류의 전략, 곧 타도 전략(Niederwerfungsstrategie)과 소모 전략(Ermattungsstrategie)을 구별한다. 앞의 것은 병력을 빠르게 집결해 적에게 다가가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그 타격으로 적을 쓰러뜨려 싸울 수 없게 만든다. 반면 소모 전략에서 장수는 처음에는 모든 결전을 피한다. 그는 온갖 기동으로 적군을 늘 숨 가쁘게 만들되, 승리로 군대의 사기를 북돋울 기회는 주지 않는다. 그는 끝없는 피로와 위협으로 적군을 차츰 갈아 없애고 그 저항력을 점점 더 떨어뜨리고 마비시키려 한다. 전쟁의 통상적 전략은 타도 전략이다. 처음부터 그것은 모든 전사에게 더 큰 매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것은 더 단순하고 더 분명하며 더 고무적이다. 장수가 소모 전략을 받아들이는 것은 타도 전략으로 목표에 이를 전망이 없을 때뿐이다. 그러나 그때도 언제나 소모 전략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소모 전략은 승리와 전리품에 대한 기대로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닥치든 어떤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을 다해 자기 대의에 매달리는 전사들을 전제한다. 또한 그것은 군대의 생명줄이 적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음을 전제한다. 적이 아군의 신병, 식량, 무기를 대는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면 소모 전략은 끝난다.
로마에 맞선 한니발의 싸움에서 그에게는 타도 전술이 주어져 있었다. 그는 성공으로만 사기가 오르고 급료와 전리품으로만 결속되며, 전쟁이 길어지면 고생과 질병으로 전투력을 잃을 뿐인 용병군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달랐다. 그들의 병사는 농민 민병으로, 처음에는 전쟁에 익숙한 한니발의 용병과 맞붙은 야전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적과 대등해졌다. 게다가 시간을 끄는 전술이 그들을 싸움에 지치게 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 싸움에서 그들에게 걸린 것은 자신의 생존, 자기 집 아궁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연자」 파비우스는 한니발이 로마를 정복하거나 포위하는 데 필요한 힘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면, 한니발에 맞서 겉보기에 망설이는 그 전술을 끝까지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세기의 처음 수십 년과 마지막 수십 년의 혁명적 계급들의 전략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종류의 차이가 드러난다. 유리한 사정이 겹친 덕분에 1789년부터 1793년까지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대담한 공격으로 몇 차례의 결정적 타격을 가해 지배 체제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 타도 전략은 당시, 정당을 만들 가능성도 인민 대중이 정부에 합법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도 모두 배제한 절대주의 경찰국가에서, 혁명적 계급에게 주어진 유일한 전략이었다. 어떤 소모 전략이든, 정부가 지속적 저항을 위해 단결하려는 반대자들에게서 조직과 결속의 모든 수단을 언제든 끊어 버릴 수 있었다는 데서 좌초했을 것이다. 우리 당이 창립될 무렵에도 이 타도 전략은 아직 한창이었다. 남이탈리아에서 가리발디의 성공, 결국 실패했지만 찬란했던 폴란드 봉기의 싸움은 라살레의 선동과 인터내셔널 창립 바로 앞에 있었다. 곧 파리 코뮌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코뮌이 타도 전술의 시대가 당분간 지났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타도 전술은 한 대도시가 지배하고, 운송 수단이 부족해 지방에서 대병력을 빠르게 끌어모을 수 없으며, 도로 건설과 무장의 기술이 시가전에 적지 않은 기회를 주던 정치 상태에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프랑스 계급투쟁』에 붙인 서문[옮긴이 2]에서 낡은 혁명 전략과 날카롭게 대비시킨, 소모 전략이라고 불러도 아주 좋을 혁명적 계급의 새 전략의 토대가 놓였다. 그 전략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장 찬란한 성과를 가져다주었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해마다 커지는 힘을 주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점점 더 유럽 정치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새 전략의 도입이 단지 더 높은 통찰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예전에는 혁명적 계급에게 소모 전략이 불가능했다. 그러려면 먼저 보통선거권, 결사권, 출판의 자유, 단체의 자유로 토대가 마련되어야 했다.
다른 한편 소모 전략이 모든 전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일은 아마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소모 전략이 타도 전략과 다른 점은, 타도 전략처럼 곧장 결전으로 달려가지 않고 오래 결전을 준비하며 적을 충분히 약화시켰다고 알 때에야 결전에 나선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크고 결정적인 격투 없이 적에게서 그 힘의 원천을 빼앗는 데 성공하려면, 적이 아주 특별히 사기가 꺾여 있어야 할 것이다. 한니발에 대한 로마인들의 소모 전략도 그들에게서 결국 카르타고의 장수에게 자마의 결전을 걸어야 할 필요를 덜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최후의 결전 이전에도 소모 전략이 적이 끌어내려 하는 모든 전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비유를 이어 가자면,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소모 전략으로 충분할 것이고 그것이 정치권력을 위한 거대한 최종 투쟁을 덜어 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유언」이 수정주의 쪽에서 그렇게 해석되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었다.
엥겔스가 그의 「유언」에서 정식화한 소모 전략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유산계급 사이의 계급 대립이 화해할 수 없고 꾸준히 첨예해진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도 수정주의의 전술과 다르다. 수정주의 전술은 계급 대립의 완화를 기대한다. 비유를 이어 가자면, 수정주의는 다른 군대와 동맹하지 않고 자기 군대의 힘으로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데 절망한다. 그것은 적군의 한 날개에서 동맹자를 찾아, 그 도움으로 아무 결전 없이 적을 그 진지에서 기동으로 몰아낼 수 있을 만큼 나아가리라고 믿는다.
반면 엥겔스적 의미의 소모 전략은 자기 군대를 알맞게 쓰기만 하면 그 힘과 믿음직함을 가장 강하게 신뢰한다. 이런 신뢰를 전제로 해서만 이 전략이 가능하다. 반면 그것은 모든 부르주아 정당을 가장 강하게 불신한다. 물론 그것은 그 정당들 사이의 차이와 대립을 모르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정당들 하나하나를 적으로 여기고, 하나하나를 약화시키고 와해시키며 그 자신감과 인민 대중 속에서의 존경을 허물려 하는 한편, 동시에 자기 조직의 강화와 대중의 우리에 대한 신뢰를 지칠 줄 모르고 추구하여, 그렇게 적의 붕괴와 자기의 승리를 준비한다. 대중에게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고 그들 앞에서 그 정당에 대한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우리 당과 그 힘을 강화하려는 정책이 있다면, 엥겔스는 그것을 어리석음이나 배신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멋진 전술이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지는 그것이 실제로 충분히 시험해 볼 기회를 가졌던 프랑스에서 드러났다. 정치권력에 참여한 결과, 사회당이 지금 장관으로서 국고 횡령을 옹호하는 지조 없는 무리를 공급했고,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의 넓은 층에서 사회당이 같은 타락과 부패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교훈적인 결과가 나왔다.
분명 엥겔스적 의미의 소모 전략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독일 사회민주당은 반사회주의자법 아래서 그것을 찬란하게 해냈다. 당은 그때 이 전략을 타도 전략을 쓰자는 모스트파의 요구에 맞서서도, 우리 운동의 투쟁적 성격을 약화시켜 부르주아의 공감을 얻으려 한 회히베르크와 슈람에서 피렉에 이르는 당시 수정주의자들의 노력에 맞서서도 관철할 줄 알았다. 그러나 엥겔스의 저 「유언」에는 한 가지 빈틈이 있었다. 우리 적들이 우리 소모 전략의 멈출 수 없는 작용에 절망한 나머지 어느 날 우리를 우리 기지에서 끊어 내려고 폭력적 일격을 시도하는 경우, 엥겔스가 확실하다고 본 그 경우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어떤 투쟁 수단이 있는지에 관해 그것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엥겔스가 「유언」을 쓸 때 그 답은 이미 벨기에의 실천에서 주어져 있었고, 10년 뒤 일련의 실천적 경험이 더 쌓인 뒤 독일 사회민주당의 동의를 얻었다. 대중파업은 경우에 따라, 소모 전략이 불충분하거나 불가능해질 때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에서 소모 전략을 타도 전략으로 넘어가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대중파업이라는 말은 강제 파업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위 파업에 관해서라면 그렇게 오래 토론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당은 이미 1890년에 작업 중지를 5월 1일의 가장 품위 있는 기념 방식으로 선언했을 때 시위 파업을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였다.
오늘날 대중파업이 터지도록 힘쓰는 것이 우리 과제인지 묻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당의 지금까지의 소모 전략을 계속하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졌는지, 또는 우리 당을 심각하게 위협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분명히 해 두자. 여기서 문제는 어떤 돌발 사건, 이를테면 거리 시위 뒤의 학살이 우리의 관여 없이 아주 자연발생적으로 일으키는 대중파업이 어떤 전망을 지닐지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것은 쓸데없다. 우리는 그런 사건의 조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할 문제는 우리의 소모 전략이 더는 맞지 않는지, 상황이 바뀌어 타도 전략이 더 나은 성과를 약속하는지, 또는 아예 소모 전략이 불가능해졌는지, 그것이 더 오래 계속되면 우리 대열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대열을 결속하고 투쟁 정신과 확신으로 채우려면 새로운 전술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한지다. 그 새 전술을 우리는 군사 개념을 정치의 세계로 옮겨 타도의 전술이라고, 곧 평등 선거권의 반대자들의 저항을 거대한 일격으로 쓰러뜨리는 전술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첫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상황이 정말로 대중파업이냐 대중 행동의 붕괴냐 하는 선택만 남은 그런 상황인가?
III
모든 전략이 그렇듯 소모 전략도 그것을 가능하고 적절하게 만드는 일정한 조건에 매여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관철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며,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그것으로 가장 찬란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것을 고수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바뀐 사정이 그것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할 수도 충분히 있다.
전쟁에서 소모 전략이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해지는 것은, 적이 우리를 우리 기지에서 끊어 내거나 기지 자체를 빼앗으려고 위협할 때다. 그때는 적이 거기에 이르기 전에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자기 보존의 명령이 된다. 마찬가지로 소모 전략이 아군의 사기를 꺾고 낙담시킬 때, 그것이 비겁과 탈영을 불러올 위험이 있고 대담한 일격만이 군대를 일으켜 세우고 결속할 수 있을 때도 그것을 버려야 한다.
적을 쓰러뜨리느냐 수치스럽게 항복하느냐의 선택만 남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도 그런 일격을 위한 공세 개입은 피할 수 없다.
끝으로 적 자신이 궁지에 몰렸을 때, 빠르고 힘차게 이용하면 적에게 거대한, 어쩌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도 타도 전략으로 넘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설명을 군사에서 정치로 옮기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다.
예나 당대회가 대중파업을, 어쨌든 강제 파업의 의미에서, 우리의 투쟁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고, 그로써 우리가 언젠가 소모 전략에서 타도 전략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선언했을 때, 대회가 우선 염두에 둔 것은 방금 펼쳐 보인 경우들 가운데 첫 번째 경우뿐이었다. 곧 적이 우리 기지를 위협하여, 제국의회 선거권이나 그 밖에 프롤레타리아 조직과 선전의 생존 조건을 건드림으로써 우리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다.
지금 상황에는 그런 경우가 없다. 그렇다면 대중파업이 이를테면, 지금은 우리 행동 수단을 끊임없이 빠르게 끌어올려야만 대중을 우리 깃발 아래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해지는가? 그러지 않으면 대중이 우리를 떠나 다른 정당으로 몰려가거나, 정치에서는 어차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며 언짢고 실망한 채 정치 전체에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에?
룩셈부르크 동지는 「300만 당」이 직면한 「딜레마」를 이야기할 때 그렇게 믿는 듯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시작된 대중 행동이 성과 없이 무너지거나.」
이 딜레마는 모든 대중운동의 내적 논리에서 나오는 결과라고 한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이렇게 밝힌다.
「대중 시위에는 그 나름의 논리와 심리가 있으며, 그것을 다스리려는 정치가에게는 그것을 고려하는 것이 절박한 명령이다. 정치투쟁에서 대중 의지의 표현은 인위적으로 오래 같은 높이에 붙잡아 두거나 같은 형태에 가두어 둘 수 없다. 그것은 높아지고 첨예해지며 새롭고 더 효과적인 형태를 취해야 한다. 한번 불붙은 대중 행동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순간에 지도하는 당이 대중에게 필요한 구호를 줄 결단력이 없으면, 대중은 피할 수 없이 일종의 실망에 사로잡히고 기세는 사라지며 행동은 무너진다.」
그러니 룩셈부르크 동지는 대중파업의 필요성을 주어진 상황의 조건에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벌어지든 모든 대중 행동에 해당한다는 일반적인 심리적 고려에서 끌어낸다. 대중 행동은 언제나 첨예해지고 새롭고 더 효과적인 형태를 취해야 한다. 한번 대중 행동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거리 시위에서 시위 파업으로, 시위 파업에서 강제 파업으로. 그다음에는? 그때는 어떤 「첨예화」가 우리에게 남는가? 룩셈부르크 동지가 여기서 내놓는 견해는 러시아 혁명의 사정, 곧 타도 전술이 맞았던 조건에는 아주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당의 소모 전략의 바탕이 된 경험과는 완전히 모순된다. 소모 전략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끈질긴 전사이며 끈기와 지구력에서 다른 계급들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행동 수단을 고를 때 그때그때의 효과와 적절성 말고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으면서 여러 해 동안 대중 행동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것, 마지막이자 가장 날카로운 수단에 손을 뻗으려면 지금까지 쓴 수단을 능가해야 한다는 욕구보다 더 그럴듯한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룩셈부르크 동지는 오스트리아의 본보기를 여러 번 언급했다. 거기서 선거권 투쟁은 10여 년 넘게 계속되었다. 이미 1894년에 오스트리아 동지들은 대중파업의 사용을 검토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1905년까지, 룩셈부르크 동지에게는 모든 대중운동의 「내적 논리」인 끌어올림과 첨예화 없이 그들의 찬란한 대중운동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동지들은 선거권 투쟁에서 한 번도 거리 시위를 넘어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들의 기세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들은 끈기에서 분명 오스트리아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지금 선거권 투쟁에서 거리 시위와 혹시 있을 국지적 항의 파업을 넘어 더 날카로운 수단에 손을 뻗고 소모 전략 대신 타도 전략을 세울 다른 이유가 없다면, 모든 대중 행동의 「내적 논리」가 대중파업으로 밀고 나갈 유일한 이유라면, 그 근거는 다소 빈약할 것이다. 사회민주당이 처음부터 소모 전략을 받아들여 완성해 낸 것은, 당시 주어진 정치적 권리가 그 기반을 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이론이 당에게, 당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힘차게 옹호하는 한, 성공이나 새로운 화젯거리로 대중을 열광시키든 말든, 계급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언제나 믿을 수 있다는 보증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을 그토록 끔찍하게 학대하는 기존 사회질서를 가장 빨리 뒤엎기를 마음의 모든 결을 다해 바란다. 이 사회질서를 뒤엎을 가능성이 눈짓하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사회민주당이 그러려 한다면 그는 당을 경멸하며 옆으로 밀쳐 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정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부르주아 사회의 적인 정당은 하나뿐이다. 사회민주당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더 빨리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다른 정당을 찾지 못하며, 자신을 승리로 이끌려 하고 또 이끌 수 있는 다른 정당도 아예 찾지 못한다. 오늘의 생산양식 안에서나마 부르주아의 이익에 맞서 그의 계급 이익을 대변할 정당조차 찾지 못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무지 때문에 부르주아 정당에 끌려갈 수는 있어도 혁명적 조바심 때문에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조바심이 실망하면, 사회민주당이 그 기대를 채워 주지 못하면, 그 반대인 무기력과 낙담으로 바뀔 수는 없는가? 분명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일어나는가? 우리 당이 채울 수 없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때,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약속할 때다. 오늘날 그런가?
사회민주당이 몇 달 안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로이센에서 평등 선거권을 관철하겠다고 대중에게 약속했다면, 그때는 물론 행동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대중이 마지막이자 가장 날카로운 투쟁 수단을 쓰도록 몰아붙이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을 경우 대중을 크게 실망시킬 것이다. 그때 당은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극단을 감행하느냐, 아니면 오랫동안 당의 흡인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심각한 도덕적 붕괴를 겪느냐 하는 딜레마 앞에 설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센 사회민주당은 그런 것을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프로이센에서의 선거권 투쟁은 몇몇 의석 이동을 가져오는 단순한 선거 개혁이 아니라 융커 지배의 타도가 걸린 문제이므로 다른 어느 곳보다 어렵다고 언제나 강조한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융커 지배는 프로이센의 지금 선거권과 함께 그 토대를 잃는다. 그들은 그것을 손톱과 이빨로 끝까지 지킬 것이다. 프로이센에서 자유 선거권의 쟁취는 이를테면 바이에른이나 바덴이나 오스트리아에서와는 전혀 다른 것을 뜻한다. 그것은 융커 계급의 타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내가 이 견해를 무엇보다 1905년과 1906년에 아이스너 동지와 슈탐퍼 동지를 상대로 한 논쟁에서 펼쳤다는 것을 상기시켜도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시 가장 힘찬 행동을 다그치며, 내가 우리를 정치적 대중파업에 묶어 두는 선동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고 나를 공격했다. 나는 정치적 대중파업이 독일의 사정에서는 혁명적 상황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선거권 투쟁 문제에서 「기회주의적 장사꾼」의 입장을 취하고 대중파업 문제에서 러시아 혁명을 배신했다며 아이스너와 슈탐퍼가 나를 얼마나 꾸짖었던가! 나는 그때도 오늘과 같은 견해를 옹호했다. 융커 계급과 프로이센 정부처럼 강력한 적을 몇 달 안에 처리하겠다고 우리 당이 약속했다면 그것은 지극히 경솔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약속을 한 적도 없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몇 달 안에 빠르게 끌어올리는 행동으로 지금의 체제를 쓰러뜨리자」는 구호를 낸 적이 한 번도 없고, 다만 이런 구호를 냈을 뿐이다. 평등·비밀·직접 선거권을 쟁취할 때까지 프로이센에 평온은 없다.
이것을 우리는 약속했고, 이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뜻하는 것은, 우리 동지들이 오늘 이미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두며 써 온 행동 수단, 무엇보다도 거리 시위를 계속 쓰고, 그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점점 더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리 시위를 벌써 곧 사건의 물결에 추월당할 수단으로」 여겨 더 날카로운 수단으로 대체해야 할 의무는 조금도 없다.
룩셈부르크 동지가 말하는 딜레마는 우리가 대중파업을 위한 선전을 펼칠 때, 거리 시위로는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고 대중 행동 수단을 빠르고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선언할 때 비로소 생긴다. 우리가 그런 선전을 펼친다면, 이제 「만세! 앞으로 갓!」 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수단으로 적을 쓰러뜨리러 나아간다는 기대를 대중 속에 불러일으킨다면, 그때는 물론 머지않아 대중을 가장 깊이 실망시키느냐, 아니면 거대한 도약으로 융커 체제의 멱살을 잡아 그것을 쓰러뜨리거나 그것에 쓰러지느냐 하는 딜레마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이 딜레마가 아직 없다. 오늘 우리는 아직 행동 수단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IV
그러므로 대중이 우리를 저버릴 것이라는 우려는 우리가 타도 전술로 넘어가는 것을 뜻하는 더 날카로운 수단에 손을 뻗게 할 이유가 아니다. 분명 모든 투쟁에서 대립은 첨예해진다. 투쟁이 계속된다는 것만으로도 분노는 커진다. 거기에 경제 발전으로 인한 계급 대립의 첨예화, 조직의 확대나 기술의 진보로 인한 힘의 성장이 더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대중 행동이 저절로 차츰 첨예해지고 날카로워지는 이 「내적 논리」가 아니라, 당의 「구호」와 계획적 선동으로 불러일으키려는 새롭고 더 날카로운 힘의 수단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이유는 대중이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룩셈부르크 동지가 말하는 딜레마는 우리가 선동으로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는 한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예나 결의안에 든 이유 말고 소모 전략을 버리고 대중 행동의 투쟁 수단을 가장 빠르게 첨예화하고 끌어올림으로써 타도 전략으로 넘어갈 이유가 하나만 더 있을 것이다. 우리 적들이 궁지에 몰려, 그것을 가장 빠르게 이용해야 하고 대중파업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때다.
오늘의 상황이 그런가? 이것이 결정적인 질문이다. 지금 이 순간 대중파업을 선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느냐 아니냐는 대중 시위의 내적 논리가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달려 있다. 언뜻 보면 지금 상황은 거리 시위의 산물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회민주당이 더 날카로운 수단에 손을 뻗은 덕분에 대중을 열광시키고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들어선 길을 계속 나아가지 않는다면, 곧 우리 수단을 점점 더 날카롭게 하여 대중을 점점 더 열광시키고 정부를 점점 더 궁지에 몰아 마침내 정부가 대중의 압도적 돌격 앞에 무너지게 하지 않는다면, 이 열광은 빠르게 사라지고 정부는 다시 위신과 힘과 분별을 얻을 것이다.
그것이 상황이라면, 지금 온 힘을 다해 프롤레타리아트를 더 날카로운 투쟁 방법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분명 거리 시위는 큰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열광을 불러일으키고 정부의 위신과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그렇게 쉽게 가능하다면, 왜 우리는 오래전에 이 간단한 수단에 손을 뻗지 않았는가? 거꾸로 보아야 앞뒤가 맞는다. 프로이센의 사정에서 거리 시위의 성공과 그 큰 도덕적 효과는, 사회민주당이 거대한 대중의 당이 되고 대중이 극도의 흥분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대중의 가장 깊은 흥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거리 시위는 그 거대한 규모와 깊은 효과에 이르렀고, 대중 속에 열광과 용기를, 정부와 정부 정당들에게는 혼란과 당황을 불러일으켰다. 대중의 이 거대한 분노가 솟아 나오는 것은 매우 깊은 원인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남아 있을 원인들이다. 나는 그것을 내 『권력으로 가는 길』에서 이미 보여 주었으므로 여기서는 짧게 되짚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가장 넓은 불만의 거대한 원인인 생활필수품의 물가 앙등이 있다. 내가 『권력으로 가는 길』에서 이 물가 앙등을 계급 대립을 첨예화하고 대중의 혁명적 기분을 키우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을 때, 『노동조합 통신』은 그 때문에 나를 노동조합의 적으로 고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것은 내가 노동조합의 이익이라는 핑계로 모래에 머리를 처박지 않고, 사회주의로 평화롭게 자라 들어간다는 이론에 매우 거북한 사실들을 보았다는 데 몹시 불쾌해했다. 오늘날 그런 타조 정책이 진짜 「시시포스의 노동」일 것이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물가 앙등이 얼마 전부터 모든 임금 인상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분별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나 물론 거기서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논거를 보는 분별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물가 앙등이 대중을 자극해 등을 돌리게 하는 대상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존 국가·사회 질서다.
물가 앙등의 작용은 군비 경쟁으로 더욱 강해진다. 군비 경쟁은 바로 최근에 가장 미친 규모에 이르고 있다. 육군 군비에 해군 군비까지 더해졌고, 해군 군비는 육군 군비보다 훨씬 빠르게 늘기 때문이다. 해군에서는 병력의 양보다 기술 수준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이 기술 수준은 필요한 돈만 들이면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그래서 조세 부담이 커지고, 그것은 계급 대립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 정세도 점점 더 위협적으로 만든다. 지배계급은 군비 축소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축 말고는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조세 부담을 피할 출구가 하나뿐이다. 전쟁이다.
이런 사정은 국제적이며, 어디서나 대중의 흥분을 키우는 동시에 지배계급들 서로 사이의 대립도 키운다. 국제적 신경과민이 커질 뿐 아니라, 부르주아 세계의 대중, 곧 소부르주아, 지식인, 상인, 중소 자본가가, 이 견딜 수 없는 상태의 모든 이득을 거두어들이고 모든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대토지 소유, 고급 금융, 대산업 독점가들에 맞서는 대립도 커진다. 프로이센에서는 이 일반적 국제 상황이 특별히 첨예해진다. 여기서는 엘베강 동쪽의 융커 계급이 국가를 지배하고, 그로써 다른 계급들의 희생으로 거두어들이는 이득을 더 크게, 다른 계급들의 부담을 더 무겁게, 전반적 상태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프로이센 융커 계급만큼 야만적 폭력에 많은 것을 빚진 계급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럽의 지배계급들 가운데 이들보다 더 무지한 계급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세계 교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우월한 지식으로 자신을 지켜야 할 필요에 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융커들은 자신들의 야만적 폭력이 실제 효과를 거둔 것은 그것이 경제 발전의 방향, 특히 독일의 민족적 통일의 방향으로 작용한 곳에서뿐이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 안에 야만적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숭배를 키웠고,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볼수록, 곧 이 지위가 사회 발전의 필요와 모순될수록 이 면을 더 오만하고 더 무자비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해로워질수록 더 어리석고 더 뻔뻔하고 더 야만적이 된다.
이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그리고 가장 많이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계급 정당에 대해 드러난다. 그러나 눈에 띄게 부르주아 대중과 정당들도 점점 더 이 야만과 무자비함을 맛보고 있다. 융커 계급이 식료품과 원료를 인위적으로 비싸게 만들고, 세금을 자기에게서 떠넘기며, 관료제와 군대의 모든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고, 정부와 법원과 경찰을 모든 거북한 반대파를 몽둥이로 때려눕혀야 할 자기 도구로 다루는 방식에서 말이다.
끝으로 이 융커 체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아주 단호하게 착취하고 적대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성가시고, 아니 섬뜩하고 위험하게 보인다. 그들이 러시아, 프로이센, 일본 바깥의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깨달은 사실, 곧 노동계급이 너무나 거대한 힘이 되어 더는 야만적 강제 수단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르렀다면 말이다. 정부와 착취자들은 어디서나 똑같이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미워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진보를 그나마 어느 정도 저지할 가능성이 경찰국가가 쓸 줄 아는 것보다 더 세련된 수단을 쓰는 데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한때 성공했듯이, 프롤레타리아 대열을 분열시키고 그 가장 정력적인 분자 일부를 부패시키며 나머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겉보기의 양보를 통해서 훨씬 더 잘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프로이센 안에서도, 프로이센 밖 나머지 독일에서도 자본주의적 착취의 더 영리한 옹호자들은 융커와 그 정부의 머리 없는 야만이 근로 계급의 대열을 점점 더 단단히 결속시키고, 그들을 점점 더 흥분시키며, 그들의 감정과 사고를 점점 더 혁명적으로 만드는 것을 소름 끼치며 바라본다. 그래서 근로 대중뿐 아니라 부르주아 세계의 넓은 층도 점점 더 강하게 융커 체제에 등을 돌린다. 아주 다양하고 때로는 꽤 모순되는 이유에서이지만, 모두 이 체제가 독일을 심연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확신에서는 점점 더 하나가 된다.
분노가 가장 강하고 가장 한결같은 곳은 물가 앙등, 조세 부담, 관료적 학대로 가장 많이 고통받는 하층이다. 그것은 이 층을 자연히 사회민주당으로 이끌고, 사회민주당에서 자신의 보루이자 이익의 옹호자를 보게 한다. 이것이 우리의 거리 시위에 그런 기세와 의미를 주는 이유들이지만, 이것들은 또한 제국의회의 보궐선거마다 보여 주듯 우리 유권자의 대열을 불어나게 하며, 내년의 제국의회 총선거를 프로이센 융커 정부와 그 온전한, 또는 반쪽의 동맹자들 모두에게 끔찍한 심판의 날로 만들 기세다. 적대 진영의 선거 통계가들도 이미 우리가 다가오는 선거에서 125석을 얻을 가능성을 셈하고 있다.
물론 그때까지 아직 1년 반이 지날 수 있고, 인민은 빨리 잊는다. 그사이 그들의 분노가 식을까 두려워해야 하지 않는가? 정부가 영리한 한 수로 인기 있는 선거 구호를 찾아내어 위신을 되찾고, 최근 그토록 풍성하게 쏟아진 모든 증오와 경멸을 씻어 낼까 두려워해야 하지 않는가? 잘 알려져 있듯이 열광은 소금에 절여 둘 수 있는 청어가 아니다. 그것에서 이득을 얻으려면 곧바로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그러기 위한 제국의회 선거라는 싸움터가 주어져 있지 않으므로, 다른 싸움터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대중파업의 싸움터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대중의 흥분을 불러온 원인들이 다음 제국의회 선거 때에는 더는 작용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해야 한다면, 이 논법에는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정할 이유는 없다.
물가 앙등과 조세 부담, 그리고 융커의 야만도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사정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들은 1911년에도 1910년과 똑같이 강하게, 아니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군비 경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모든 새 요구를 다음 선거 뒤로 미루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선거를 앞당길 이유가 된다. 그러나 정부는 뜻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이 우세하다. 그들은 이미 자유당 내각에 해군 군비를 늘리도록 강요했다. 예상대로 그들 자신이 올해 안에 집권한다면, 군비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물가 앙등은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 영역에서 우리가 무엇을 예상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국제 식료품 시장에 결정적인 미국의 사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 사정은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우려만 낳는다.
아마 실업이 노동자 대중을 분노하게 하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했는데, 공황이 극복되었으니 1년 뒤에는 실업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내년이 다시 더 나은 경기의 해가 될 전망이라는 데까지는 옳다. 그러나 눈부신 경기가 될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지난 번영기보다 더 심하게 이번에는 고용주 단체들이 단물을 걷어 갈 것이고, 노동자들은 번영에서 물가 앙등 말고는 그다지 느끼는 것이 없을 것이다. 번영은 상품 가격의 상승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번영기에는 노동자들이 너무 만족해서 권리 박탈과 학대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거꾸로, 공황기에는 노동자들이 소심하고 싸울 능력이 없으며, 누구나 일자리를 얻거나 지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므로 어떤 파업에도, 따라서 정치적 대중파업에도 나서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보면 한쪽도 다른 쪽만큼 틀렸다. 둘 다에서 옳은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행동은 공황기에도 번영기에도 그것을 해치는 장애를 만난다는 것까지다. 앞의 것은 그 투쟁 능력을, 뒤의 것은 그 혁명적 충동을 다른 때만큼 강하게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까지다. 프롤레타리아 정치가는 투쟁 수단을 고를 때 이런 사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황기에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대중파업보다 수행하기 쉬울 것이다. 번영기에는 노동자가 공황기보다 대중파업에 더 쉽게 열광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번영과 공황만이 아니라 번영과 공황의 교체도 고려해야 하며, 이 이행기야말로 노동자가 가장 행동 의욕에 넘치는 시기인 듯하다. 특히 번영의 초기, 공황의 궁핍과 괴로운 불안정과 전락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면서 동시에 번영에서 솟는 힘의 감정과 투쟁 의욕도 지니고 있을 때 그런 듯하다.
그래서 1880년대 말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 기분, 반사회주의자법의 붕괴와 1890년 제국의회 선거의 찬란한 약진을 가져온 그 기분은, 긴 공황 끝에 1888년에 시작된 번영과도 관련이 있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 상황과 닮은 점을 여럿 찾아낼 것이다. 그때도 종말을 향해 가던 체제가 있었다. 근로 계급에게서 점점 더 힘찬 저항을 받고, 부르주아지 안에서도 점점 열광과 신뢰를 잃으며, 커져 가는 국제 관계의 어려움과 씨름하고,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던 체제. 마침내 1890년 선거의 패배가 그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뒤 20년 동안 세계는 멈춰 있지 않았다. 오늘의 상황은 지배계급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고 우리에게는 훨씬 더 희망적이다.
당시 프로이센의 지도적 정치가는 그래도 천재였다. 그는 세 차례의 운 좋은 전쟁으로 얻은 찬란한 위신에 떠받쳐져 있었다. 그 전쟁들에서 그는 모든 적을 쓰러뜨렸고, 적어도 독일 부르주아지를 만족시키는 형태로 독일 인민의 통일 염원을 이루었으며, 독일 제국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끌어올렸다. 오늘은 우리 편에서도 적 편에서도 아무 위신이 없는 제국 재상, 제국에서 가장 어리석고 뒤처진 정당의 포로, 세계의 웃음거리다.
당시의 국제적 어려움은 일부는 스페인이나 스위스와의 문제처럼 하찮은 것이었고, 일부는 프랑스와 러시아와의 대립처럼 민족 자체를 위협하는 듯한 것이어서, 정부는 유사시 민족 전체를 등 뒤에 둘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영국과의 전쟁 위험이 있는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민족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는다. 거기서 싸워 결판낼 것은 민족의 사활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소유 문제, 몇몇 착취자 도당의 사활 문제일 뿐이다. 그런 종류의 전쟁이 희생을 요구하자마자, 그리고 그것은 끔찍한 희생을 요구할 것인데, 인민 대중은 쉽게 전쟁하는 정부에서 떨어져 나가고 성과가 없으면 정부에 등을 돌린다. 그리고 전쟁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것을 위한 군비만으로도 열광은커녕 커져 가는 저항에 부딪힌다. 1880년대에 사회민주당 말고는 아무도 러시아와 프랑스에 맞선 군축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영국에 맞선 군축 요구는 우리 당의 범위를 훨씬 넘어 퍼져 있다. 그리고 우리 당 자체는 그사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1887년부터 1907년까지 당은 득표수를 네 배로 늘렸다. 1911년 선거에서 1890년과 같은 도약을 해낸다면, 그리고 상황은 매우 유망한데, 곧 득표수를 두 배로 늘린다면, 당은 전체 투표수의 절대 과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도약을 기대할 만큼 낙천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거대한 도약을 하리라는 데는, 그래서 투표수의 절대 과반을 얻는 것이 몇 해 안의 문제가 되리라는 데는 온 세상이 한목소리다.
다음 제국의회 선거에서 이것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보통의 선거 승리 이상을 뜻한다. 오늘의 상황에서, 인민 대중의 거대한 흥분과 긴장된 안팎 정세를 앞에 두고, 그런 승리는 지배하는 통치 체제 전체의 파국이나 다름없는 것을 뜻한다. 다음 선거가 이 체제를 그 기초부터 뒤흔들 것이라는 데 나는 조금도 의심이 없다. 하나는, 선거가 마침내 지배 분자들의 머리에 변증법을 두드려 넣어, 그들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꾸려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높아 가는 사회주의의 밀물을 막기 위해 서구식 방법을 쓰기로, 곧 양보로 근로 인민의 더 큰 층을 얻으려 하기로 결심하는 경우다.
고도의 분노와 엄청나게 첨예해진 대립을 앞에 두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진정 효과를 내려면 이미 상당한 양보여야 할 것이다. 프로이센에 제국의회 선거권을 주는 것보다 적은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이 더 개연성이 높은데, 우리의 승리가 반대 효과를 낸다. 그것이 지배계급을 부추겨, 현행법의 토대 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운동을 야만적 폭력의 일격으로 때려눕히게 한다. 끝으로 셋째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보다 가장 개연성이 높다. 지배 체제가 머리를 잃고, 야만과 양보 사이를 어쩔 줄 모르고 오가며, 어느 쪽도 일관되게 밀고 나가지 못해서, 그 야만은 분노만 키우고 그 양보는 약함의 인상만 주어, 둘 다 끄려는 불길에 바람만 불어넣는 경우다.
사정이 어떻게 되든, 제국의회 선거는 우리 투쟁을 위해 새롭고 더 넓은 기반을 낳는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뒤의 두 경우 가운데 하나가 일어나면, 그 상황은 물론 그 내적 논리로 빠르게 점점 더 첨예해져 거대한 결전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전을 우리는 새롭고 넓은 기반 위에서 오늘과는 전혀 다르게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역사적 상황의 열쇠, 곧 다음 제국의회 선거의 압도적 승리를, 사물의 배치 전체로 보아 우리는 오늘 이미 주머니에 넣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잃고 찬란한 상황을 망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 쪽의 경솔함이다. 우리가 조바심에 이끌려 익기 전에 열매를 따려 할 때, 승리가 결코 확실하지 않은 지형에서 그 전에 힘겨루기를 도발하려 할 때가 그럴 것이다.
물론 모든 투쟁에서는 많은 것을 감행해야 한다. 패배가 처음부터 배제될 때에만 전투를 치르려는 장수는 큰 개선을 거의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의 호의와 그것을 능숙하게 이용한 덕분에 의심할 바 없는 큰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 그 승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불분명하고 의심스러운 싸움터에서의 전투를 도발하는 새 전략으로 넘어가는 것뿐이라면, 확실한 승리를 앞두고 그런 전투를 불러일으켜 승리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엄청난 어리석음이다. 분별 있는 장수라면 누구도, 승리가 확실하고 적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싸움터에서 결과가 의심스러운 다른 싸움터로 싸움을 옮기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글에서 이미 언급한 『브레멘 시민 신문』의 필자는 물론 메링에게 「그런 (대중파업의) 패배가 우리의 다음 선거전의 승산을 오히려 높이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들이민다. 그러나 이 어리둥절한 견해가 많은 신도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투쟁은 많은 흥분과 분노를 불러일으켜서, 패배로 끝나더라도 그로써 우리 선동을 비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패배 때문이 아니라 패배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며, 물질적 패배가 도덕적 승리일 때에만 일어난다. 우리 쪽에서 투쟁을 너무도 찬란하게 이끌어 적에게서조차 존경을 끌어낼 때, 그리고 투쟁이 피할 수 없었고 적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일 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의 노동조합 투쟁에서도, 그것이 물질적으로 우리 바람만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분노의 고조와 선거권 투쟁의 강화를 기대한다. 이것도 지금의 흥분기가 룩셈부르크 동지와 그 친구들에게만큼 우리에게 단명해 보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앞선 투쟁들로 선거권 투쟁과 선거전이 강화되는 이 효과는, 그 투쟁들이 우리 스스로 자초한 패배, 곧 우리가 그럴 필요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결과가 지극히 의심스러운 힘겨운 투쟁에 끌어들여 생긴 패배를 가져온다면 그 반대로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패배는, 그리고 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적 대중파업을 호소했는데 프롤레타리아트가 압도적 다수로 그 호소를 따르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다가오는 제국의회 선거가 품고 있는 매우 유망한 싹을, 우리가 그 전에 그럴 필요도 없이 무거운 패배를 가져올 투쟁을 도발함으로써 모두 질식시킨다면, 정부와 그 정당들로서는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정부가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것을 도발하는 셈이다.
오늘 우리가 선동의 날을 세워야 할 곳은 대중파업이 아니라 이미 다가오는 제국의회 선거다. 우리 동지들은 이미 한 번 주의회 선거권의 부당함에 대한 복수를 제국의회 선거에서 찾았고, 그것은 찬란하게 성공했다. 1903년 작센에서였다. 우리 당은 그때 작센의 23개 의석 가운데 22석을 얻었다. 이제 같은 복수를 아마 더 큰 도덕적 효과와 함께 프로이센을 위해 해야 한다.
운동을 흐르게 하고, 시위를 게을리하지 말자. 지배계급의 권위를 허물고 그 해로움과 반인민성을 보여 줄 모든 기회를 이용하자. 그러나 대중에게 이것도 보여 주자. 선거권 투쟁에서 문제는 선거법 몇 군데를 고치는 것 이상이라는 것, 융커 체제의 타도, 높은 물가와 새 세금에서 이윤을 끌어내는 모든 분자의 타도가 걸려 있다는 것, 그런 투쟁은 길고 끈질긴 것이며 선거권 법안의 의결로 끝날 수 없다는 것, 인민의 가장 나쁜 적들에게 뒤흔드는 타격을 가할 가장 가까운 기회는 다가오는 제국의회 선거라는 것, 그것을 위해 모든 힘을 끌어모으고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소모 전략을 계속하자. 투쟁 수단의 선택에서 손을 자유롭게 두자. 그리고 그 내적 논리가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때에 우리의 마지막이자 가장 날카로운 투쟁 수단을 쓰고 그로써 낭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선동을 경계하자. 바로 우리가 크고 힘겨운 투쟁을 향해 가고 있다고, 소모 전략이 타도 전략으로 넘어가야 할 지점에 가까이 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바심에 휩쓸려 때 이른 행동에 나서지 않고 마지막 탄약을 서두의 전초전에서 쏘아 버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몇 주 안에 우리가 벌써 점점 더 날카로운 수단에 손을 뻗어 대중파업으로 정부의 저항을 꺾으려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근로 대중 속에 불러일으키도록 짜인 선동, 우리를 딜레마에, 더는 우리가 상황을 지배하지 못하고 상황이 우리를 지배하는 강제된 처지에 몰아넣도록 짜인 선동, 머지않아 사정이 어떻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들고일어나느냐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느냐 하는 양자택일로 우리를 몰아가도록 짜인 선동. 그런 선동은 그것 없이도 우리가 거대한 최종 투쟁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을 약속하는 확실한 승리를 향해 가고 있는 바로 지금만큼 위험한 적이 없었다.
룩셈부르크 동지가 그녀의 제안으로 이런 의미의 선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녀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단지 대중이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에 몰두하도록 권하고 그것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것이라면 사정은 다를 것이다. 그러려 했다면 그녀는 물론 매우 불운하고 오해하기 쉬운 형식을 고른 것이지만, 그것이 이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동의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독일 제국이 생긴 이래 사회적·정치적·국제적 대립이 지금만큼 팽팽했던 적은 없다. 바로 다음 제국의회 선거가 지배 체제에 끔찍한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 체제의 혈기 넘치는 자들이 그 전에 자신들이 더 잘 버틸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거대한 투쟁을 풀어놓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우리보다 그럴 이유가 훨씬 많다. 우리에게는 그런 투쟁을 도발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적들이 저지르는 모든 것을 가만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도, 우리가 그들 앞에서 무방비라는 뜻도 아니다. 다음 제국의회 선거 전에 거대한 폭발과 파국으로 이어져 프롤레타리아트가 휩쓸려 모든 힘과 권력 수단을 쏟아붓게 되는 돌발 사태만큼 일어나기 쉬운 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의 대중파업이라면 기존 체제를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든 대중파업이냐 도덕적 파산이냐」 하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선동을 펼치는 것이 내게는 아무리 잘못으로 보여도, 다음 큰 전투를 위해 화약을 마르게 두는 것이 아무리 필요하다고 보아도, 그리고 그 전투가 다가오는 제국의회 선거에서 치러질 것이 아무리 개연성 높아 보여도, 돌발 사태의 가능성을 셈에 넣지 않는 것은 잘못으로, 그런 경우에 대중파업을 완전히 가망 없는 것으로 내세우는 것은 더 큰 잘못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가 열광적 대담함을 끈질긴 인내, 냉철한 분별과 결합할 줄 안다면, 지금 상황에서 모든 으뜸패는 우리 손에 있다.
새로운 전략
룩셈부르크가 「소모냐 투쟁이냐?」로 반박하자 카우츠키가 다시 실은 답변이다. 일곱 절 가운데 제6절과 제7절만 옮겼다.
6. 정치적 대중파업의 조건
내가 여기서 펼치는 견해는 룩셈부르크 동지가 내게서 발견하고 나무라는 제동을 걸고 싶은 욕구의 산물이 아니다. 나는 이 견해를 이미 6년 넘게 전에 『신시대』의 연재 「혁명적인 것 이모저모」에서 펼쳤고, 그 셋째 글이 특히 대중파업을 다루었다(제22년차 제1권, 685쪽 이하). 그 글들의 출발점도 그때 한 폴란드 동지와의 논쟁이었다. 그는 무장봉기 문제에서 나의 「소심함」, 나의 「제동」을 나무랐다. 다만 당시 내 상대는 폴란드 사회당에 속해 있었다. 그 글의 사고 흐름을 되풀이하고, 지금 우리 토론에서 중요한 대목들을 끄집어내어 몇 마디 덧붙이는 것이 쓸데없지는 않아 보인다.
나는 이미 그때, 여러 종류의 파업을 구별하고 그 성공의 서로 다른 조건을 검토할 만큼 옹졸하고 현학적이었다. 나는 경제 파업의 조건이 정치 파업의 조건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노동자의 성공에 유리한 모든 경제적 요인은 대중파업이 전반적인 것, 총파업이 될수록 그만큼 덜 존재한다.」(688쪽)
대중파업이 자본가를 굶주리게 해서 효과를 낸다는 생각만큼 그릇된 것은 없다. 분명 자본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으로 산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자신도 그것으로 산다. 그리고 굶주림에 이르면 그것은 가진 자보다 덜 가진 자를 먼저 친다.
대중파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유산자를 굶주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프롤레타리아 조직이 통치 권력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심 없는 열광의 규율에 바탕을 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발적 조직과, 테러의 규율에 바탕을 둔 국가의 강제 조직 사이의 투쟁의 마지막이자 최고 형태이며, 둘 사이의 결정적 힘겨루기가 된다.
대중파업은 국가권력이 가장 비상한 힘을 펼치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그 권력 수단을 될 수 있는 한 마비시킴으로써 작용한다. 그것은 이미 그 대중성만으로 이것을 해낸다. 그것은 임노동자가 많이 들어올수록 더 강하게 작용한다. 대도시와 공업 지대뿐 아니라 외딴 공장 마을에서도. 대농장의 농업 노동자까지 들어온다면 특히 효과적일 것이다.
출발점은 물론 언제나 대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 조건 가운데 하나는, 파업이 인민의 그런 전반적 흥분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아주 높이 끌어올려, 파업이 며칠만 계속되어도 외딴 지방으로까지 번지게 하는 것이다. 파업이 전반적일수록 대소유자, 국가의 주인과 정부가 자기 재산과 목숨을 두고 품는 두려움은 더 널리 퍼지고 더 커지며, 그들은 더 성급하게 군대의 보호를 부르짖는다. 이제 갑자기 모든 영주 저택, 모든 곳간, 모든 공장, 모든 전신선, 모든 철도 구간을 군대가 지켜야 한다. 그러기에는 군대가 모자란다. 병사들은 쉬지 못하고, 위험한 군중이 모이는 곳마다 이곳저곳으로 보내진다. 그들은 사기를 북돋울 큰 전투도 승리도 없이 곧 지쳐 버린다. 그들이 가는 곳에서는 군중이 흩어져, 그들이 아직 가지 않았거나 막 떠난 곳 어디서나 다시 모이기 때문이다.
병사들보다 먼저 파업은 많은 시영·관영 노동자에게 작용할 것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긴밀히 이어져 있고, 그들에게서 나왔으며, 그들 사이에 살고, 그들과 알고 지내며 친구이고 친척이다. 정부의 권력이 흔들려 보일수록 그 테러는 공포를 잃는다. 가스와 전기 공장이 멈추고 전차가 다니지 않는다. 마침내 우편과 철도까지 파업열에 사로잡힌다. 먼저 작업장 노동자가 파업하고, 이어 젊은 현업 직원들도 파업하며, 그동안 나머지 사이에서는 적어도 소극적 저항이 번진다. 국가권력은 예비역 소집으로 버티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이다. 그로써 군대라는 몸에 내부의 적에 맞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분자들, 이미 파업열에 걸려 그것을 병영으로 옮겨 올 분자들을 집어넣기 때문이다.
그들은 병영에서, 끝없는 경계 근무에 지치고 가장 모순된 명령에 이리저리 내몰린 병사들을 만난다. 그런 명령은 분노를 일으키는 만큼 상관에 대한 존경을 떨어뜨린다. 상황이 대부대의 합동 작전을 허락하지 않을수록, 상황이 셀 수 없이 많은 위협받는 지점을 지키려고 부대를 아주 작은 분견대로 쪼개야 할수록, 규율의 해이는 그만큼 쉽게 일어난다. 그런 분견대는 몇 시간, 아니 며칠 동안 고급 장교를 보지 못하는 반면, 늘 온갖 방식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평화로운 동료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그 고위 대표자들이 머리를 잃으면 정부는 끝장이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되기란 얼마나 쉬운가.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정부에게 양보하라고, 인민을 달래고 최악을 막기 위해 인민에게 양보하라고 두려움에 차서 다그친다. 다른 일부는 천민들을 도륙하고 파업을 피로 질식시키라고 다그친다. 한 번은 이리로, 한 번은 저리로 끌려다니고, 바뀌는 소식에 따라 급변하는 위로부터의 변덕과 기분에 내맡겨진 정부는, 오늘은 무해한 구경꾼들을 학살하게 해서 불에 기름을 붓다가, 내일은 이 연대 저 연대가 다루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는,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파업 참가자들과 친교를 나눈다는, 철도원들이 파업한다는, 분노한 농업 노동자들이 군대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이 성 저 성을 습격했다는 소식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낡은 체제는 지탱할 수 없게 되고 새 체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이미 러시아 혁명 전에, 대중파업이 근대 중앙집권 군사국가의 사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승리로 이끌 수 있으려면 띠어야 할 형태를 대략 이렇게 그렸다.
그러므로 그런 파업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일련의 전제 조건을 요구한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프로이센 선거권 투쟁에 관한 그녀의 소책자 10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이 한번 팔짱을 끼면 세계는 스물네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 (폭풍 같은, 오래 이어지는 박수)
실제로 세계를 떠받치는 자라는 의식은 고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대중파업의 성공에는 단순히 「팔짱 끼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파업의 조건은 한편으로는 경제 발전으로, 한편으로는 우리 활동으로 점점 더 갖추어지고, 그로써 대중파업에서 승리할 전망도 점점 더 나아진다.
경제 발전은 프롤레타리아의 수를 늘리고 그들을 집중시킨다. 당 조직, 노동조합, 언론, 입법 기관과 시의회에서의 우리 활동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그들에게 힘의 감정과 규율을 주며, 정치적 계몽과 적의 조직에 대한 통찰도 준다.
대중파업 동안에는 팔짱을 끼는 것만이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연계를 지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파업이 시작될 때 우리 대표자들이 모두 체포되고 우리 신문들이 금지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때는 이른바 「하사관들」이 투쟁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개별 그룹들이 연락을 유지하고 한결같이 움직이도록, 대중이 도발에 넘어가 시가전을 벌이지도 않고 그런데도 일어나는 폭력 행위에 겁먹지도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퇴각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투쟁이 지역적 불만을 둘러싼 개별 투쟁들로 흩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대중 속에 오랜 정치·노동조합 활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자기 규율, 정치적 이해, 사고와 행동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 대중파업의 성공은 정부가 기대는 대중 사이의 와해가 이미 꽤 진행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것이 프랑스에서처럼 공공연한 반란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다. 군대의 테러는 그런 불만의 표출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럴수록 불만은 더 깊이 파고들고, 군대의 복종은 더욱 단순한 위선이 되어, 지휘하는 자들의 권력 지위가 일단 위협받는 듯 보이면 그만큼 더 빠르고 뜻밖에 벗어던져진다.
농민의 가부장적 가족이나 농업 노동자의 무권리와 무력함 속에서 자란 젊은이에게는 군대의 복종이 당연한 것으로 몸에 배어 들 수 있다. 대도시의 젊은이들, 특히 공업 노동자들은 군대에 들어올 때 전혀 다른 생활의 자유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송장 같은 복종을 마지못해 견딜 뿐이다. 물론 그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한 공공연히 반발하기에는 너무 영리하지만. 그런데 대중파업은 그럴 계기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그리고 공업 발전이 진행될수록 농업 출신, 곧 그나마 내부의 적에 맞서 믿을 만한 신병의 수는 줄어든다. 나는 앞에서 말한 1904년 2월의 글에서 1902년의 통계를 들었는데, 그 통계는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숫자를 보여 주었다.
| 군단 | 적격자 | 적격자 가운데 농업 종사자 | |
|---|---|---|---|
| 절대수 | 퍼센트 | ||
| 바이에른 제1군단(오버바이에른, 니더바이에른, 슈바벤) | 11,041 | 4,560 | 41.5 |
| 프로이센 제7군단(베스트팔렌, 라인 주) | 34,959 | 5,810 | 16.6 |
| 작센 제2군단(라이프치히, 켐니츠, 츠비카우) | 11,884 | 1,847 | 15.5 |
몇몇 군단에서 이미 비농업 인구가 얼마나 엄청나게 우세한지 알 수 있다.
다른 원인들은 관영 노동자의 불만을 키운다. 바로 그들의 부자유가 그들에게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 처지가 나아진다면 그들은 아마 그것으로 보상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재정난이 커지고 국영 기업들이 「절약」으로 내몰리며, 그 가운데 철도, 우편, 광산처럼 많은 곳이 더 많은 수익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는 만큼 점점 더 저항에 부딪힌다. 아래로부터의 모든 비판을 싹부터 질식시키는 바로 그 엄격한 군대식 규율이 동시에 국영 기업이라는 거대한 복합체 전체를 점점 더 불투명하고 점점 더 부패에 열려 있게 만들어 그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이것은 다시 윗자리들이 체제의 탓으로 잃은 것을 아래로의 압박과 착취를 늘려 벌충하도록 몰아간다.
이렇게 관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커지며, 위로부터의 테러가 갑자기 마비되기만 하면 이 불만은 환히 타오를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위에서는 머리 없음, 줏대 없음, 분별 없음이 커져 가고 있다는 증거를 지난 몇 해의 역사가 충분히 보여 준다. 이 성장도 우연이 아니다. 국가 안의 대립과 국가들 사이의 대립이 점점 더 첨예해지고, 군비가 늘고, 재정난은 점점 더 커진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적 착취가 늘면서, 향락과 화려함에서 대자본가와 어깨를 겨루려는 국가의 대착취자들의 생활 수준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대한 궁정인과 융커의 요구가 군비와 함께 늘어나, 국가를 점점 더 절망적인 재정 상태로 몰아넣는다. 지성과 기개를 갖춘 정치가라면 국가의 기생 체제 전체를 내쫓고 유산계급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여 국가를 다시 건전한 토대 위에 세우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국가의 주인들이 정치가에게 맡기는 과제는 바로 국가의 기생 체제에 새로운 돈줄을 열어 주고 그에 대한 모든 저항을 이겨 내는 것이다. 지성과 기개를 갖춘 정치가라면 누구도 그런 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점점 더 순간의 성공의 겉모습만 만들어 내면 국가의 미래야 어찌 되든 상관없는 양심 없는 출세주의자나, 상황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얼간이나, 맡겨진 모든 임무를 순종적으로 해치우는 생각 없는 하인만이 그 일을 맡으려 할 것이다. 인민과 관료 기구 자체의 정부에 대한 존경은 점점 줄고, 대중파업이 바로 상황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곧바로 머리를 잃어 탄압 조치를 쓰려 할 때나 진정 조치를 쓰려 할 때나 늘 거꾸로 행동하는 그런 분자들을 정부에서 만나게 될 전망은 점점 커진다. 성공적인 대중파업의 이 모든 조건은 발전의 진행과 사회민주주의·노동조합의 조직·계몽·실천적 개혁 활동을 통해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대중파업이 프로이센의 사정에서 승리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처음부터 압도적인 기세로, 모든 것을 휩쓸어 가고 근로 인구 전체를 사로잡으며 그들을 기존 체제에 대한 가장 사나운 분노와 가장 깊은 경멸로 채우는 대중성과 열광을 지니고 나타나야 한다.
대중파업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조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생각만큼 그릇된 것은 없다. 그것은 대중파업의 실제적 불가능을 인정하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층을 조직하는 데까지는 아마 결코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파업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한 사람처럼 일어나 지배 체제를 마비시키고 와해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걸 때에만 가능해진다.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면, 제국 전체에서, 북과 남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그런 한마음의 봉기는 갑자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가장 깊이 분노하게 하고 지배 체제의 타도를 생존의 필연으로 들이미는 거대한 사건의 압력 아래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진영 안의 모든 저항을 쓸어 버리는 폭풍이어야 한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상황이 대중파업을 위해 무르익었느냐는 문제를 토론에 부쳤다. 그러나 그것을 토론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황이 아직 그만큼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중파업이 맞느냐 아니냐를 아직 다투고 검토할 수 있는 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체 대중으로서 아직 대중파업이 관철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분노와 힘의 감정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3월에 그럴 기분이 있었다면, 나 같은 말리는 목소리는 노도 같은 분노의 항의에 묻혀 버렸어야 할 것이다. 대중파업이 맞느냐를 두고 잡지에서 토론하는 것으로 시작된 성공적인 대중파업을 나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대중파업의 뜻밖임, 갑작스러움, 자연력 같은 성격이 그 성공 조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렇다면, 오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대중파업을 토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분명 그것이 오는 시점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일단 터진 뒤 그것의 승리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승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강력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세력이 있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인민 분노의 사나운 흐름에 물길을 파 주고, 그것이 비옥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으로 이끌 때에만 가능해진다. 그러지 않으면 그 흐름은 온갖 파괴 끝에 성과 없이 모래 속으로 스며들어 버릴 것이다.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들이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에 익숙할수록, 무엇으로 그것이 가장 힘 있게 작용하는지, 그 힘을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두었을수록, 그런 전대미문의 상황이 그들의 분별, 통찰, 결속, 끈기, 자기 규율, 대담함에 요구하는 엄청난 요구를 그들이 감당해 내리라고 그만큼 더 기대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론적 토론은 더욱 필요하다. 계급투쟁의 극단적이고 마지막 수단인 정치적 대중파업은 쉽게 되풀이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천에서 배운다는 것은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것이다. 그러니 필요한 인식을 될 수 있는 한 이론 작업으로 얻어야 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도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을 토론할 필요가 있다. 대중도 적도,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폭력 앞에 무방비하지 않다는 것, 오늘도 예전처럼 폭군의 권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 대중의 정치도 적의 정치도 전혀 달라진다.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높아진 힘의 의식을 주고 적의 오만을 누를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적의 불안과 신경과민을 키우기도 한다. 평화적 방법으로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 살아 있는 곳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
여러모로 보아 대중파업이라는 관념을 토론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이 지금 단계에서 온전한 힘과 명료함을 얻으려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파업의 시점을 언론의 이론적 토론으로 찾아내려는 것은 내게는 완전히 잘못으로 보인다. 오직 그것만이 대중파업을 승리의 돌파로 이끌 수 있는 저 높은 열광과 분노는 한 주도 묵혀 둘 수 없을 만큼 절임 식품과 거리가 멀다. 토론이 겨우 시작되기도 전에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식어 버렸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6년 전에 펼친 입장이다. 내가 오늘도 그것을 옹호한다면, 그 뒤로 그것에 반하는 사실이나 논거는 하나도 알게 되지 않았고, 그것을 확인해 주는 것은 아주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갑자기 변덕이 나서 기분 전환 삼아 한번 제동을 걸어 보려고 그것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룩셈부르크 동지에게는 마르크스주의자가 한번 제동을 거는 것이 도착된 욕망으로 보인다. 그녀는 채찍을 찬양한다. 그러나 가장 날카로운 급진파조차 룩셈부르크 동지를 채찍질할, 곧 채찍의 채찍 노릇을 할 필요는 느끼지 않으리라는 점은 제쳐 두더라도, 고백하건대 나는 내 확신이 그때그때 제동으로 작용하든 채찍으로 작용하든 개의치 않고 그것을 옹호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이미 한 번, 러시아 혁명 때 대중파업 문제에서 내 입장을 옹호한 것이 나를 아이스너, 슈탐퍼와 충돌하게 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제 그 때문에 숱한 공동 투쟁을 함께 치른 동지와 충돌하게 된 것은 내게 전혀 달갑지 않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내 견해를 바꿀 수는 없다. 플라톤은 친구이지만 진리는 더 큰 친구다. 대의는 사람 위에 있다.
7. 소모 전략과 선거전
이제 소모 전략에 관해 몇 마디 더 하자. 독자는 내가 룩셈부르크 동지의 그것에 관한 14쪽에 다시 14쪽으로 맞서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내가, 그것도 지나가는 말로, 로마의 소모 전략에 관해 한마디 했다고 비웃고는, 정작 그녀 자신은 그것에 관해 한 쪽이 넘도록 몸젠을 인용한다. 그 인용은 우리 토론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물론 룩셈부르크 동지에게는 당 집행부, 노동조합 총위원회, 그리고 나에 대한 일련의 깔보는 독설을 늘어놓을 기회를 준다는 헤아릴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룩셈부르크 동지가 그 이상으로 로마의 지연 전략 문제에 진짜 실질적 관심을 느낀다면, 1901년에 나온 델브뤼크의 『전쟁술의 역사』 제1권을 권한다. 거기서는 최신 연구에 근거해, 낡은 몸젠과 반대로 이 전략이 정당화된다.
룩셈부르크 동지와 우리의 지금 전술을 두고 논쟁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결실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소모 전략」이라는 말로 모든 대중 행동에 반대하는 단순한 「의회주의 일변도」를 뜻한다고 그냥 말해 버림으로써 토론을 엉뚱한 궤도로 밀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디서 이런 견해를 얻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1860년대 말 이래 사회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지금까지의 실천 전체를 소모 전략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이 충분히 알려져 있어서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실천은 기존 국가와 기존 사회에 맞선 전쟁을, 프롤레타리아트를 꾸준히 강화하고 적을 꾸준히 약화시키되 우리가 더 약한 동안에는 결전에 도발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 적을 와해시키고 그 위신과 힘의 감정을 허무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쓸모 있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고 그 통찰과 힘의 감정을 높이며 인민 대중의 그 조직에 대한 신뢰를 늘리는 모든 것이 쓸모 있다. 여기에는 의회주의만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치른 임금 운동과 거리 시위도 속한다.
바로 최근의 시위 캠페인이 성공적 소모 전략의 본보기였다. 우리가 언제나 채찍으로 느껴야 했다면, 3월 6일 트렙토 공원 집회가 금지된 뒤 대중에게 금지를 무시하고 무장하고 나와 폭력으로 집회 개최를 관철하라고 호소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타도 전략이었을 것이다. 적이 우리를 기다리던 곳에서 적을 피하고, 우리 조직이 적의 조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가장 찬란하게 보여 준 기동으로 적을 따돌린 것은 소모 전략이었다.[옮긴이 3] 그로써 대중의 자신감과 적의 당혹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므로 나는 「의회주의 일변도」를 설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것이 의회주의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주어진 정치적 사정에서, 승리한 대중파업 말고는 큰 선거 승리만큼 큰 도덕적 효과를 내는 수단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전략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의 감정과 대중의 우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성공으로 이루어진다. 성공만큼 성공하는 것은 없다고 영국 속담은 말한다. 우리 당이 대중에게 강하게 보일수록 대중은 더 열심히 당으로 몰려오고, 그들의 요구와 대담함은 더 커지며, 마침내 그들은 당을 따를 뿐 아니라 당을 앞으로 떠밀 것이다.
그런데 선거 승리, 새 의석의 쟁취만큼 대중에게 우리의 커 가는 힘을 감각적으로 보여 주는 성공은 드물다. 대중은 통계를 다루지 않고,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늘 충분히 따라갈 수도 없다. 당 언론은 그들에게 흔히 닿지 않고 적의 언론은 거짓말투성이다. 그러나 적의 언론이 아무리 거짓말하고 왜곡해도, 얻은 의석을 거짓말로 바꿀 수는 없다.
물론 성공을 향한 모든 노력처럼 의석을 향한 노력도 길을 잃게 할 수 있고, 미래의 성공을 순간의 성공에 희생시키는 수단을 쓰게 할 수 있다. 그런 노력에는 물론 언제나 맞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원칙적 선동으로 정직하게 쟁취한 의석 하나하나가 인민 대중을 살리고 북돋우며 우리 대의를 앞당기는 큰 성공이라는 사실을 막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 원칙을 선전하고 적의 원칙을 반박하기 위해 선거전에 나서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선거구를 쟁취하여 인민 속에서 커져 가는 우리 영향력을 보여 주고 영향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도 나서야 한다. 지금 상황은, 우리가 할 일을 다한다면 지배하는 통치 체제에 파국이 될 만큼 기세 있는 선거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해 주는 상황이다.
이 견해는 물론 다시 룩셈부르크 동지의 엄청난 조롱을 받는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이길지, 얼마나 이길지는 겪어 보면 알 것이다. 미래의 승리를 미리 맛보는 것은 진지한 혁명적 정당의 본질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 일은 우리 같은, 진지함이 그토록 모자라고 혁명적 감각이 그토록 결여된 사람들에게나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 룩셈부르크 동지는 우리가 정말로 125석을 얻는다면 무엇이 크게 바뀌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소수로 남고, 우리 적들이 쿠데타로 치닫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선거에서 우리가 의석을 더 얻느냐 덜 얻느냐 하는 문제는 … 우리에게 꽤 시큰둥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엄격한 도덕 설교다. 그러나 가장 엄격한 도덕 설교자도 한 번쯤 죄를 지을 수 있다. 우리 토론을 불러일으킨 『도르트문트 노동자 신문』의 글에서 우리의 진지한 혁명적 동지는, 대중이 다음과 같은 수준의 계몽과 기분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선거를 지배 체제에 대한 귀를 먹먹하게 하는 워털루로 만들」 수준.
이것은 내가 꾸지람을 들은 바로 그 「미래의 승리를 미리 맛보기」다. 다만 나의 아브라함 아 산타 로사[옮긴이 4]는 그것을 더 극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이 점에서 완전히 일치한다는 말은 아니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제국의회 선거를 「귀를 먹먹하게 하는 워털루」로 만들 「가장 넓은 대중」의 필요한 계몽과 기분을, 선거 전에 치르는 대중파업에서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이해하기 어렵다. 대중파업이 이기면, 그것은 우리 적들에게 어떤 제국의회 선거도 더는 능가할 수 없을 만큼 「귀를 먹먹하게 하는 워털루」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대중파업이 이기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귀를 먹먹하게 하는 워털루」가 되고, 그런 패배에서 솟아날 「미래의 승리」를 미리 「맛보려면」 아주 많은 「혁명적 진지함」이 필요하다.
이로써 우리는 다시 토론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등장한 숱한 세부 사항에 묻혀 그것을 놓쳤을 수도 있으므로 짧은 말로 다시 한번 요약해 두자. 룩셈부르크 동지는 3월 초, 거리 시위는 낡았고 더 날카로운 수단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예나 결의를 적용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했다. 대중 사이에 의심할 바 없이 지배하는 흥분의 정도는 아직 독일의 사정에서 승리하는 대중파업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높이에 이르지 않았다. 주어진 사정에서 그런 대중파업을 기대할 수 없다면, 행동을 이미 이른 단계 너머로 밀고 나갈 수단은 하나, 다음 제국의회 선거뿐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전망 속에서 치러진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미 거기로 주의와 힘을 돌려야 한다. 새 선거는 오늘은 아직 정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도 큰 선거 승리는 대중의 힘의 감정을, 적의 신경과민을 크게 높여서, 거기서 대중파업으로 끝나는 대중 행동이 생겨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고, 그때는 그 승리를 위한 전제 조건이 오늘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다. 나는 대중파업을 대중의 자연발생적 압력에서 생겨나는 행동으로 보므로, 룩셈부르크 동지의 몇몇 공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대중파업을 지금은 취소하고 선거 뒤로 예고한 것이 물론 아니다. 나는 그것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없는, 기다릴 수는 있어도 정해 놓을 수는 없는 자연력 같은 사건으로 본다.
룩셈부르크 동지는 제국의회 선거를 가리킨 나의 지적을 조롱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그녀가 그에 맞서 그토록 많은 말을 했는데도, 나는 그녀가 오늘 내 구호에 맞세울 다른 손에 잡히는 구호를 헛되이 찾는다. 그녀는 3월에 우리가 내디뎌야 할 「다음 걸음」, 대중파업이어야 할 그 걸음을 위한 「구호」를 우리에게 요구했다. 오늘 그녀는 대중파업을 논의할 필요성만 말한다. 그 논의가 「무관심한 프롤레타리아층을 흔들어 깨우고, 부르주아 정당들, 특히 중앙당의 프롤레타리아 지지자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오며, 대중이 상황의 모든 경우에 대비하게 하고, 끝으로 제국의회 선거도 가장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탁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곧 그녀는 이제 제국의회 선거 전 다음 걸음으로서 대중파업을 통한 행동의 필요성이 아니라, 대중파업도 다루어야 할 제국의회 선거 준비를 위한 선동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것이 그녀가 지금 내놓는 구호라면, 나는 묻는다. 그녀는 무엇으로 나의 입장에 대한 경멸을 정당화하는가?
아니면 그녀는 지금도 3월 초 『신시대』에 보낸 글에서 내세운 입장, 곧 예나 결의를 적용할 때가 왔다는 입장을 고수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때, 3월 초가 그것을 위한 올바른 시점이었는데 『신시대』 편집인이 「할 일을 다하기를」 거부하고 룩셈부르크 동지의 글을 싣지 않음으로써 혁명을 싹부터 질식시켰다고 주장하려는 것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그녀의 답변에서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 룩셈부르크 동지가 독일의 사정에서 대중파업을 어떻게 그리는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새 전략의 결과로 남는 것은 물음표 한 다발뿐이다.
주석
- 옮긴이 1. 룩셈부르크, 「어떻게 더 나아갈 것인가?」(Wie weiter?), 『도르트문트 노동자 신문』, 1910년 3월 14~15일. 같은 글의 더 긴 판을 룩셈부르크는 그보다 앞서 『신시대』에 보냈으나 카우츠키가 싣지 않았다. ↩
- 옮긴이 2. 엥겔스가 죽기 몇 달 전인 1895년에 쓴 마르크스 『프랑스 계급투쟁』 서문. 바리케이드 시가전의 시대가 지나고 보통선거권을 이용한 합법 활동이 사회민주당을 키운다고 쓴 이 글을 당시 사람들은 엥겔스의 「정치적 유언」이라 불렀고, 수정주의자들은 이것을 혁명 포기의 근거로 읽었다. ↩
- 옮긴이 3. 1910년 3월 6일 베를린 경찰이 트렙토 공원의 선거권 집회를 금지하고 병력을 배치하자, 사회민주당은 집회 장소를 막판에 티어가르텐으로 바꾸어 15만 명가량이 경찰을 따돌리고 그곳에 모였다. 이른바 「선거권 산책」이다. ↩
- 옮긴이 4. 17세기 빈의 설교자 아브라함 아 산타 클라라(Abraham a Sancta Clara)의 이름을 비틀어 로자(Rosa) 룩셈부르크를 가리킨 말. 그는 화려하고 신랄한 도덕 설교로 이름났다. ↩